보드게임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1인용 보드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드게임은 복수의 사람이 참여하는 소규모 집단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소통과 경쟁이 발생한다. 타인과의 협력을 위한 의사소통,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속물적 의사소통, 제로섬(zero-sum)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얻기 위한 경쟁, 이 모든 건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보드게임은 사회의 축소판인 것이다. 이곳에 참여하는 자들은 본 공연 전의 예행연습, 즉 리허설에 참여한다. 고로 보드게임은 리허설이다. 이 리허설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감독으로서, 스태프로서, 배우로서, 때로는 관객으로서 말이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사회에 진출한다. 보드게임 카페는 pre-society이다. 스타벅스에서 미팅(meeting)이 이뤄진다면, 보드게임 카페에서는 프랙티싱(practicing)이 이뤄지는 것이다.
길거리 싸움에도 규칙이 존재하듯이, 보드게임에도 규칙이 존재한다. 이 규칙은 일종의 계약이다. 보드게임에 참여한다는 것은, 모두가 게임의 규칙을 따르겠다는,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는 암울한 체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계약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는 홉스 등의 학자가 주장했던 사회계약을 연상케 한다. 다만, 사회계약이 가상적 상황에서 현실로 이어지는 순행을 따랐다면, 보드게임의 계약은 현실에서 가상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역순행을 따른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로크의 타불라 라사, 루소의 목가적 상황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우리는 이 상태를 자연 상태라고 한다. 이 자연 상태의 개인들이 사회로 진입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에 보드게임은 딴지를 건다. 보드게임에서 우리는 자연 상태를 경험한다. 때론, 투쟁하며 때론 목가적이며 때론 새겨질 무언가를 기다리는 석판이 된다. 사회, 혹은 타연상태에서 자연 상태로의 비 자연스러운, 그렇지만 자발적인 진입이 발생한다. 여기서 참여자는 상상력과 파상력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 경험은 창조와 모방, 평화와 폭력의 역설을 만들어낸다. 이 역설은 네트워크, 에너지 등의 이름으로 사회의 원동력이 된다.
보드게임은 참여자들에게 시공간을 공유하도록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광범위성을 특성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더군다나 동일한 목표의식을 지닌다는 것은 특별한 연대감을 느끼도록 한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의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은 자들과의 보드게임은, 음식점을 가는 것, 같이 공부를 하는 것,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과 비슷한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보드게임만이 가진 동시성이 있다면, 아마 정상으로 향하는 기회의 개방성일 것이다. 음식점에서 우리는 경쟁하지 않는다. 물론, 도전을 위한 음식물 섭취도 있겠지만, 그러한 행위는 연대감 자체를 지니지 않도록 한다. 특정 개인에게 경외심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공부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입각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대회는 열리지 않는다. 팀 과제나 프로젝트에서는 철저한 협동이 발휘된다. 이 경우 모두가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래방에서는 주인공이 정해져 있다.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예약 곡의 주인 중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마이크로 향하는 길은 대단히 폐쇄적이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예외이다. 모두가 참여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운의 지배를 받는 게임 속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개방적인 동시성은 보드게임만이 갖고 있는 매력일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이 보드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