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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노을 Apr 22. 2022

중용이란 무엇인가

새롭게 정의되는 중용

만물에 분노를 일으키는 단어, ‘적당히’의 철학적 기획이다.      


경청과 팔랑귀 사이

겸손과 싸가지-없음 사이

뒷담화와 담화 사이

폭력과 장난 사이

자유와 억압 사이

관용과 배제 사이

종교와 과학 사이

많음과 적음 사이

사회와 사회 사이

사회와 개인 사이

개인과 개인 사이

개인과 inner-개인 사이

inner-개인과 inner-개인 사이

심연에 부유하는 무수한 것들의 최소 공간과 공간을 옥죄는 최대 부피 사이     


이들의 전제는 전자와 후자의 상호배타성.      


N극이 S극이 될 수 없듯이, 양전하가 음전하가 될 수 없듯이, 대한민국이 일본이 될 수 없듯이, 내가 네가 될 수 없듯이, 마르크스(K. Marx)가 니체(F. Nietzsche)가 될 수 없듯이, 도킨스(R. Dawkins)가 목사가 될 수 없듯이, 보바리(Bovary)가 열반(Nirvana)-이른-자가 될 수 없듯이, 개츠비(Gatsby)가 남편이 될 수 없듯이, 크뢰거(Kroger)가 토니오(Tonio)가 될 수 없듯이, 부처가 소크라테스(Socrates)가 될 수 없듯이, 쇼펜하우어(

A. Schopenhauer)가 라이프니츠(G. Leibniz)가 될 수 없듯이, 뒤르켐(E.  Durkheim)이 베버(M. Weber)가 될 수 없듯이, 푸코(M. Foucault)가 벤야민(W. Benjamin)이 될 수 없듯이, 사회가 자연이 될 수 없듯이, 채식주의자가 육식을 할 수 없듯이, 동해가 얼 수 없듯이, 지구가 화성이 될 수 없듯이, 정약용이 연암이 될 수 없듯이, 데카르트(R. Descartes)가 동물이 될 수 없듯이, 삼성(SAMSUNG)이 애플(APPLE)이 될 수 없듯이...     


질문해보자.

 

정말? 진짜? 왜 그래야 하는데?

     

어린아이가 내던진 질문은 도덕-규범-고정관념을 훑은 뒤, 각각을 순차적으로 파괴한다. 

사회 구성원의 강제적 자발성, 사회의 강제성, 개인의 자발적 강제성의 파괴. 기물파손은 범죄이다. 범죄자를 기다리는 건 죄수번호의 교체이다. 원죄를 가진 죄수는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는다. 이 시대에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죄이지 않은가? 죄수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다음에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형벌이 결정될 거라는 판사, 그 판사는 사회이다.      

인간이 만든 사회, 사회에 억압받는 인간. 

포이어바흐(L. Feuerbach)의 소외는 지금도 남아 있다.      

경제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 내면에도 소외는 존재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수많은 관념들, 그것들이 우리를 억압하는 낯선 힘이 된다.      

인간은 소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를 기다리는 건 그를 감싸줄 누군가.     

그렇게, 우리는 광신도가 된다.       


적당히... 광신도가 되는 것. 

적당히... 그(the one)를 추종하는 것.

적당히... 안락한 교리(혹 도덕)를 섬기는 것. 


이것이 지금의 중용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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