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탄생 이래 중용을 발견/창조할 수 없던, 없는, 없을 무언가... 것에 우리는 종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교는 무언인가
인간의 모든 행위는 특정 근거에 입각한다.
그 근거는 이성과 정동,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가는
2차원의 한 지점이다.
피안의 것을 차안의 것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근거 제공자를 신뢰한다.
신, 자연, 인간, 자아... 무수한 제공자에게 보내는 신뢰,
그 단계의 정형화한 이름.
그것이 종교이다.
종교의 절대 원칙.
타협하지 말 것.
나 이외의 다른 신을 거들떠보지도 말 것.
배신자의 바람의 기술은 신에게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절대악이 될 것. 그리하면 순수악이 될 것이니.
종교의 절대 원칙.
안주하지 말 것.
안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침전되는 자아뿐이다.
자아를 믿는 자도 자아를 초월할 것. 충실히 자아에 귀의할 것. 자아를 초월한 자아가 될 것. 그것이 초자아가 된다면, 타협하는 것이다.
초자아가 아닌 초-자아가 될 것.
종교의 절대 원칙.
유일하지 말 것.
비아에 의지하여 아를 섬길 것.
anti-아무개는 아무개의 존재 정당성을 입증한다.
Vice versa.
유일해지는 순간, 종말과 파멸, 멸절과 소멸만이 남는다.
비워짐으로써 채워진 공허함. 그 공허함이 천국의 다른 이름이다. 천국에는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형식에 다름 아니니까.
내용과 형식 양극단은 각각 '됨'과 '될-ㅁ'이다.
된 자는 될 자가 되기를 의욕하지 않는다.
될 자는 되는 순간, 종교라는 이름을 삶으로 치환한다.
살아 있게 된 자는 삶을 믿으니까.
죽음은 삶의 연장이다.
믿음의 끝은 극단적이다. 삶을 종교로서 믿는 순환논리에 빠진 자, 시시포스는 초-종교인이다. 논리에 입각해서, 그는 초-산-자이다.
우리는 믿는-자, 산-자, 초-산-자, 혹 아무-자 중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삶의 끝, 삶의 시작에 완성될 것이다. 그것이 종교의 끝, 종교의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