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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노을 Apr 09. 2022

민머리란 무엇인가

민버리가 보여주는 인간 지향점 

*이 글에는 민머리를 비롯한 탈모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이 글로 상처받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분께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우리는 온갖 모욕적 행위에 둘러싸인 삶을 산다. 그중 모욕의 모욕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는 단연코 머리를 때리는 행위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이 땅에 머리를 가장 먼저 내민 채 태어난다. id-card가 건물 출입을 위한 조건이고, wi-fi가 인터넷 출입을 위한 조건이라면, 머리는 삶에 입장하기 위한 조건인 것이다. 머리를 때린다는 것은 입장표를 찢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보인다. 그 사람의 출입을 부정하고, 그 사람의 존속을 방해하고, 그 사람의 퇴장을 강요하는, 실존을 부존으로 탈바꿈시키는 효과란... 우리에게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또 다른 해석으로 확장될 수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머리의 역할은 실로 위대할 것이라는 해석 말이다. 


머리의 형태는 다양하다. 지구의 인구만큼 두상이 존재한다. 그 구성 또한 다양하다. 그래서 분류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설정할 기준은 머리카락의 개수이다. 머리카락의 개수를 헤아려본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머리카락은 때때로 두피에서 탈출한다. 즉, 그 개수는 변수의 상태에 존재한다. 하지만, 변수가 상수가 되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머리카락의 개수가 0인 상태, 즉 민머리 상태가 그것이다. 민머리는 문법적으로 '민-'이라는 접두사에 머리라는 어근이 합쳐진 파생어이다. 이때 '민-'은 무엇이 없다는 결여의 뜻을 지닌다. 머리가 결여되었다는 직관적 해석은, 머리카락의 결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직관적 단어인 민머리는 변수를 상수로 바꿔주는 변곡점의 명칭으로 설정될 것이다. 


민머리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머리이다. 민소매의 대척점에 소매가 있듯이, 민달팽이의 대척점에 달팽이가 있듯이, 민머리의 대척점에는 머리가 있다. 즉, 머리카락의 개수라는 기준에 의한 분류는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난다. 머리카락이 있는 상태와 머리카락이 없는 상태가 그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오자. 머리는 인간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촉매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가령, 흰머리는 오래-참음이라는 삶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니체가 말한 삶에의 의지,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conatus)가 아닌, 오래-참음이라는 일종의 페이션스(patience)가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색소의 결여, 세월의 축적, 양과 음의 조화를 표상하는 흰머리가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머리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민머리는 얼굴과 두피의 구분을 없앤다. 어디까지가 얼굴이며, 어디까지가 두피인지, 어디까지가 이마이며, 어디까지가 이마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머리카락의 도피와 함께 소멸한다. 이는 그 기준이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며, 허구의 것이며, 허상인 것이며, 자의적이자 임의적인 것이며, 상호 주관적 실재이자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민머리는 잡다한 구분을 없앤다. 편협한 시각, 허휘의 것, 거추장스러운 규범, 중세의 용어로는 쿠르투아지(courtoisie)를 없애는 것이다. 이때 에너지(energy) 사용 대상이 바뀐다. 사용되지 않아도 될 에너지는 사용되지 않는다. 에너지는 사용될 곳에만 사용되게 된다. 이는 집중과 몰입, 선택과 전문화를 이끌어낸다. 유명 디자이너들은 all-black look과 같은 단조로운 패션을 보여준다.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위한 결과이다. 민머리는 무엇인가. 자신 영역에 집중하겠다는, 동시에 일상의 잡다함을 초월하겠다는, 전통적 가치를 흔들겠다는 초인화의 일종인 것이다. 


이제 답해보자. 민머리는 무엇인가? 증거이자 증표이다. 근대의 대표적 특징이 표준화와 합리화라면, 지금의 인류세의 특징은 전문화일 것이다. 그를 위한 진화의 과정, 인간 발달의 최정점이자 도착지, 워버멘시가 되려는 인간의 웅비, 그 결과물이 민머리인 것이다. 


잡스, 제프 베조스, 이상봉, 길성준... 수많은 민머리-er여! 당신들이 보여준 것은 인간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이다.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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