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에 바치는 하얀 국화 한 송이
메리린브락트의 '하얀국화'를 읽고
디아스포라 이야기는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나 또한 디아스포라이다. 한국인 이민자로서 그렇고, 여성으로서 그렇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또 다른 이산민족인 나의 벗을 통해 알게 된 디아스포라 이산문학 독후감 대회는 갑작스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작가들의 시선이 흥미로웠다. e-book 플랫폼에서 집은 이 책들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묻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였다. 목이 메고 체증이 느껴져 물을 마시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알면서도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들이라 더 애통했다. 왜 이제야 찾아왔냐는 꾸짖음을 스스로 들어야 했다. 그런 심정으로 마지막에 내가 들고 있던 책은 표지도 제목도 애처로운 『하얀 국화』였다.
『하얀 국화』는 지금은 국제적인 관광지가 된 대한민국의 섬, 제주도를 배경으로 언니 하나와 동생 아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언니 하나와 광복이 되었지만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일어난 제주 4.3 항쟁 속의 동생 아미가 겪는 큰 두 줄기 사건을 그렸다. 일제로부터의 광복을 즈음한 우리 민족의 두 역사는 두 자매가 겪는 상실의 시간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나의 애쓴 외면을 묵묵히 견디고 있던 『하얀 국화』. 제대로 위로조차 받지 못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위안부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을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일본이라는 이웃, 그들이 과거 저지른 짓뿐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를 향해 보여주는 뿌리 깊은 폄하와 무시의 태도를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나 개인에게도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면에는 개인적으로 겪은 성에 대한 경험이 책을 집으려는 내 손목을 무겁게 했다. 그렇다, 혐오. 이 시대 가장 많이 읊어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 이 단어를 또 다른 형태로 내 머릿속에서 되뇌게 되진 않을까, 혼자만의 섣부를 수 있는 판단이 파고들었던 탓일 게다. 이러한 이유로 미미하게나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예감했던 것이다.
「하나는 엄마가 물 위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 동생을 지키는 일은 하나의 몫이다. 하나는 엄마와 약속을 했고 지킬 작정이다. 하나는 파도 밑으로 몸을 던져 모래밭을 향해 전속력으로 헤엄을 친다. 군인보다 빨리 동생에게 가 닿길 바랄 뿐이다.」(37-38p) 극으로 치닫는 전쟁의 기운은 외딴 바닷가에서 한동안 무탈하게 물질해오던 한 해녀 가족에게까지 뻗친다. 아픈 이웃을 위해 엄마와 오후 늦게 물질을 하던 하나의 눈에 한 광경이 펼쳐진다. 물 위로 올라 숨을 내뱉으며 물가 아미를 살피는 눈에 들어온 장면은 곧 하나의 삶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인도한다. 따가운 햇살 아래 평화로운 해변에서 항상 그래 왔던 일상은 곧 벌어질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조류를 거슬러 수면을 가르고 파도를 헤치며 두려움도 잊은 채 동생을 향해 돌진한다. 동생을 향한, 그리고 삶을 향한 하나의 남모를 이 강한 의지는 그녀의 여정을 따라 만주 벌판을 맨발로 달리듯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흐르고 있다.
「”여성 애국 병참부대라는 거야.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선생님이 그랬어”… “지원해서 뭘 하는데?”...」 (94p) 하나는 기차 안에서 다른 여자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머나먼 만주로 제국주의 덫에 걸린 채 알 수 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그렇지만 군인들의 겁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 군인들이 끌고 간 그 아이는 수없이 많은 군인들과 잠자리를 강요당했어… 일본군은 그렇게 하면 전투에서 이길 걸로 믿는 거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고향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기력을 충전하고 재미를 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천황을 위해 전방에서 목숨을 거는 대가라고... 우리 소녀들을 빼앗아 온 세상으로 보낸다는 거야. 고향으로 돌아온 그 아이는 차라리 운이 좋았던 거다.”」(120p) 하나는 이미 제주에서 뭍으로 오는 배 안에서 가장 먼저, 자기를 끌고 온 일본군 하사에게 겁탈을 당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어렴풋이 들은, 이웃의 누군가가 미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아니 직접 엄마에게 들었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처참하고 분한 동시 두려움에 떤다. 얼얼한 정신으로 하나는 행여 잡혀올 수 있었던 동생을 떠올린다. 이곳에서 하나의 또 다른 동생이었던 어린 상수, 그 아이의 죽음으로 더욱 몸서리친다. 그리고 배고픔과 졸음, 고통 속에서 현재의 자신을 감당해 낸다. 엄마 아빠와 같은 방을 쓰며 속닥거림과 다정함으로 인식하고 있던 남녀 간 행위.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성을 겪은 열여섯 하나는 증오심과 뒤섞인 성과 삶에 대한 일그러진 인식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하나 앞에 던져진 질문은 돌연 나에게 돌아와 해답을 구하려 했다. 내가 책을 집지 못하고 망설이던 이유다. 상수보다, 아홉 살 아미보다 더 어릴 적, 장성한 사촌오빠들과 가까이 부대끼며 살던 시절 겪었던 일들은 분명히 긍정적인 성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기심으로 바로 앞의 약자를 이용하는 점이 비슷하다면 그런 것이다.
「아미는 눈을 뜬다. 무슨 소리가,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누군가 아미의 이름을 외친 듯도 했다... 아미는 깊은 잠을 깨웠던 꿈을 떠올려 본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소녀가… 손을 흔들며…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잠수한다. 마치 돌고래처럼 우아하고 수월하게 물을 여러 번 들락거린다. 어릴 적 내 모습일까?… 저 멀리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온다… 아미는 폭풍우가 오고 있다고 소녀에게 외치지만 바람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한다… 폭풍우는 점점 더 힘을 얻고 강력한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와 부서진다. 아미는 안다.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아미는 신을 벗는다… 차가운 물속에 머리를 처박는 순간 누군가 아미의 이름을 외친다...」(221-222p) 자기를 바위 아래 숨기고 대신 앞에 나서서 끌려간 언니를 보낸 아미는 어느새 여든 노인이 되어 있다. 이미 성장한 아들, 딸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아미의 이야기가 어린 하나의 이야기와 함께 번갈아 이어진다. 전쟁과 수난의 시간을 살아남아 적어도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지 않고 함께하고 있어서일까. 하나의 이야기만큼 긴박하게 아미의 순간순간을 읽어 내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짐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듯 아미는 분노와 증오를, 풀어내지 못한 사무침을 혼자 버텨 왔다. 이제는 계속해서 꿈에 나타나 자기 이름을 부르는 한 소녀를 만나야 할 것 같다. 꿈에 나온 새 신이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듯 목숨이 다하고 있는 아미는 소녀를 만날 수 있을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바닷속 소녀는 또 누구였을까? 어린 아미였을까... 누군지 알면서. 마음속에서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미는 듣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 소녀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하나 언니.”... 60년이 넘도록 입에 담지 않았던 이름이다.」(225p) 아미에게 언니는 그립기만 한 대상이 아니다. 언니가 자기 대신 끌려갔다는 죄책감과 뒤섞여 한이 되었다. 믿고 싶지 않았고 이젠 너무 긴 시간이 흘러 사실이 무엇인지도 희미하기만 하다.
순식간에 언니를 잃은 아미에게 엄마 아빠는 큰 버팀목이었지만 일본이 전쟁에 패하고 돌아간 공간에는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진다. 「“난 빨갱이가 아니에요.”... “제주에는 빨갱이들이 득실득실해요. 나도 모르는 사이 빨갱이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나와 혼인하면 더 이상 위험 분자가 아니오…”」 (390p) 공산주의 체제와의 이념적 갈등 상황에서 아미는 영문도 모르는 채 가족을 차례로 잃었다. 홀로 남겨진 아미는 무기력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헤쳐나갈 자신만의 방법을 선택한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가슴 가득한 아픔을 더 깊이 눌러 묻는 것이었다. 입과 마음을 닫기로 한 대상은 아이들 아비인 남편이었다. 덕분에 삶의 가장 큰 이유였던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의 영혼은 자유롭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녀가 떠나지 않고 살아낸 그녀의 고향은 동시에 모든 걸 잃은 곳이었다. 보이지 않는 땅 아래 서로가 죽인 가족, 이웃들의 시신으로 메워진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게다가 ‘자기 때문에’ 잡혀간 언니의 생사를 모른 채 살아온 지난 시간은 송두리째 흔들린 삶이었다. 땅을 밟고 있되, 그 위에서 떠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아미는 언니보다 더 오갈 데 없는 떠돌이일지 모른다. 「“동생이 웃는 소리가 어땠는데?” … “여름 산들바람에 얌전하게 떠다니는 새처럼 웃었지.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공중을 미끄러져 날아가면서 나무 끝을 건드리는 새처럼. 그렇게 웃었지…… 자유롭게.”」 (942-943p) 때로는 꿈속 동생의 웃음소리를 듣고 엄마의 숨비소리, 아빠의 노래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머나먼 땅에서 착취를 견디는 이방인 하나보다 더.
만주 위안소에서의 시간을 꾸역꾸역 견뎌 나가는 열여섯의 하나는 시종일관 나의 영웅이었다. 나 자신조차 내내 숨 막히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리고 마땅히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어 보이던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했던 제주 바다에서의 기억 한 조각으로 이 기막힘을 버텨내고 있었다. 나에게 던져진 하나의 숙제를 풀어야만 하는 나는 제주도에서 먼 만주를 거쳐 다시 몽골로 이어지는 대장정에 오르는 그녀를 따라 숨 막힌 달음을 같이했다. 위안소를 빠져나와 무작정 남쪽으로 기찻길을 따라 밤낮을 달리던 만주 벌판. 어딘지 모를 허허벌판에서 맨발의 굶주린 그녀가 느닷없이 향해야 했던 몽골 대평원. 그 와중 나는 바뀐 무대를 배경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부여잡았다. 과연 좁디좁은 위안소에서 광활한 평원으로 옮겨간 나는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무엇보다 희열에 찼던 순간은 지긋지긋하게 하나를 뒤따라 다니던 악몽 같은 존재, 모리모토를 떼어내게 된 것이다. 「모리모토는 고개를 들지도 말을 하지도 않는다. 부러진 코로 숨을 쉴 뿐이다… 매질을 당해 망가진 육신에 어떤 인간성도 남지 않은 모리모토는 이제 한 마리 짐승 같다. 전시에 남성은 다른 남성에게 이런 짓을 당하고 있었다. 이것이 여성이 당하는 짓보다 더 심한지 하나는 알 수 없다… 목숨이 빠져나간 모리모토의 육신은 맥없이 나동그라지며 땅을 검게 물들인다. 모리모토는 더 이상 저승사자가 아니다. 저승사자는 모리모토의 영혼을 거두어 가려고 와 있다... 한때 존재만으로 하나를 고문했던... 그는 이제 몽골 평원 어딘가에 놓인 피와 살점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하나는 모리모토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한때 자신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을 꺼낸다… 안도감이 온몸으로 퍼진다. 모리모토는 더 이상 하나의 그 무엇도 지니고 있지 않다.」(952-968p) 쫓아오던 성난 악당에서 포로 신세로 전락한 그의 무기력함을 목도한 순간, 하나는 커다란 사고 전환을 경험한다. 그 낯설음 앞에 그는 더 이상 어떤 존재도 아니었다. 물리적인 자유 말고도 개인적인 복수심을 내려놓은 하나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원망이나 두려움, 미움을 쌓으며 이유를 찾으려 했던 나의 시간이 헛된 것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보살펴 준 알탄과 알탄 가족 그리고 고향집에서 누렸던 행복한 기억과 함께 원기를 찾아가는 하나를 보고 싶었다. 하나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길 기도했다. 어떤 이유로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그녀만의 터를 잡고 살아가길 온 마음으로 바랐다. 나 또한 나만의 모리모토를 깨부수고 먼발치에서 그것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관찰자의 눈으로 벗어날 수 있길 바란다. 혐오에서 자기애로 그리고 내적인 자유로움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이 다소 걸릴지언정 밟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미는 기내에서 내려다보았던 발아래 대지를 떠올린다. 검은 활주로는 겨우내 누렇게 구겨진 풀들로 에워싸여 있었다. 아스팔트 밑에 묻힌 채 너무 오래 시간이 지난 것들을,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아미가 허공을 날아갈 때 대지 위에는 아미를 올려다보는 수많은 얼굴들이 있었다. 아미는 그 얼굴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멍한 눈을 밀어 내고 도시의 소음에 정신이 팔리는 쪽을 택한다. 아미의 정신은 반짝이는 불빛과 윤희의 품이 주는 편안함으로 부지런히 되돌아온다.」(219p) 제주도는 나에게 아름다운 여행에 관한 추억과 기대로 가득한 곳이다. 이 책에는 그런 제주도의 상을 깡그리 잡아 뭉개 버리기에 충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비행장이 지금의 국제공항으로 바뀌었을 때 새로 닦은 활주로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살을 겪은 사람들은 아무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아미가 비행을 꺼렸던 것이다. 비석이 없는 엄마의 무덤 위로 아미가 탄 비행기가 굴러간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뒤집어지고 입이 바싹 타들어 갔다.」 (811-812p)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넓은 내륙 평원이 펼쳐진 몽골에서 만난 호수에서 머나먼 고향의 바다를 보는 하나의 마음으로 나는 제주도를 그려본다. 아미를 편히 숨 쉬지 못하게 만든 시절을 품고 제주 땅을, 그리고 우리 땅을 껴안을 준비를 한다. 하나와 아미, 알탄, 그리고 모리모토 그들이 내 머릿속에 스멀거린다. 마치 대형 스크린에서 긴 영화를 보고 나온 듯이, 그들의 영혼이 나를 한참 붙들고 일상에서 살아 아우성친다. 인물들이 겪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꿋꿋하고 순수한 삶의 의지를 본다. 우리 민족은 숱한 외침을 받고 일제 억압을 당하다, 소위 강대국들에 의해 남북으로 쪼개져 서로 전쟁을 벌이더니 70년이 지난 지금, 선진국 대열에 서 있다.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성장의 시간 사이 많은 공백을 가진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 팬데믹과 더불어 생업과 일상의 위협을 받는 생존적 오늘을 바라봄에도 희망을 가져본다.
아미의 딸 윤희는 대대로 이어지던 해녀 가문의 전통을 거부하고 서울로 떠나 학자가 되었다. ‘납득할 수 있는’ 세상을 찾아 떠난 윤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아미가 이해할 수 없듯, 자신의 평생 비밀을 딸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왔다. 딸 윤희는 돌아가신 엄마 아미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인 제주에서 오랜만에 물질을 하고 있다. 수백 년에 걸쳐 생계를 위한 삶의 형태였을 '제주 해녀’ 전통은 제주에 남은 세계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엄마의 영혼을 기리며, 엄마에게서 자신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삶의 유산을 오늘 윤희는 만끽하고 있다. 동료이자 남자 친구, 미국인 레인은 물 위로 떠오른 윤희에게 손을 흔든다. 뭉클함과 여운이 감도는 풍경이다. 아미는 딸과 레인을 보며 늘 흐뭇했다. 서로를 아끼는 동반자와 함께하는 모습에서 행복을 보았다. 윤희는 내려오기 전 레인과 함께 엄마가 평온하게 세상을 뜰 수 있게 해 준 소녀상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엄마가 평생을 살다 간 제주 바다를 찾았다. 지난 모든 갈등과 위기가 해소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 긴장이 풀린다.
올해 8월 15일, 76 주년 광복절을 맞은 날, 카자흐스탄에 묻혀있던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옮겨와 안장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는 고려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고 한다. 소련 극동지역에서 강제 이주 당해 중앙아시아에 핏줄이 이어지고 있는 고려인에 대한 언급에 고작 몇 명의 생존자를 둔 위안부 피해자를 다시금 떠올렸다. 「배와 연결된 다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던 하나는 문득 두 발을 내려다본다. 한 걸음 뗄 때마다 고향과 멀어진다... 두 발이 얼어붙어 한 발짝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 배에 오르면 가족을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102p)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질곡 속에서 고향으로부터 그들의 뿌리가 들려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을 옛 위안부. 그 여인들을 이제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려 한다.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급기야는 버려지고 학살당하기까지 그 시기를 버티었을지언정, 그들은 강인하고 능동적인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선언한다, 더 이상 약자가 아님을. 당당히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고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는 사랑에 대한 일그러진 상념으로 무모하게 자기를 쫓던 모리모토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악착같이 들러붙던 그를 측은한 한 존재로 볼 수 있었다. 소련군 진영에 갇힌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는 당당했다. 「"내 이름은 하나야."... 」(974p) 언제고 끌려갈 운명에 통절했고 포로로 잡힌 조선 소녀들에게 자신의 일과 이름을 기억해 달라 당부했다. 죽음의 순간을 만나고 보내면서도 새롭게 만나는 희망과 사랑의 손길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았다. 「”난 단 한 번도 매춘부였던 적이 없어.” 병사가 하나를 비웃는다. …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하나를 겨눈다. “난 해녀야.” ... “우리 엄마가 그렇고 엄마의 엄마가 그랬고 내 동생이 그렇듯. 그리고 언젠가 내 동생의 딸들도 해녀가 될 거야. 난 언제나 바다의 여자였어. 너도, 그 어떤 남자도 나를 그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 수 없어.” 병사가 콧방귀를 뀌지만 하나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하나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 있다.... 아래로는 바다가 넘실거리며 이름을 부른다. 하나.」(991-993p)
한국계 미국인 작가 메리 린 브락트가 쓴 한글본 머리글에는 자신이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우러러보아 왔다고 적혀있다. 그 나라의 어두운 역사를 알게 된 건 어머니를 통해서도 학교 수업을 통해서도 아니었다. 훗날 영국이라는 제3 국에서 방송으로 우연히 접한 사건은 그 자체로 충격이고 그것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도 충격이었다. 그 충격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세상에 다시 드러냈다. 불합리한 역사와 사회인식에 굴하지 않고 펜을 들어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한 소녀의 삶을 그려냈다. 단발머리 대신 머리를 뒤로 묶어 위안소에서 사진을 찍는 에피소드는 기발하다. 그 사진이 만주 벌판을 지나 몽골을 따라 소련군 진영에까지 가서 기어코 지금의 소녀상으로 되살아나는 지점은 숨이 막힌다. 과거를 다녀온 듯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이 소설은 문학이면서 역사 보고서이다. 국제적 인식을 도모하기 위해 쓰인, 성찰과 각성을 부르짖는 성토문이다. 대화로, 지문으로 하나하나 까발린 이야기는 다름 아닌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의 애쓰던 외면이 창피했다. 자신이 우러러보는 어머니의 나라가 겪은 아픔의 과거를 적극적으로 마주한 작가 앞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마음을 토닥여주는 요법으로 예술, 운동, 상담 등의 치유법이 회자되고 있다. 아미의 친구 진희 말마따나 정신적 외상은 상처가 된 특정 경험을 냉철하게 마주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겪은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야만 내 기억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아, 고통스럽지만 치유 과정을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미는 한평생 외면해 온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악착같은 용기를 내었다. 하나 언니를 만나기 위해 매서운 겨울 서울을 찾았고 ‘소녀상을 찾아 쓰러진 몸을 다시 끌고 나가는’ 발버둥으로 마지막 힘을 다했다.「아미의 두 눈은 소녀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다. 깊디깊은 이해와 고통, 상실감, 용서와 인내의 표정, 끝없는 기다림의 지친 표정에서... “하나 언니야. 우리 언니가 여기 있어.” 아미의 심장은 터질 듯하다....... 난 한 번도 언니를 잊지 않았어. 긴 세월 동안 잊은 척했지만 잊은 적 없었다. 소녀상은 마치 용서를 하듯 아미의 곁을 지키고 있다. 하나 언니는 언제나 어딘가에서 아미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006p)
나도 그렇게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안간힘을 쓰며 일어서서 처지는 다리를 끌고 진흙 속을 헤치듯 나아가야 할 것 같았다. 어린 시절 한 때 벌어진 어이없는 사건이 나의 젊은 시절, 40대 중반을 넘긴 나의 지난 시간을 온통 먹칠해 버렸다고 왜곡시키지 않도록. 뒤늦게나마 그들만의 공개 법정에서 목소리를 내어 외친 옛 위안부 어르신들.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면서도 그들 자신이 아닌 전범자들을 비로소 죄인으로 세울 수 있었다. 광복 후 80년이 가까운 지금, 처벌은 고사하고 잘못했다는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과도 싸우며 용감해질 필요까지 없는 일에 몸소 용기를 더했다.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들을 준비가 된 우리에게 씁쓸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숙제를 내주었다.
책의 표지 그림에는 하얀 바다와 멀리 바다 끝을 바라보는 소녀가 뒷모습을 하고 있다. 그날 해변에서 바위 아래 숨어 언니를 보냈던 어린 아미마냥, 오랜 시간 잊힌 지난날 하나마냥 갈 수 없는 세상을 바라본다. 해녀가 될 거라는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른 꿈을 향해 떠난 윤희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쯤 간직한 제주의 소녀들. 아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밋밋하게만 보이던 그림이 물결이며 바위, 모래알 할 것 없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숙제를 받은 독자는, 성가신 두려움의 무게를 깨닫는다.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애처롭지 않은, 여전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보리라.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수치심일랑 놓고 차마 꿈꾸지 못했던 행복을 붙잡아 보리라. 진실, 평화, 그리고 감사를 담은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바치는 마음으로, 언니 품에서 웃고 있는 한 소녀의 앞모습을 그려볼 것이다. 매주 수요일, 위안부 여성을 위한 집회가 천 번째 열린 날, 일본 대사관 앞에 그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대찬 소녀상이 세워졌다. 아미를 만나러 온 하나, 마침내 하나를 껴안은 아미 그리고 엄마와 화해하게 된 윤희,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는 더 이상 슬프지만은 않다. 이제 이 책을 집어든 나에게 충분히 보답을 받지 않았냐고 얘기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