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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Apr 15. 2021

02. 시작은 홀린 듯

'Smooth', Santana(ft. Rob Thomas), 1999







 맞다, 첫 문장 쓰는 건 어렵다. 특히 성공적인 시즌 1을 마친 뒤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할 때 느껴지는 부담감은 첫 시작의 막연함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그러니 ‘원 히트 원더’라는 둥 ‘소포모어 신드롬’ 같은 말도 있지 않겠는가? ‘배트맨’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버린 뒤에 그 후속작인 ‘배트맨 2’를 명작으로 탄생시킨 팀 버튼은 보통 강철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어차피 시작할 일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저질러 버리는 것이 좋겠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토요일 저녁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사놓은 밥을 우물우물 먹고 넋이 빠져 있었다. 집에 갈 힘을 내기 위해서는 뭔가 쓸데없는 일을 해야 했다. 멍하게 있을 때는 유튜브가 최고다. 머리를 비우고 구독 리스트를 훑다가 주호민이 라디오 형식을 빌려 혼자서 음악도 틀고 중얼중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틀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운을 충전하기에 그저 그만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기운이 빠져서 엉금엉금 책상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가수면 상태에 빠져서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곡이 시작됐고,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구든지 한 번 듣기만 마음속에 각인이 되는 도입부 기타 선율들이 있다. 스팅의 ‘Shape of my heart’,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또 베이스지만, 퀸의 ‘Under Pressure’도 도입부부터 사람을 조지는 대표적인 음악이다. 이런 곡들에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오늘의 노래인 ‘Smooth’ 역시 그렇다. 듣는 순간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기분이 고양된 나는 유튜브의 물결 속에 나를 맡겼다. Smooth 뮤비를 검색해 듣고, 라이브를 찾아보고, 롭 토마스의 최근 영상도 보았다. 생각해보면 이 노래를 내 의지로 찾아들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20세기 말에 이 세상에 투하된 생명체라면 이 노래를 알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La Bamba’나 ‘Livin’la vida loca’, 최근에는 ‘Havana’까지, 라틴계 빅히트 음악에는 장르가 달라도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촌스러움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아마 그 촌스러움은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Smooth를 듣고 있자 조금씩 기력이 충전되기 시작했다. 나는 책상에 누운 채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는 당신의 문장은 충격적이었다. 내게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과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들으면 거의 무조건,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도 입 속으로 중얼중얼 후렴구를 부른다. 그렇지 않고는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노래 부르는 건 호흡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를 노래방에 집어넣어 놓고 무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다. 잘 불러야 한다는 부담과 목적만 없다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만큼 힘이 안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저녁 나 홀로 콘서트는 일찍 퇴근했던 선생님 한 분이 잃어버린 우산을 찾으러 오시는 바람에 순식간에 끝났다. 선생님은 민망함을 참는 얼굴로 ‘퇴근 안 하시고 뭐하시냐’고 물었고 나는 머쓱하게 주섬주섬 몸을 추슬러 책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잽싸게 퇴근에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머릿속에서는 곡의 마지막 마디, ‘Give me your heart, Make it real, or else forget about it!’을 외치고 있었다. 지친 한 주의 마지막 퇴근길에 기력을 불어넣어 준 감사한 곡이다.


 노래를 듣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다. 아주 어릴 때는 엄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매일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내가 원하는 노래를 찾아서 들었다. 그때는 라디오가 좋은 창구가 되어 주었다. 박소현, 이소라, 유희열, 신해철이 나를 이끌어 준 디제이들이었다. 중학교 때는 학교 앞에 있던 레코드 가게에 매일 들렀다. 고등학생이 되어 디지털로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20대가 되어 노래를 부르며 당신을 만났고, 현재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로 수많은 노래들을 추천받아 듣고 부른다.


 당신과 이번 시즌 소재를 노래로 결정하고 나서 나는 이번에도 출간(??)은 어렵겠구나 생각을 했다. 노래는 영화보다 더 개인적인 감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이번 시즌에서는 노래를 BGM으로 사용해서 그냥 내 옛날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보 값이 0에 수렴하는 글을, 그냥 넋두리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써 보려 한다.


 어떤 노래는 듣고(부르고) 있으면 기운을 솟게 한다. 어떤 노래는 마음을 정돈해준다. 또 어떤 노래는 이 순간을 영원히 그리워하게 만들 거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노래는 태생적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노래를 창조한 인류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또다시 1년 동안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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