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의 경조사 연락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곤 했는데
직장 권력자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한바탕한 뒤 사표를 던진 적이 있다. ‘권력자’라고 표현한 건 ‘상사’ 또는 그 흔한 ‘선배’라고 일컫기조차 역겨운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난 그런 부류를 가리켜 ‘개 같은…’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목줄을 쥔 주인에게만 게슴츠레한 눈으로 꼬리를 흔들고 자기보다 약한 존재들에게는 눈을 부릅뜨며 으르렁대기 일쑤였다.
누적 스트레스 탓에 생긴 암 수술도 받은 마당에 생지옥을 탈출한다는 차원에서 호기롭게 직장을 박차고 나온 것까진 좋았다. 문제는 생계에 무대책이었다는 것인데, 아들놈들 둘이 각각 시차는 좀 있었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 재학 중인 시점이었다. 둘째는 4년 장학생으로 학비가 면제였지만 공인회계사(CPA) 시험 준비를 하던 큰놈의 학비는 여전히 들어갈 때였다.
손에 먹물만 묻히다 어쭙잖게 자영업이라니. 얼마 안 되는 퇴직금에 아파트를 저당잡혀 빌린 돈도 퇴사 몇 개월 되지 않아 허공에 날려 보냈다. 주거래 은행 통장에 줄줄이 달리는 마이너스 표시를 보며 가장으로서 피가 마르고 또 마를 때 가장 겁나는 건 지인들의 경조사였다. 매월 수백만 원씩 쌓이는 생계비 채무 때문에 1만 원짜리 한 장 쓰기 어려운 판에 경조사 연락을 접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곤 했다. --(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