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구구소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주 Feb 28. 2021

축의금에 얽힌 아픈 기억들 (2)

하객 면전에서 금액을 확인하다니!

내가 우리 가족에게 가장 노릇도 못 하는데 다른 그 어느 누구에게 체면치레를 하랴. 생계조차 못 챙기는 피폐한 상황에 처하다 보니 대인관계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챙길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주로 휴대전화로 전달되는 지인들의 경조사 문자 메시지는 가급적 열어보지 않고 지냈다. 몰라야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친히 전화까지 걸어 꼭 와주십사는 ‘각별한 정분’을 표하는 절친 등의 초대는 아무래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서울 강남의 오성급 호텔 대연회장이었다. 유명 대기업 임원인 그의 아들 결혼식장은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굵직한 직함이 적힌 각계의 화환이 식장 주변을 온통 뒤덮다시피 했고 정장 차림의 하객들도 줄을 이었다. 언론사에 근무하며 내로라하는 각종 행사에 내빈 등으로 참석해본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노타이 차림이야 양해가 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잡리스(jobless) 처지에 품에 넣고 간 얄팍한 축의금 봉투 때문이었다. 

신랑 측 접수대에서 봉투를 내밀고 방명록에 서명을 하려는데, 접수 담당자가 봉투 속 현금을 쑥 빼들었다. 그러면서 뭔지 모를 씁쓸한 표정으로 축의금 액수를 기재하는 옆 친구에게 “5만원”을 통보하는 게 아닌가. 아니, 축의금을 내자마자 하객 면전에서 금액을 확인하다니! 액수가 10만원이라도 됐으면 얼굴이 그토록 화끈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여 주변의 누가 날 알아볼까 봐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날 난 처참한 심정이 되어 내가 낸 축의금보다 훨씬 비싸 보이는 스테이크 코스 식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3)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축의금에 얽힌 아픈 기억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