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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주 Mar 13. 2021

'만인의 친구'는 어디에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지도자상

서양 격언에 ‘Everybody's friend, nobody's friend'라는 말이 있다. ‘만인(萬人)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일견 논리의 모순인 듯한 이 말을 한 꺼풀 벗겨보면 누구에게나 적, 또는 반대 세력은 있게 마련이라는 인간사의 진리가 담겨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격언의 숨은 뜻을 곱씹지 않더라도 인간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크든 작든 한 조직체의 지도자 계층에 속해 있다면 구성원 전원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이상론일 뿐이다. 비록 존재의 크기와 표출의 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직 내 어디엔가는 비판과 견제, 불만과 질시가 숨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만인의 친구’로 추앙받는 리더를 둔 사회가 이상향일 것이다.

역사 속이라고 하기에도 좀 먼 옛날인 중국 춘추시대에 임금에게서 총애받고 백성들로부터도 존경받는 ‘만인의 친구’가 있었다. 후대의 맹자(孟子)가 화해와 조화의 성품을 지닌 성인(성지화자·聖之和者)로 꼽은 유하혜(柳下惠)가 그 인물이다. 유하혜는 더럽고 무능한 군주 섬기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하찮은 벼슬도 사양하지 않았다. 일단 벼슬길에 오르면 현명함을 최대한 발휘해 일의 처리를 도리에 맞게 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집단 간 다툼이 심하고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그룹 등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한 때에 유하혜를 닮은 인화(人和)의 달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적인 잣대에서 유하혜 같은 인물은 ‘무소신의 기회주의자’로 비판받아야 한다. 그가 가졌던 덕목의 이면에는 우유부단을 포함한 무원칙 등의 부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게 엿보인다. 따라서 사회 통합과 변화·발전을 역동적으로 추구할 역량을 지녀야 하는 현 우리 사회의 지도자상으로는 적합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맹자가 유하혜와 함께 꼽은 성인 중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을 모델로 삼으면 어떨까. 백이는 부정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며 임금과 백성이 바르지 않으면 섬기지도 다스리지도 않은 청렴과 지조의 결정체였다고 한다. 그는 주나라 무왕(武王)의 행위가 온당치 못하다는 이유로 벼슬을 팽개치고 나와 동생 숙제(叔齊)와 함께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맹자는 그를 청렴하고 성품이 곧은 성인(성지청자·聖之淸者)으로 일컬었다.

반면 이윤은 “누군들 임금이 아니고 누군들 백성이 아닌가”라며 세상이 바로 섰든 혼란했든 중책을 자임하고 나선 계몽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을 ‘하늘이 낸 백성 중에 먼저 깨달은 자’로 규정, 천하를 다스리는 사명을 스스로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 맹자는 백성을 지도할 사명감에 넘치는 성인(성지사자·聖之使者)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문제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백이의 경우 청렴하고 지조가 있었다지만 독선과 아집에서 헤어나지 못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더러운 세태만 탓하면서 백성을 버리고 은둔해 독야청청한다는 것은 현 시대에서는 분명 바람직한 지도자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윤처럼 “먼저 깨달은 내가 아니면 누가 하찮은 백성들을 다스릴 것인가”라고 나서는 것도 과대망상적 요소가 다분하다. 사회적 책임의식과 선구자적 계몽의식으로 포장된 이윤의 나르시시즘(narcissism)도 우리 사회의 리더로 자처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리저리 따져 봐도 결국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상은 공자(孔子)가 아닌가 싶다. 모든 성인들의 성품을 집대성(集大成)한, 때를 알고 때에 맞게 행동한 성인(성지시자·聖之時者) 아닌가. 가능하기만 하다면 공자를 현세에 모셔다가 원심력만 있고 구심력은 없이 움직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지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때를 알고 때에 맞게 행동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조차 ‘만인의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일 만큼 요즘 대한민국 사회 각계 리더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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