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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주 Jan 29. 2021

5·18 당시 계급 없는 군인으로

영문도 모르고 겪은 군 비상사태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전원 완전군장을 하고 침상에 누워 가면상태에 들어가라!” 1980년 5월 하순의 어느 날 밤, 요란한 군화 발자국 소리를 내며 내무반 복도를 분주히 오가는 구대장들의 다급한 외침. 영문도 모르는 입대 3개월 차의 후보생들은 그렇게 국가적 비상시국을 맞고 있었다.

공군 사관후보생(육군의 학사장교 후보생 격)으로 입대해 훈련을 받던 중 가장 진한 기억으로 남는 게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군 비상사태였다. 사전에도 없는 가면(假眠:가상수면)이란 생경한 군대 용어도 배운 것도 그때. 바깥세상 동향을 알 턱이 없었던 훈련생들은 늘 부족한 수면시간조차 비상령에 뺏긴 불만을 꾹꾹 누르며 1980년 5월을 ‘돼지’처럼 보냈다.

대대장이었던가, 선임 구대장이었던가. 그는 훈육시간에 우리들에게 아무 근심·걱정 없는 돼지처럼 살라고 했다. “그대들은 돼지다. 잘 먹고 훈련하고 살찌우고 있다가 나라에서 고기를 원할 때 바치면 된다.” 당시 예비 장교로서의 자존감을 잔뜩 키워가고 있던 후보생들은 5월의 비상상황 속에서 ‘국가가 필요로 할 때 목숨을 바친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병영 안팎의 어수선한 상황에도 내 작곡 실력(?)은 계속 발휘됐다. 구대장의 권유로 ‘사관후보생가’를 만들어 동기생 450명 전원에게 가르쳤는데, 한동안 훈련장과 식당 등을 오가며 행진할 때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난생 처음 들어보는 군가에 놀란 교육사령부 항공병학교장이 황급히 가창 중지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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