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1980년 말. 정치·사회적으로 격변이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도 제4회 MBC 대학가요제는 정상적으로 개최됐다. 터질 듯 꿈틀대던 젊은 층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무마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권력 차원의 지원도 없지는 않았을 듯. 당시 수원 제10전투비행단 관제반장(소위)으로 근무하던 중 MBC의 찬조출연 요청이 있었는데, 사전에 국방부 정훈국 문화홍보과에 들러 제반 주의사항을 청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년도인 1979년 제3회 때의 대상 ‘내가’를 불렀던 임철우 육군 일병(상병?)과 함께 국방부를 방문한 것으로 기억된다. 현역 장병의 TV 출연 등에 관한 실무 담당자(사복 차림이었는데 훗날 알고 보니 해군 소령)가 전한 ‘주의사항’이란 “군인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말라”는 간단한 내용. 경례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려는 내게 그는 “우리 부서에도 음악을 좀 아는 사람이 필요한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에 “불러주십시오”라는 별 의미 없는 대답을 하고 떠난 게 전부였고, 이게 실현이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저간의 사정은 이랬다. 12·12 쿠데타를 거쳐 권력을 잡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빨간 마후라’처럼 일반 국민도 애창할 수 있는 군가를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했는데, 그 ‘대통령 하명사업’이 정훈국 문화홍보과에 떨어진 터. 그 부서에 때마침 작곡도 할 줄 안다는 공군 소위가 눈에 띄었으니 실무작업에 활용할 인원으로서는 제격이었다. 또 당시 정훈국장은 대통령과 동기인 육사 11기의 육군 소장이어서 공군으로부터 소위 한 명쯤 빼앗아 오기는 식은 죽 먹기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대통령 하명사업 수행에 꼭 필요하다는데…,
사진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1) 1980년 7월 임관식 직후 사촌 여동생과 함께 (2) 그해 10월 수원 제10전투비행단 발령 이후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모님과 함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