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이 출범한 직후인 1981년 상반기의 새 군가 제작사업은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전두환 대통령 하명사업’인 데다 담당 부서인 국방부 정훈국의 국장도 대통령과 동기인 육사 11기 출신 현역 소장이었기 때문에 힘이 실리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추정컨대, 관련 예산 편성 및 전문가 추천 등 각종 실무 추진과정에서 유관 기관의 측면 지원도 전폭적이었을 것이다.
주한미군 장교를 접견하고 있는 당시 국방부 정훈국장 최모 소장. 전두환 대통령과 동기인 육사 11기 출신이었다.
새 군가 제작사업은 당초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하에 공모형식을 취했다. 일반인 응모작에 대한 1차 심사는 당연히 악보를 볼 줄 아는 내가 전담했는데, 매력적인 작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실무팀은 위탁제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문공부에서 추천받은 유명 작곡가들에게 ‘납품’하도록 청탁, 심사 형식을 거쳐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정훈국 문화홍보과 직원들과 봄철 야유회 때. 목에 수건을 두르고 서 있는 사람이 군가제작 실무팀장이었던 이모 사무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정통 군가인 ‘전선을 간다’와 진중가요인 ‘멋진 사나이’ 등이다. 편곡은 유명 작곡가 최창권 씨가 맡았고 송창식이 장중한 느낌의 '전선을 간다', 바니걸스(토끼소녀)가 발랄한 멜로디의 '멋진 사나이'를 불러 녹음했다. 새 군가 제작과 관련한 청와대 보고는 중위 진급 직전인 1981년 6월 말~7월 초쯤 이뤄졌다. 문화홍보과장(국가공무원 서기관)을 수행해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들고 청와대에 들어가 국방 담당 보좌관(비서관?) 앞에서 녹음된 군가를 틀었다. 대통령 결재를 앞둔 보고이니 만큼 새 군가의 우수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전문가적 설명’도 곁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설령 불륜으로 아이가 탄생했어도 그 아이에게 불륜의 죄를 물을 순 없다. 새 군가 제작의 배경에 군사문화 확산·보급이라는 정권 차원의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군가는 하등의 잘못이 없지 않을까. 가사에 어떠한 정치적 색채도 엮이지 않은 순수성이 있기에 오늘날까지 병영 내에서 애창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한 연상작용으로 떠오르는 건 프로야구이다. 군사정권의 ‘3S 정책’ 일환으로 출범했으나 어언간에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