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설날 떡국을 잘 못 먹었는가보다.

by 기추구






설 연휴를 지나고 맞은 한 주간에 한파가 다시 닥쳤다. 눈보라에 길이 막히고 사고가 잦았다. 멀리는 가지 못하고 일정을 바꾸어 근처를 살살 돌아 다녀야 했다. 대당리태양광에 가니까 여사장님이 반갑게 맞는다.

“아이고, 이렇게 추운 날 전기 점검을 오셨어요? 따뜻한 차 한 잔 드세요. 대추에 꿀을 탔어요.”

“아, 예. 감사합니다. 날이 엄청 춥네요.”

“우리가 설날 떡국을 잘 못 먹었는가 봐요. 추위가 가야하는데, 다시 돌아오고 있어요.”

“하하하. 맞아요. 대한민국 사람 모두 잘 못 먹었는가 봐요. 전국이 꽁꽁 얼어붙고 있어요.”


설날이 지나고 바로 새달이 되었다. 새 달을 시작하면서 한화리조트에서 전화를 받았다. 김동원대리다.

“안전관리자님, 두 번이나 파워퓨즈가 나가서 갈았는데, 이번에 오시면 어디가 문제인지 좀 밝혀 주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다음에 가면 동행하시면서 한번 찾아보지요.”

지난 설 연휴에도 눈이 올 때 지락이 되어서 파워퓨즈가 나갔었다. 그때 나는 벌써 안면도에 가 있어서 대표가 가서 갈았었다. 보통 파워퓨즈가 나가면 다른 것도 이미 충격을 입었다고 모두 다 간다. 그런데 여기는 두 번이나 하나씩만 갈고 말았다. 그때마다 대표는 다른 것은 멀쩡하니까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가 전기 시험을 볼 때 시험에 종종 출제가 되는 문제였는데, 3개 1조로 갈고, 여분으로 한 세트를 전기실에 비치해야 정답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대표는 번번이 하나만 갈았다. 하나만 가는 것뿐만 아니라, 10KA(Kilo Ampere)가 규격인데, 사무실에 중고로 모아 둔 퓨즈 중에 10KA가 없다고, 8KA짜리로 끼웠었다. 이번 설 연휴에도 하나가 나갔다는 것을 보니까 똑같은 장소에서 지락이 되어, 똑같은 퓨즈를 갈지 않았나 싶다.


한화리조트에는 이번 주 금요일에 일정이 잡혀 있다. 가면 어디를 어떻게 돌아 봐서 지락을 찾을 것인가? 미리 생각을 해 두어야 한다. 저압에 문제가 있다면 퓨즈가 나가기 전에 MCCB(Molded Case Circuit Breaker)가 먼저 나갈 것이다. 어디에 쓰는 MCCB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지 않았다면 저압 쪽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고압쪽 인가? 고압? 파워퓨즈 2차 쪽은 MOF가 있고, 그 아래는 COS가 있고, 또 그 아래에는 TR이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 있는 기기를 교체하지 않는다면 파워퓨즈를 아무리 갈아 끼워도 소용없다. 파워퓨즈가 잠시라도 붙어 있지를 못할 것이다. 파워퓨즈 1차쪽이 문제인가? 파워퓨즈 1차라면 ASS다. ASS 이전에는 CH가 있고, CH 이전에는 한전시설인 전신주 위에 COS 책임분계점이다. 점검을 할 때 보았던 판넬 속을 상상하며 지락이 날만 한 곳을 생각했다.


사실 여기는 점검을 가도 육안점검이 전부였다. 뭐 후크메타 한번 찍어 볼 엄두를 못 낸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만져 볼 수도 없다. 열화상카메라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한번 눈으로 죽 훑어보는 것이 다였다. 열화상카메라를 구입하고 나서는 ASS도 찍어 보고, 변압기 온도도 찍어 보고, MOF의 세 상에 온도 비교도 해 보았다. 지난번에 한화에 갔을 때도 PF쪽 판넬을 열어 열화상도 찍어 보았었다. 이상 없었다. 그런데 눈만 오면 지락이 되어 퓨즈가 번번이 나가니 김대리님도 한번 찾아 달라는 요구도 무리는 아니다.


내겐 또 조부장이 있지 않은가? 조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손녀들이 그려서 보내 준 꽃다발도 하나 보냈다.

“원인이 지락이라면 어디를 봐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조부장에게는 금방 답이 온다. 함께 있을 때나 헤어져 있을 때나 내게 자판기가 되어 주어서 참 고맙다.

“장비는 저마다 수명이 15년입니다. 전기는 한번 설치하면 영원히 쓰는 것인 줄 아는데, 아닙니다. 장비의 노후화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락이 되었다가 퓨즈를 갈 때는 떨어지지 않는다니, 떨어지지 않을 때 지락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부장도 틀림없이 고압쪽에서 지락이 일어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거 난감하다. 지락의 원인이 장비의 노후라고만하면 김대리님이 쉽게 수긍을 할까? 아마도 김대리님도 본사의 지시를 받고 지락의 원인을 찾아 달라고 할지 모른다. 본사에서도 인정을 할 답을 찾아 주어야 한다. 우리는 다 층층시하에 살고 있지 않은가?


조부장에게서 답을 찾지 못했다면 하는 수 없다. 눈치를 봐서 대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한화에서 다음에 오면 지락이 되는 부분을 찾아 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지락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한화에서 그랬어요? 내 알려 드릴게요. 지난번에 성박사네인생고기에 갔을 때, 누전차단기 떨어지는 것을 메가로 측정하는 것을 보셨잖아요. 그것하고 똑 같아요. 한 선은 접지에 물리고, 차단기를 반드시 내려놓고, 핀을 한 선에 대 보세요. 0.2나 0.8이 나오면 안 좋은 겁니다. 숫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 좋아요.”

“직무고시에서는 기준치를 0.2에 잡던데요, 0.2 이상이 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요. 그것 다 무시하고, 1이 되지 않으면 안 좋은 것이고, 1 이상이면 문제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보세요.”

대표는 고압 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저압 판넬로만 이야기를 한다.

“선을 MCCB 단자에서 분리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분리 안 해도 됩니다. 내렸잖아요. 그러면 됩니다.”

차단기에는 내부로 두 선이 코일로 연결되어 바이메탈을 움직이는 게 되어있는데, 그것도 무시한다. 차단기만 내리고, 선 분리를 하지 말고, 그냥 재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론과 실재가 이렇게 다르다니, 참 놀랍다. 아, 혹시 선을 분리하면 0.2 이상이 되면 되고, 분리하지 않으면 1 이상이면 된다는 뜻인가?


수요일에는 연세석유에서 전화가 왔다. 오후 늦게라도 좋으니 오늘 안으로 꼭 들러 달란다.

“세차장에 차단기가 떨어져요. 요즘 날씨가 추워져서 얼면 안 되거든요. 꼭 좀 와 주세요.”

“오후에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북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안내하는 세차장 판넬로 갔다. 콤프레셔와 오수처리장과 세차장 MCCB만 켜져 있다. 다른 것은 괜찮은데, 세차장 MCCB만 절연저항이 0이 가까이 나온다. 콤프레셔의 두 선은 아주 절연저항이 측정이 안 될 만큼 OL로 뜬다. 그런데 세차장 MCCB는 세 선이 모두 0.1MΩ 정도다. 지금은 겨우 붙어있다. 조금만 더 습기가 있으면, 꼭 떨어져도 꼭 한밤중에 떨어진단다.

“지금은 괜찮은데 또 떨어지게 생겼어요.”

“그런데 왜 세차장 차단기가 떨어지지 않고, 꼭 메인차단기가 떨어져서 전체 다 못쓰게 합니까?”

“그래요? 메인이 떨어져요? 그러면 세차장은 어차피 겨울에는 못쓰니까 아주 꺼 놓지요?”

“아주 꺼 놓으면 안 됩니다. 물이 들어 있어서 얼면 터져버려요. 열선을 군데군데 감아 놔서 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열선을 감아 놨어요? 그러면 어느 열선에 문제가 있는지 봐야겠는데요. 한번 열어 보세요.”

직원이 기계 문짝을 열었다. 열선이 아주 촘촘히 감겨 있다. 그것도 당겨져서 열선에 열이 오르면 절연물을 파고들만큼 당겨 놨다. 그런데 콘센트에 꼽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쥐꼬리로 연결하고 캡을 씌워 놓았다. 열선의 체크하려면 뜯어야할 판이다.

“이건 내가 점검할 사항이 아니네요. 열선 공사를 한 작업자를 부르셔야 겠습니다.”


이것도 의문이다. 대표는 한화의 지락이 저압에 있다고 보고 있다. 저압에서 지락이 난다면 퓨즈에 오기 전에 MCCB에서 먼저 차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연세석유에도 세차장에 물려있는 MCCB는 떨어지지 않고 왜 메인차단기가 떨어진다는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 조부장에게 문자를 넣었다.

“조부장님, 뭐 하세요. 공부?

지락이 되면 차단기가 떨어지면 되지, 왜 파워퓨즈가 나갑니까?

또 한군데 갔더니, 서브차단기가 안 떨어지고 메인 차단기가 떨어지는 것은 또 뭔가요?”

역시 조부장은 내 자판기다. 5분만에 답이 왔다.

“1. 차단기는 8 싸이클로 전기를 차단하고, 파워퓨즈는 0.5 싸이클로 차단하여 장비를 보호합니다.

2. 단락전류가 서브차단기가 막지 못할 만큼 커서 메인 차단기에서 막게 된 겁니다.“


그렇다. 2번은 이해가 간다. 차단기 안에는 바이메탈이 있어서 단락이 되면 바이메탈의 작동으로 전기를 끊게 된다. 순간 차단용량보다 너무 큰 전류가 흐르면 차단을 하지 못한다고 치자. 그럼 1번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운전을 하면서 하루를 생각했는데도, 조부장의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조부장이 공부하다가 쉬는 시간쯤에 통화를 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바쁜 모양이다. 잠시 후에 전화를 하겠다고 정해 놓은 문자가 왔다. 신륵사 관광지 내에 식당에서 곤드레돌솥밥을 거의 비웠을 때 전화가 왔다.

“아이고 바쁘신데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가족 여행 중입니다. 여기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이렇게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심한데 여행을 가셨습니까?”

“여기는 눈이 안 오네요. 그래서 길도 안 미끄러워요. 무슨 일이신데 전화를 하셨습니까?”

어제 받은 문자에 대해서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에요. 차단기는 8 싸이클에 떨어지고, 파워퓨즈는 반 싸이클에 떨어진다니요. 자세히 설명을 좀 해 주세요.”

“그래서 전기공학도 공부하셔야 한다니까요.”

“나도 전기공학 공부 했어요. 과락 안하고 패스 했다고요.”

“그럼 왜 그걸 몰라요.... 정상적인 전기의 주파수가 어떻게 돼요. 60Hz 잖아요. 그건 1초에 사인파로 60번의 교류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차단기는 그 싸이클이 8번을 돌 때 차단을 한다는 뜻이고, 파워퓨즈는 0.5 싸이클에 차단을 한다는 뜻이에요. 파워퓨즈가 훨씬 빠르지요. 첨두 한 번에 바로 차단이에요. 단락전류나 지락전류 같은 돌발전류에 첨두 한 번. 그것도 용단(溶斷)이 되니까 확실한 차단입니다. 파워퓨즈의 기능이 그겁니다.”

“그러네요. 맞아요.”

“그러니까 지락이 되었다고 해도 차단기가 반응할 새도 없이 파워퓨즈가 먼저 떨어지는 것입니다. 전방보호든지 후비보호든지 신속히 해야 하니까요.”


“그럼, 한 가지 더 물을게요. 파워퓨즈 2차 측 그러니까 저압 판넬의 MCCB는 메가로 측정해서 절연저항이 1이하이면 지락이 난다고 쳐요. 그럼 파워퓨즈는 1차측, 그러니까 ASS나 CH 혹은 한전책임분계점의 지락은 어떻게 찾을 수 있어요?”

“부장님, 정신 차리세요. 그건 찾을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건 기기의 노후에요. 파워퓨즈를 끼울 때 터지지 않는다면 이미 지락은 해결된 것이고, 그 후에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다가 뭘 댈 거예요? 파워퓨즈 2차 측에 있는 MOF나 COS나 TR에도 뭘 찾겠다고 접근하지 마세요.”

“그래요?”

“전기설비는 한번 설치하면 영원히 쓰는 것인 줄 아는데, 아니에요. 뭐든지 15년이 사용기간이에요. 저마다 수명이 15년 정도이므로 노후가 진행된 장비는 교체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마도 수용가에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겁니다. 장비를 영원히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발, 부장님, 손대지 마세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부디 좋은 여행하세요. 난 이 눈보라에도 전기인의 임무를 다 할 테니까....”

여행을 하다가도 내가 전화를 하면 속속들이 알려 주는 조부장이 고맙다. 금방 씹은 곤드레 나물만큼이나 구수하다.


지난여름에 한화리조트 H전주에 넝쿨식물이 무성했다. 그걸 잘라 주라고 부탁은 했었다. 고압에 지락이 된다면, 전선에까지 가 닿은 넝쿨 가닥이 내리는 눈에 젖어서 지락이 되는지도 모른다. 혹시 까치가 집을 지은 것은 아닐까?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집을 지으면, 말랐을 때는 괜찮지만 내리는 눈에 젖으면 지락이 되기도 하고, 단락이 되기도 한다. 지락은 한 선이 땅과 닿은 것을 말하고, 단락은 두 선이 서로 맞닿은 것을 말한다. 아마 내가 말하지 않아도 김대리가 까치집쯤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설이 지나고 겨울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폭설에 양평에는 갈 수 없었다. 아니, 여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강남주유소에 갔을 때, 그 고약한 영감도 내 걱정을 했다.

“먼 데는 가지 마시오. 미끄러운 길 조심히 다니시오.”

“네, 감사합니다.”


양평에는 다음 주에 날이 풀리면 가기로 했다. 한화에 가서도 김동원대리와 지락을 찾을 준비를 다 했다. 고압 쪽에는 손대지 않을 참이다. 저압에서 절연이 좋지 않은 단자를 찾을 생각이다. 아마도 어디 한 군데 차단기가 떨어져있다면 모르지만, 차단기 다 살아 있다면 일일이 내리고 메가를 찍어 볼 참이다. 저압에서 나오지 않으면 고압은 노후라고 말할 참이다. 날은 다시 겨울로 돌아가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봄을 기다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인생도 늘 간당간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