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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놈은 지옥에나 떨어지기를!!

2025/3/12 낭독

by 독자J
그러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어떤 힘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내 노여움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본심은 이 조르바의 한가한 제안에 응하고 있었다. 내 속에 있는 새들이 날개를 펼치며 가자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나는 또 한 번 겁쟁이의 껍질을 벗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내 내부의 진실한 야성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게 걸맞지 않은 고상한 일을 이성으로 물리친 것이었다. 나는 예의 바르고 차가운 논리라는 것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느낌이 있는 책, p.521)


두목, 이런 말을 해도 좋을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구제 불능인 펜대 운전사올시다. 평생에 단 한 번 그 아름다운 녹암을 볼 기회가 생긴 건데 당신은 그것을 놓쳤어요. 제기랄, 일이 없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자문합니다.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그러나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은 후 나는 당신 같은 펜대 운전사에게는 지옥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느낌이 있는 책, p.521~522)



주인공은 또다시 이성에 ‘굴복했다’. 그가 머물고 있던, ‘생지옥’인 베를린(1차 대전 후에 초인플레이션으로 말 그대로 나라가 절단 났다.)을 잠시나마 벗어나 아름다운 녹암을 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말이다. 물론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 아는가. 거기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그래서 거기서 ‘천국’을 만날지. 본인의 표현으로 ‘늙은 한량’ 조르바는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슬라브 여자(그녀는 과부이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자도 과부였다...)와 결혼하여 아이도 가졌지만, 조르바보다 훨씬 지성과 이성으로 무장된 주인공은 아름다운 슬라브 여자도 옆에 없고, 아름다운 녹암을 보지도 못했다. 그 나름대로의 ‘일생일대의 사업’은 있었지만 말이다. 짐작컨대 연애 사업이 아닐까?


물론 조르바의 이런 삶을 누구나 살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겁이 너무 많았고, 지금도 많다. 거기에 긴장도 잘하고 부정적인 생각도 잘한다. 그것을 늘 ‘신중함’이라는 것으로 포장하곤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마치 주인공이 이성과 차가운 논리라는 것으로 자신을 포장한 것처럼. 그래서, 나에게 무엇이 남았지? 나만의 사업은 성공했나? 내 옆에는 아름다운 슬라브 여자가 있나?


이 책을 낭독하는 내내 조르바는 나에게 말했다. “너같이 생각만 많고 엉덩이와 다리가 무거운 놈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천국을 원한다면 당장 생각 그만하고, 그놈의 이성이라는 것 좀 내려놓고 그냥 좀 움직여라.”라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펜대를 굴리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펜을 굴리며 얻은 깨달음을 내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것이다. 지옥과 천국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직면하지 않고 도망치며 주저하는 자에게 천국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난 배웠다. 두려워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자에게 천국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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