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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반드시 떨쳐버려야 할 것

각자의 길을 가고 각자의 정답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by 독자J
사람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기는 한다. 그리고 느끼는 만큼 수월하게 죽어간다. (『데미안』, 민음사, p.8)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들이 같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데미안』, 민음사, p.9)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기적이다. 우리는 모두 엄청난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길과 오솔길을 내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들이, 사회가, 세상이 정해준 길을 지름길로 여기고 살고 있는가? 물론 쉽지 않다. 본인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멈출 줄 아는 것이 용기라고 누군가 말했듯,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인생은 만만치 않기에. 사실 ‘보다 투명하게’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보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고,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중의 일부만이 나름대로 ‘용기 있게’ 그 시도를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인간은 그 자체로 소중하기에 저마다의 삶도 모두 소중하다. 그리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점액과 알 껍질을 완전히 털어버려야 도마뱀이, 개미가, 물고기가 되지 않고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태어난 것 자체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역경을 거쳐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고, 그렇게 성장한 인간들이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인간이란 종(種)의 숙명이 아닐까? 그리고 사실 인생은 헤르만 헤세가 그랬듯, 정답은 없는 것이고 오직 자신만이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아닐까? 나는 부모들과 사회가 이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 껍질을 탈피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사에 우열을 나누는 사람들, 자신의 한계를 깨려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 미성숙한 사람들, 도망치고 숨는 사람들, 타인과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 발버둥 치는 사람들, 자신의 생각이 전부인 양 사는 사람들…… 모두 내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철옹성으로 둘러싸고 그 안에 은거했다. 그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몇 년을 보냈다. 그 결과 내 몸에는 아직도 끈적끈적한 점액과 알 껍질들이 남아있다. 그것들이 부패해서 냄새가 나고 내 자신의 피가 썩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야 나는 내가 만든 성에서 나왔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곳과 전혀 달랐다. 무시무시한 괴물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중립적이었다. 다만 내가 미성숙했을 뿐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감정 중 하나가 ‘후회’라는 것을 난 안다. 아마 여전히 임종 전에 이런 후회를 할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제는 조금 덜 하고 싶다. 내가 깨달은, 세상 잘 사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자 많은 사람들이 할, 그 후회는 다음과 같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데미안』, 민음사, p.8) 무섭고 두렵더라도 조금만 더 용기를 내자. 후회의 질량이 용기의 아픔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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