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쨍하고 해 뜰 날을 기대하며

by ZHTU

시작이 반이라지만, 진짜 영웅은 늘 가장 힘든 순간에 나타난다.
영웅서사에는 언제나 고난이 있다.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운동을 나서기 직전, 복도에서 풍겨오는 치킨 냄새.
딱 알 수 있었다. 양념치킨이었다.


오늘만큼은 그냥 먹어버릴까—
이 악마 같은 유혹을 간신히 뿌리치고 문을 나서자마자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운동을 하러 나온 건데,
아까까진 마른하늘이었는데 왜 내가 나오자마자 비가 쏟아지는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괜히 누구 탓을 하고 싶다.


그리고 시작되는 시선들.
차가운 비보다 이 시선이 더 고통스럽다.
살이 쪄 있고, 비에 젖어 초라해진 내 모습을 훑어보는 눈빛들.


근데 왜 이렇게까지 고집스럽게 밤에 뛰러 나오는가?
안 그러면 이 배고픔을 견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 한 끼.
운동 후 먹는 두부와 달걀흰자.
이렇게까지 해야 빠지는 살이라는 걸 알기에,
그저 시선을 무시하며 오늘도 발을 내디딘다.

오늘의 초라함이, 내일의 당당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이 끝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어떤 사람들은 몸이 지치면 오히려 입맛이 떨어진다는데
나는 마음이 지치면 더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더 심해지기 전에 뛰어야 한다.
뛰어야만 배고픔이 잠시 사라진다.


운동을 하면 렙틴이 분비되어 순간 식욕이 잊힌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뛴다.


고요한 공원.
비 내리는 어둠 속에서 마주친 고라니 한 마리.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비에 젖으며 묵묵히 다시 한 걸음.


억울하다.
마음도 힘들고, 뛰는 것도 힘들다.
비를 피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달리니 속도는 오히려 더 붙는다.
절대 귀신이 무서워 빨라진 게 아니다.


나는 왜 아무도 달리지 않는 이런 패가 같은 밤길을
혼자 달리고 있는 걸까?
왜 여기서까지 나를 몰아붙여야 하는 걸까?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배고파서 먹어버린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곳이겠구나.


그래서 나는 오늘도 뛴다.
비와 어둠 속에서, 나를 용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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