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음에 관하여

진화는 좋은 방향으로만 흐르진 않는다

by ZHTU

세상은 항상 재미있고 즐거울 필요는 없다.
힘들고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덧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음지가 있어야 양지도 있다.
그러므로 최고 기록은 나에게 영광이면서
동시에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흔한 클리셰처럼
이걸 이겨내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라 말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느낀 것을
언어로 바꾸는 과정일 뿐이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아무리 천천히 뛰려 해도
밖은 생각보다 추워서
자꾸만 속도를 올리게 된다.
이런 식의 오버 페이스는
조만간 나에게 무리로 돌아온다.
항상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내가 뛰는 공원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정돈되지 않은 트랙과
유난히 밝은 안내 사인들이
계속해서 생각을 건드린다.
보통은 고요한 공원에서
조용히 나를 비우며 뛰는데,
오늘만큼은 전혀 고요하지도
차분하지도 않았다.


번쩍이는 "공사중"이라는 글자가 신경쓰여
지금까지의 명상은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달리기를 명상이라 생각한다.
오직 나와 나만의 싸움.
하지만 오늘은
전혀 몰입되지 않는 러닝이었다.


마지막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재미가 없었다.
평소에도 달리러 가는 길은
귀찮음과의 일상적인 싸움이지만,
오늘은 유독
이 싸움에서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원까지 오는 15분 동안
실패한 마인드 컨트롤,
밝은 조명, 시끄러운 소리, 음식 냄새.
몸은 추워 빨리 뛰었고
리듬은 쉽게 무너졌다.


음악을 바꿔 다시 집중해 보려 했지만
듣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너무 잔잔한 노래는
오히려 몸을 늘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냥 1킬로미터를 뛰고 멈췄다.
패배감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끝났다.


다이어트는 꾸준함이지만
오늘의 포기는 또 하나의 데이터가 되었다.
오늘은 오늘로 남기고,
다음번엔 다시
뛰고 싶어지는 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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