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의 깊게 빠진 상태.
방금 운동을 끝냈다.
이상하지만,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아무런 생각이 안 난다는 것.
오랜만에 5km를 뛰었는데,
보통이라면 ‘오늘도 오운완!’ 같은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데,
오늘은 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차분했고, 그냥 고요했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릴 땐 시야가 좁아져 자꾸 아래를 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페이스가 흐트러지고,
생각보다 빨리 지쳐버린다.
그래서 처음엔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했다.
평소에도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종종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증폭된 기분이었다.
‘나는 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생각을 멈추려 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하면
가장 먼저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워밍업 겸 처음 1km는 화가 났다.
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었다.
아마 추석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폰게임에 몰두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2km 지점에서 속도를 조금 올렸다.
화난다고 확 치고 나가면 금방 지치니까,
조금씩만 올렸다.
보통 나는 뛰면서 호흡에 집중한다.
오늘은 신기하게도 아무 노력 없이 호흡이 맞았다.
심폐가 좋아진 걸까, 아니면 휴식 덕분일까.
그냥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생각이 사라졌다.
머리로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붙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조용한 새벽의 공원,
나 혼자, 오직 나만.
결국 달리다 보면 남는 건
‘생각하지 않는 나 자신’뿐이다.
그게 어쩌면 진짜 평화일지도 모른다.
3km, 4km...
힘든 만큼 생각이 빠져나갔다.
5km를 마치고도
“오늘도 해냈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저 조용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왜 화가 났는지, 왜 우울했는지도 까먹었다.
이게 러닝의 힘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