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관차에서 내리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이제 함께하기 시작한 내 삶의 동반자 류마티스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여기에 오기까지 내 몸이 어떤 신호를 나에게 보내왔을까 가끔 생각한다. 분명 이전에도 여러 징후들이 있었겠지만 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일은 전철을 타고 직접 그림을 나르다가 마지막 계단을 못 보고 떨어져 넘어졌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쯤의 나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모든 일을 매섭게 해치웠다. 누구도 시킨 적 없는 일지만 그때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시간을 테트리스하듯 빽빽하게 채워 회사 일과 작가활동을 병행했었다. 출근 전 새벽같이 작업실에 가서 그림을 그리다가 회사에 가기도 했었기 때문에 내 옷에는 자주 페인트가 묻어있었다. 언젠가는 두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혼자 빠져나와 빠르게 햄버거를 해치우고 펑펑 울다가 갑자기 노트북을 열어 아무 일 없다는 듯 화상미팅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나를 보신 것이었으리라.
그날은 뭐 때문에 그렇게 그림을 날라야 했는지 모르겠다. 아는 작가님의 전시를 보러 가는 길에 잠깐 짬을 내서 그림을 어딘가에 걸어야 했는데 그림 한 점이었기에 전철을 타고 나르는 중이었다. 내 키의 절반 정도 되는 그림이어서 만만하게 생각했는지 전철에 내려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마지막 계단을 보지 못해 넘어지고 말았다. 빈 손으로 넘어졌다면 그렇게 다치지 않았을 텐데 발목이 정말 꺾여버렸고 지나가는 여성분의 도움을 받아 일어설 수 있었다. 조금 많이 아프네 내일쯤 병원 가볼까 생각하고 하루종일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집에 와서 신발을 벗어보니 발목이 놀랄 만큼 부어있었다.
다음날 출근길에 찾은 병원에서는 깁스 없이 콜라겐 주사만 처방해 줬기에 그렇게 큰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반년 후에 발목에 금이 갔다가 자연 치유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발목보호대를 차고 절뚝이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던 나는 연차를 써서 해외 전시를 다녀오던 12월 비행기에서 눈을 감고 울다가 이제는 회사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