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無心川) (1)

by 한 올

1.

변했다. 시냇물이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나는 둑에 섰다. 예전의 무심천을 찾으려 눈은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시야에 들어온 냇물은 곧게 흐르도록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왜 곧은 물줄기가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일까. 어느 곳에선 갈라지고 다시 또 만나고 이리저리 꼬불거리며 흐르던 그 냇물이 아니었다. 가는 물줄기 사이에 섬처럼 또 삼각주처럼 펼쳐져 있던 누런 흙도 볼 수 없다. 옛날에 보았던 물줄기를 보고 싶지만 한 군데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물줄기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4월 7일만 되면 재윤이는 어김없이 꿈에 나타났다. 푸른빛이 감도는 창백한 얼굴이다. 내 뺨을 후려치고 소름이 돋을 만큼 싸늘하게 눈을 흘기며 돌아서는 것도 여전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가끔은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어른거리다 말없이 사라졌다.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30년 동안 한 번도 안 걸렀다. 약속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평소 철저하던 그녀가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인지 아니면 잠재된 내 안의 내가 그렇게 들볶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 오늘은 그녀든 나든 그렇게도 집요하게 잊지 않게 하던 바로 그날이다. 약속한 오늘이 아니더라도 그 꿈을 꾸고 나면 몇 시가 되었건 다시 잠드는 일은 없었다. 입안이 말라있고 스산한 마음도 가라앉힐 겸 거실로 나와 물을 마셨다. 그 순간 늦잠을 자지 않았나 하며 깜짝 놀랐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사방은 아직 새까맣다. 불을 켠 다음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가 조금 지났다. 잠든 지 두 시간도 안 됐다. 심란한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이 마음은 무심천에 가서나 사그라지려나.

지난밤엔,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앨범 속 재윤이의 얼굴을 보며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추억들이 마음 어느 모퉁이에 도사리고 있다가 한꺼번에 밖으로 나오려고 요동치는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오늘은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이 되는 해 나의 생일 달인 4월, 재윤이의 생일 날짜인 7일을 조합한 4월 7일이다. 그녀와 오늘 12시에 무심천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서로 연락을 하며 계속 다정히 지내게 되어도 각자의 집에서 출발하여 아주 새롭게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졸업 후 먼 나라에 가서 살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살게 되던, 만의 하나, 서로 등을 돌리며 갈라지게 되더라도 이 약속은 꼭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과연 재윤이라면 나처럼 약속 때문에 잠을 설치며 밤을 지새웠을까.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가까웠던 그녀와 나는 졸업식 날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각자 교정을 빠져나왔다. 우리의 우정이 금이 갔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고 우리가 졸업이 가까워진 어느 날부터 서로에게 눈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단 한 사람 신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사이를 가장 시샘한 신우는 우리의 우정을 실험하였다.

3학년 어느 가을날 교실 앞쪽으로부터 쪽지가 뒤로 배턴처럼 전달되고 있었다. 그 쪽지의 종착지가 나인 줄도 모르고 선생님의 시선과 숨바꼭질하듯이 전달되고 있는 것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앞에 앉은 친구가 “네 편지.”하면서 등 뒤로 쪽지를 건넸다. 또 우(又)) 자 모양으로 접힌 쪽지 겉에 「영인에게」라고 씌어있었다. 나는 무슨 내용이기에 공부시간에 전달할까 궁금해 하며 쪽지를 펼쳤다.

「영인아, 너의 우정을 얻기 위해 네 주변을 얼마나 서성였는지 아니? 나는 너에게 조금도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니. 너와 재윤이의 틈에 한 발걸음만 내밀도록 해 줄 수는 없는 거니.」

나는 그때 잠시 웃었다. 무슨 짝사랑하는 것 같은 글을 보냈냐고. 혼잣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친구들이야. 가까이 갈 수 없다느니, 라는 말은 있을 수 없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쉬는 시간에 신우 곁으로 가서 쪽지를 살짝 건넸다. 그 후 신우가 접근해 오면 아주 사소한 말이라도 관심을 갖고 대하였다. 나는 그리 잘나거나 뛰어나지 않았고 신우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후 미술실과 음악실을 갈 때, 또 체육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갈 때 재윤이와 나 사이에 신우가 함께 했다. 재윤이가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민감해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신우와 많은 시간을 갖는다고 할지라도 재윤이가 나와의 우정을 의심하리란 걱정은 조금도 안 했다. 그녀와 나는 3학년이 되도록 변치 않았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시작은 미미하였다.

“우정은 하나야.”

어느 날 재윤이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신우의 쪽지를 읽을 때처럼 콧소리를 내며 웃었던 것 같다.

“우린 모두 친구 사이잖아? 다 같이 우정을 나누는 것이 어때서 넌 하나라고 하는 거니?”

재윤이의 그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물론 신우에게 보다 재윤이에게 더 정이 쌓여있었다. 우리가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은 재윤이도 알고 있을 터였다. 내 말이 끝나자 재윤이는 더 이상 응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사이의 우정에 대해 의심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 또 재윤이가 친구사이의 우정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방의 크기는 다를지라도 여러 개의 방이 있어서 방마다 각기 다른 우정이라든가 사랑을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것은 변함이 없어.’라는 말을 꼭 했어야 했다. 한마디의 말을 아낀 것이 재윤이의 마음에 아픔이 된 것인지 나를 대하는 재윤이의 낯빛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재윤이에게 미소를 띠고 쳐다보면 재윤이는 다른 친구들과 밝은 표정을 짓다가도 나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고개를 돌렸다. 나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얇았었나, 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 상황을 풀려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재윤이가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도 고개를 돌렸다.

실이 한 가닥 엉키기 시작하면 더 엉기어 가위로 끊기 전에 풀어야 했다. 내가 원인을 제공했으니 내가 먼저 말을 했어야 했다. 그때 왜 말을 그리 아꼈는지. 보이지 않는 손이 나와 재윤이 사이를 잇는 실들을 더욱 조이고 엉클어지게 하는 것 같았다. 2학년 때 다른 반으로 갈리었을 때도, 또 그보다 더한 이견과 다툼에도 끊어지지 않았던 우리의 우정이 그런 사소한 일로 와르르 무너지게 된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우정이 무르익던 2학년 여름방학 어느 날 무심천 둑에서 재윤이와 만났기에 오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전날 약속한 대로 먼 훗날 서로에게 보여줄 편지를 각자 써왔다. 내용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편지를 접고 그도 부족하여 한 손으로 가렸다. 서로에게 2010년 4월 7일 12시라는 부분만을 서로 보여주며 웃었다. 그때의 웃음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우정에 대한 확신이었다. 편지를 비닐로 싼 다음 보석함 속에 넣고 흙이 묻지 않도록 비닐로 겉을 여러 겹 둘러쌌다. 서로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서 무심천 둑 다리 입구로부터 남쪽 첫 번째 수양버드나무 아래에 묻었다. 오른손을 마주 대고 어떤 일이 있어도 30년 후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며 다짐을 했다.

오늘의 약속 때문인지 근 한 달 가까이 거울 앞에 앉으면 허상 속에 숨어있는 옛 모습을 찾으려 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물처럼 흐른 세월 앞에서 옛 모습 그대로일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요즈음 계속된 흥분으로 잠을 충분히 자두지 못했다. 눈은 충혈되고 얼굴은 부석부석하였다. 아무리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해도 좀처럼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아침 준비를 마친 뒤 아이들을 깨웠다. 점심은 각자 학교에서 해결할 터이고 저녁은 맛있게 외식하라고 했다.

“걱정 마세요. 우린 엄마가 약속 있는 날이 좋다니까요. 프라이드치킨, 피자를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다고요. 흐흐.”

일주일 내내 같은 말을 했고 그 답 역시 똑같았다. 이제 지쳤는지 기계적으로 말했다. 녀석들은 학교로 나는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전철역에서 지상의 서울역으로 연결되어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계속 사람을 위로 날랐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서울역의 역사(驛舍)가 보인다. 바로크식 건물처럼 보이는 역사를 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옛날 몇 번 드나들었던 역사는 보호 건물로 그야말로 상징처럼 서 있다. 구 역사 현판에는 철도 박물관이란 명패가 걸려있다. 뒤를 돌아보니 시계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고 시계의 초침도 변함없이 움직이고 있다. 얼마나 서둘러 왔는지 8시가 조금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시계탑을 만나는 장소로 삼곤 하였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옛 역사 옆에 세련된 새 역사와 백화점과 마트가 이어져 서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쇼핑몰이 필요할까, 가당치도 않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이 연신 드나들고 있다.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 지은 역사는 마치 공항대합실의 한 면을 보는 것처럼 넓었다. 한눈에 훑어볼 수가 없다. 광장처럼 넓은 대합실을 둘러보았다. 맥도널드 햄버거 스낵 코너, 한식집, 커피 하우스까지 입점해 있다. 대합실 한쪽 벽은 통유리로 되어있어 기차 철로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 인천 공항으로 직행하는 리무진 탑승 출구가 있다. 출구 안에 서 있는 리무진을 보면서 잠시 외국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전광판은 전자 시스템화 되어 열차의 출발과 도착 시각을 불빛으로 나타내고 있다. 내 기억으론 20여 년 전에는 오전 9시에 청주로 직행하는 열차가 있었다. 막연히 그 열차가 아직도 운행될 것 같아 열차 시간표를 뚫어지게 훑어보았다. 오전에 출발하는 직행은 없다. 부산까지 가는 열차는 이삼십 분 간격으로 출발하지만 모두 KTX 뿐이었다. 대전에서 내려 갈아타야 한다. 어차피 갈아타야 한다면 빠른 것보다는 오랜만에 예전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예전에 운행되었던 무궁화호 같은 열차는 전광판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막연히 무궁화호 열차 자체가 없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완행열차의 출발역이던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리라 여기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철도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내 짐작대로 무궁화호는 용산역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KTX가 운행되면서 무궁화 열차의 출발역이 용산 역으로 밀려난 모양이었다. 용산역에서 8시 50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경부선이 있는데 조치원에는 9시 40분에 도착한다. 불편한 점은 조치원에서 50분을 기다려야 갈아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치원에서 청주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15분 정도 걸리니까 청주에는 10시 50분 안에 도착한다고 했다.

“열차가 연착하는 경우는 없나요?”

“요즈음은 대형 사고가 없는 한 정시에 도착합니다.”

집에서 여유 있게 나온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급히 전철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 전철역에서 전철을 타면 두 번째가 용산 역이다. 타기 위해 걷는 시간이 전동차 타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 나는 급히 용산 역사 안으로 들어가 열차표부터 샀다. 좌석이 없으면 입석이라도 살 작정이었다. 8시 50분에 용산에서 출발하면 조치원에 9시 40분에 도착하고 10시 30분에 갈아타려면 50분가량을 기다려야 한다. 어찌 생각하면 긴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조치원역도 이런저런 추억이 담긴 역이다.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직행 미니버스를 타고 가서 조치원에서 경부선을 타고 수차례 서울로 왔었다. 자그마하던 시골 역에 잠시 머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 뽑아 마시며 조치원역을 둘러보면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조치원역에 들를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항상 서울역에서 청주로 내려갔었고 그때는 완행열차만 용산역에서 출발하였고 서울역은 준급행과 급행열차의 출발역이었다. 급행열차들은 용산역에 서지 않았다. 영등포역이 첫 정차 역이었다. 그 당시엔 용산 역에 올 일은 없었다. 10시 40분에 청주에 닿을 예정이니 12시까지 무심천으로 가기에 충분히 여유가 있다. 흐른 세월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역으로 향한 것은 실수였다. 아이들에게 인터넷 검색을 해 달랬으면 되었을 것을, 하마터면 약속시간에 늦을 뻔했다.

간간이 열차의 출발을 알리는 장내 방송이 들렸다. 비교적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기 위해 대합실에 앉아있다.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날려 보내는 중년의 남자,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아주머니, 눈을 감고 있는 젊은이 각기 앉은 모양과 행동이 사뭇 다르다. 공통적인 것은 각자 차표를 한 장씩 들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하러 어디로 가는 것일까.

대합실 안을 서성이며 재윤이를 만날 것처럼 계속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언뜻 수녀 한 명이 지나갔다. 재윤이가 46번, 나는 47번 번호를 부여받고 처음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는 수녀처럼 보였다. 얌전히 빗겨진 검은 머리는 수녀의 두건 같았고 목화처럼 흰 얼굴의 수녀가 검은 교복, 아니 수녀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스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그녀를 본 첫인상을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웃으며 성당에 나가기는 한다고 했었다. 갑자기 재윤이가 수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 수녀를 앞질러 갔다. 100m 달리기 선수가 골인 지점 앞에서 마지막으로 전력질주 하듯이 빠르게 수녀 앞으로 가서는 길을 가로막으며 ‘재윤아!’하고 불렀다. 수녀는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해맑은 얼굴이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고 있는 겨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수녀였다. 나는 미안합니다, 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며 얼버무리고는 그 자리를 모면했다.

“1503호 부산행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실 승객 여러분께서는 개찰구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역무원이 열차표에 펀치로 구멍을 뚫어주던 생각을 떠올리며 개찰구 앞으로 총총걸음을 옮겼다. 개찰구 앞에는 도우며 아주머니만 있고 역무원은 없었다. 여닫이로 닫고 열던 개찰구의 쇠창살문은 온데간데없고 전철 출입구와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철은 여러 번 타 보았지만 역에서는 처음이라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차표를 투입구에 넣으면 되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표를 넣자 전철 표처럼 인식된 후 나왔다. 나는 열차가 서 있는 3번 홈으로 갔다. 열차 문 앞에서 역무원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승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백화점이든 호텔이든 레스토랑이든 지금과 같은 경우이든 정중한 대접을 받는데 익숙지 못하다. 쑥스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열차에 올랐다. 좌석은 내가 좋아하는 창 쪽이다. 항상 자동차와 고속버스를 이용해 이동을 하곤 해서 열차를 타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기차에 일찍 자리 잡고 앉아서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플랫폼과 출입구 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여행보다는 일 보러 가는 것 같은 사람들이 주로 기차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갔지만 재윤이와 비슷한 사람도 없다. 재윤이를 용산 역에서 볼 수 있는 확률이 얼마일까 잠시 생각했다. 어림없는 일에 기대를 건 탓에 눈만 고생했다. 기차는 서서히 플랫폼을 빠져나와 본 괘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눈 안이 뻑뻑하여 눈을 잠시 감았다. 철로 위를 달리는 바퀴소리는 오랜 친구의 음성처럼 언제 들어도 정겹다.

청주에 내려가는 것은 20여 년만이다. 서울로 진학한 후 가족 모두가 서울로 이사를 해서 청주에 내려갈 일이 없었다. 20여 년 전 청주를 떠난 후 몇 년 동안엔 가끔 내려간 적이 있다. 그때까지 청주는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청주는 옛날 그대로 일까. 내가 살 때는 인구가 10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청주를 교육도시라 부를 만큼 학교가 많지도 않았다. 초등학교가 열 개 정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적었고 대학은 세 개가 있었다. 그 당시 누군가에게 학교 수도 적은데 왜 청주가 교육도시라는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인구 대부분이 학생이라서, 라고 했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거리를 50분만 걸으면 소위 도심이랄 곳을 벗어났다. 이곳이 도시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바로 논과 밭이 보였다. 말만 도시이지 여느 시골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북으로 이어진 길에서 두 블록 남짓 떨어진 곳에 길과 나란히 무심천이 흐르고 있다. 다리를 건너 또 하나의 마을들이 형성된 작은 도시였다. 이제 청주도 인구가 60만이 웃돌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도시의 모습은 예전과 다를 것이었다. 대도시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행정구역 구(區)도 2개가 있다. 아마도 무심천을 경계로 두 구역으로 나누었을 것이다. 도시의 건물들도 늘어났을 것이고 60만이 살려면 없었던 아파트도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물, 무심천은 옛 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라고 있다. 아마 다리는 몇 개 더 놓아졌으리라 짐작한다. 그곳에 살 당시엔 무심천을 건너는 다리가 하나뿐이었고 냇물이 얕은 곳에 드문드문 돌다리가 있었다. 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 매일 그 다리를 건너서 등하교를 했다. 하교 길에 다리 난간에 서서 흘러가는 무심천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무심천의 물줄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2.

당신은 유난히라는 말을 쓸 곳에 꼭 유심히라고 쓰더라, 라고 그가 말했다. 나처럼 영적인 사람은 유심히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영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는지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향 청주를 관통하며 흐르는 무심천을 매일 건너 다녀서 ‘무심히’의 반의어로 ‘유심히’를 쓰게 되었고 유난히라는 말보다 유심히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옹졸했던 표정을 감추려는 듯 무심천에 대해서 물어왔고, 그의 난감해하는 것을 모르는 척 무심천의 유래에 대해 얘기를 해줬다.

<무심천가에 자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여인이 있었는데 이제 다섯 살 된 아들 하나가 그녀의 유일한 낙이요 희망이었다. 그의 집에서 서원경을 향해 들어가는 길목을 가로질러 흐르는 무심천에 통나무 다리가 있어 어린이나 부녀자들은 혼자서 건너기가 힘겨운 곳이었다. 더구나 장마가 지는 날에는 나무다리가 물에 떠내려가기도 했다. 어느 해 모진 장마가 지난 뒤 이제 겨우 새로 놓은 통나무다리로 무심천을 건너는 사람들은 푸른 물이 다리 밑을 감돌고 있어 위험스럽기만 했다. 대원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행자승 한 사람이 탁발을 나왔다가 이곳 모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오게 됐다. 여러 날 동안 각 고을을 돌아다니며 탁발을 하던 행자승은 몹시 피곤했다. 그는 여인의 집으로 들어오자 시주를 대신해서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어가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여인은 마침 밖에 나가 볼일을 보고 올 일이 있는 터라 잘되었다며 어린애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행자승은 염려 말고 다녀오라며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마루의 벽에 기대앉았다. 행자승은 두 다리를 뻗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편한 몸으로 마당에 놀고 있는 어린애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사리문 안에서 흙장난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은 정말 평화스러웠다. 행자승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왁자지껄하는 소란과 여인의 통곡소리에 잠을 깬 행자승은 그의 눈을 의심했다. 어린애의 젖은 시체를 안고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여인이 서 있었다. 행자승은 뒷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인의 뒤에는 측은한 눈과 원망스러운 눈동자가 섞인 마을 사람들이 착잡한 눈초리로 행자승을 바라보았다. 행자승이 피로에 지친 몸을 벽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을 때 어린애는 무심천 통나무다리에 올라 개울을 건너다 굴러 떨어져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여인은 어린애를 화장하여 그 골분을 물에 띄우고 삭발한 뒤 산으로 들어갔다.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대원사 주지승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근동의 크고 작은 절에 통보하여 주지승 모임을 갖게 됐다. 이 자리에서 나무다리를 걷어낸 뒤 그 자리에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로 결정을 보았다. 대원사 주지스님은 동쪽에 자리 잡은 선도산 중턱에 막장을 치고 승려들로 하여금 돌을 캐내어 무심천으로 운반하게 했는데 그 승려의 수가 5백이 넘었고 어린애를 위한 진혼경 소리와 불경소리, 그리고 돌을 다듬는 정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이와 같이 다리를 놓기 위한 역사가 시작된 지 꼭 백일만에 무심천에는 돌로 이어진 석교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다리가 개통되던 날 아들을 잃은 여인은 돌다리 난간을 잡고 숨져간 아들의 명복을 빌며 하염없는 눈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사연 알 바 없이 무심히 흐르는 이 냇물을 일러 무심천이라 하였다.>

인생과 흐르는 물결은 그 행로가 불연속으로 변하기 쉬운 한숨소리와 같다. 청주의 무심천도 하늘이 무심하다는 자조적인 이름으로 자주 회자되다 보니 누가 따로 이름을 짓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서 무심천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굳어진 그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펴졌다. 장황하게 수다를 떤 것이 발단이 되어 그가 무심천에서의 데이트를 요청해 온 것까지는 좋았다.

“무심천?, 이름은 그럴듯하네. 유래도 그렇고, 어쨌든 천이면 냇물이란 말인데….”

그의 냇물이란 말속에는, 그깟 냇물을 무슨 자랑거리라고 얘기를 하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평소 무심천은 냇물이 흐르는 곳보다 바닥을 드러낸 곳이 더 많을 만큼 물줄기가 가늘다. 그러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물처럼 많은 양의 물이 흐른다. 언젠가 사촌언니가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불어난 물이 다리 기둥에 1미터 정도까지 찼을 무렵이었다. 언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무심천을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건넜다. 집에 도착한 언니의 첫마디는 영인아 무심천은 깊이가 얼마 안 되나 봐 다리 바로 아래로 물이 흐르던 걸. 언니에게 평소 다리의 높이가 10미터는 족히 될 거고 수심도 8미터가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언니는 떠는 시늉을 하며 그렇게 깊은 줄 알았으면 다리 난간으로 걷지 못했을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나는 무심천 다리를 건널 때 난간에 종종 설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비가 많이 내릴 때에는 다리가 떠내려갈 것 같은 불안 때문에 다리 중앙으로 건너곤 했었다. 매년 치르는 장마 때가 돼서야 강처럼 넓은 내의 폭이 제 구실을 했다.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냇물의 이미지를 없애고 싶었다. 무심천을 보여 줄 시기는 장맛비가 내린 직후가 적시였다. 봄부터 그는 데이트 겸 무심천에 내려가자고 아이가 엄마에게 보채듯이 졸랐다. 봄마다 둑에 만발한 벚꽃과 그 사이사이 연둣빛의 수양버드나무 자랑을 한 것이 한몫을 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될 때까지 이런저런 핑계를 만드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해엔 장마가 6월 4주째부터 시작되었다.

“취미도 고약하네. 맑은 날 다 놔두고 비 오는 날 가자니.”

싫으면 나 혼자 내려가겠다고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기 시작했다. 열까지 셀 때까지 따라오지 않으면 한동안 만나지 않을 생각을 했다. 다섯을 마저 세지 않았을 때 그가 내 우산 속으로 팔짱을 끼며 들어왔다. 그때는 조계사 근처에 동양고속이라는 청주를 오가는 고속버스가 있었다. 고속도로가 놓아지고 처음 고속버스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청주를 왕래하는 유일한 고속버스였다. 버스 안내양은 비행기 승무원처럼 유니폼을 입었고 단아했다. 우린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로 향했다. 출발할 때와는 달리 천안 삼거리 휴게소를 지날 때에는 비가 그쳤다

“거봐, 난 선견지명이 있다니까.”

내 엉큼한 마음도 모른 채 그는 영적인 사람은 다르다며 스스로 영적이란 말을 내게 썼다. 나는 지난번 그의 표정이 떠올라 웃었다. 그가 내 웃음의 뜻을 알아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겸연쩍은 듯 미소 지었다. 가기 전날 무심천 가는 기념으로 보석함 하나를 마련했다. 나는 재윤이와 했던 것처럼 보석함에 우리의 말들을 넣고 묻을 생각이었다. 재윤이와 내가 변했던 것처럼 그와 나도 변할 수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작은 보석함에 담는 글에 영원성을 부여하고픈 것 또한 영원하지도 않다. 이렇게 불현듯 생각날 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마음은 늘 변하는 것이라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백에서 보석함을 꺼냈다. 보석함을 보고 그는 혼돈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의 난감해하는 표정도 잠재울 겸 재윤이의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녀와의 우정에 대해, 우정이 금이 가게 된 것에 대해, 무심천 둑에 보석함을 묻으며 했던 약속까지 이야기했다.

“재윤이와 나처럼 우리도 변할지 모르지.”

“너는 변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야.”

그는 강하고 자신감 있는 어투로 말했다.

“단언하지 마, 누구도 모르는 일이야. 이 순간 이 마음만이 확신할 수 있어. 그래서 말인데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을 이 보석함에 넣고 묻자.”

“그럼 우리도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에 무심천에서 만나는 건가.”

“아니,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결혼 30주년 되는 날에 함을 열어보자.”

“만약 결혼을 못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함이 영원히 빛을 못 볼지도 모르지”

“만약에 둘 중 하나가 먼저 딴 세상으로 가면?”

“….”

그가 자꾸 핑계를 만드는 것을 보니 유치한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가 곧 입을 열어 어린 소녀시절의 감상적인 퍼포먼스를 성인이 된 지금 똑같이 할 일이 있냐고 말할 것 같았다. 대꾸를 않자 그는 생각이야 어떻든 내 제안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에게 하트 모양의 색지를 주었다. 자유롭게 쓰게 하려고 눈을 감고 있었다.

3.

땅 위의 철로를 달릴 때와 확연히 다른 바퀴 소리에 눈을 떴다. 기차가 한강철교를 지나간다. 한강은 언제나 도도히 흐르고 있다. 서울로 진학한 후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한 학기 정도 자취를 한 적이 있다. 집을 처음 떠나 있어서 가족이 몹시 보고 싶었다. 시험기간을 빼고 주말마다 청주에 내려갔다. 그리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강철교에만 기차가 진입해도 내 마음은 청주에 가 있었다. 그곳 집에서 가족들과 짧은 시간을 갖고 돌아올 때엔 반대로 한강을 다 건너서야 비로소 고향집을 떠나와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한강을 건너게 되니 마음이 옛날처럼 술렁거렸다. 마음은 한강을 지나면서 서울을 벗어났지만 기차는 이제야 산과 들을 스쳐 지나간다. 눈을 창밖으로 돌리니 들이건 산이건 모두 봄기운이 가득하다. 연두색 잎이 뭉게구름처럼 돋아나 있는 나무들, 그 연둣빛에 반사되어서인지 산에 닿은 구름도 하늘빛도 온통 연둣빛이었다. 나무들 사이사이로 얼굴을 내민 진달래와 개나리, 살랑거리는 바람에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배꽃, 꽃 잔치 벌이는 봄의 향연에 가슴이 설레었다.

‘재윤아 너도 봄의 향연을 보고 있니. 네가 좋아하던 봄바람의 냄새를 맡고 있니. 나는 그랬었지. 봄에는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봄바람은 싫다고. 봄바람은 사람을 방향 없이 그냥 헤매게 한다고. 네가 그랬지. 봄바람이 실어오는 풋내가 좋다고. 방황은 다가오는 성장을 더 완숙하게 해 준다고 했던 말 넌 기억하니.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꽃과 새싹들이 싱그러운 냄새로 네 코끝을 간질이니. 네게 앞 다투어 다가와서는 저들의 색깔을 마음에 물들여놓고 지나가니.’ 나는 봄빛 가득한 들판을 보느라 창 밖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음 정차할 역은 조치원, 조치원역입니다. 저의 열차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잃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열차가 미끄러지듯 홈으로 들어간다. 기차가 정차하기 전에 나는 핸드백을 팔에 걸고 일어섰다. 기차는 버스와 달리 흔들림이 없이 스르르 정차하기 때문에 균형을 잡기 쉽다. 비틀거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미리 일어설 수 있었다. 열차가 서자마자 제일 앞서서 플랫폼에 발을 디뎠다. 하차하는 사람의 수가 몇 명 되지 않았다. 막상 내리기는 했지만 어디를 지나야 역사에 들어가게 될지 잠시 머뭇거렸다. 함부로 철로를 가로질러 역사로 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거리낌 없이 씩씩하게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가 눈에 띈다. 무조건 그를 따라 걸었다. 육교처럼 되어있는 계단을 오른다. 차양이 설치되어 있는 터널 같은 곳을 지나 다시 계단을 내려가니 역 출구로 이어진다. 차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휴대폰을 열어 몇 시인지 보았다. 9시 45분이다. 정말 정확하게 도착하였다. 혹시 놓친 메시지가 없는지 살폈다. 그동안 내게 도착한 메시지는 없다. 40 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조치원 역사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지 않지만 역사 건물이 새로 지어진 건 분명했다. 예전에는 역사가 단층이었다. 역사 건물 규모가 2층이다. 출구를 돌아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1층 대합실은 여느 역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 게시판처럼 쓰여 있던 열차 시간표, 승차요금 등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전자식 전광판에는 열차 종류와 시간이 적혀있다. 고개를 돌려 훑어보다가 2층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 궁금했다. 혹시 긴 시간을 보내기 좋게 꾸며져 있을지도 모른다. 기대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벽 한쪽에는 생수와 다양한 음료수 캔과 페트병들이 자판기가 있다. 그 옆에는 커피 자판기도 있다. 다른 면에는 이 고장에서 나는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창가는 소박한 카페처럼 꾸며져 있다. 역시 잘 올라왔다. 커피 자판기에서 마일드커피를 받아 창밖이 잘 보일 것 같은 소파에 앉았다. 역사와 역사 밖의 풍경은 변했지만 철로는 왠지 옛날 그대로인 것 같다. 이 역은 경부선과 충북선 열차가 교차하는 곳이다. 20여 년 전에도 초라한 역사에 비해 철로는 다른 시골 역에 비해 선이 여러 가닥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철로가 몇 가닥이었는지 세어본 적이 없지만 어떻든 철로는 예전처럼 여러 노선이 놓여있는 그대로인 것 같다. 어쩌면 그저 그것 하나 만이라도 그대로이길 바라서인지 모른다. 동창 몇 명은 아침마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청주로 통학을 했다. 학교 등하교 시간에 맞춰 열차가 운행되었다. 물론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남녀 통학생들은 그들만의 에피소드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불편한 통학 길을 감내하는 힘이 되었을 터였다. 오래전이라 어떤 이야기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쉬는 시간이면 그들이 등교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흘리듯 들은 적은 있다. 등 뒤에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떠들썩하다. 고요를 깨트리는 곳으로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연분홍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만 웃지 않고 무언가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세 명의 여자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이야기를 듣고 있다. 종알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재윤이를 닮았다. 재윤이도 쉬는 시간이면 저렇게 늘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에게 풀어놓았었다. 조그마한 입에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님 재윤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이야기에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곤 했다. 듣는 동안 우리는 웃고 즐거웠다.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 같아서 집에 가서 그대로 전하면 가족들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그리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도 꽤 있었다. 하지만 재윤이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분명 재미있었고 듣는 내내 우린 행복했다. 재윤이는 평범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처럼 이야기도 맛있게 요리해서 우리 앞에 내놓았다. 게다가 한 번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다.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저 작은 몸 어느 구석에 저장되어 있다가 나오는 것일까. 소설책과 시집을 늘 끼고 다녔던 재윤이, 아마 책을 많이 읽어서 이야기가 마르지 않았는지 몰랐다. 어떻든 나는 끝내 그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지 못했다. 재윤이의 그 조잘거리던 모습이 그립다. 한참을 블라우스 여자를 쳐다보았나 보다. 이야기하다 말고 여자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 같다. 나는 얼른 여자로부터 눈길을 거두었다. 눈이 마주치지 않아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커피를 마셨다. 따끈했던 커피가 미지근하다. 아마도 한 동안 여자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차 하며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20여분 더 기다리면 청주를 향할 기차가 홈으로 들어올 거다.

4

청주역에 도착할 것이라는 차장의 안내 말이 들린다. 청주, 청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나는 차창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비슷비슷한 풍경이 스치기 마련이지만 왠지 청주는 무언가 달라도 달라 보인다. 사실 보이는 건 여느 한적한 중소도시 풍경과 닮았을 것이다. 그 위에 추억이란 것과 정이란 것이 코팅되어 있어서 반짝일 것이었다. 기차가 정차하자 계단을 내려와 플랫폼에 발을 디뎠다. 가볍게 떨렸다. 발끝에 닿은 것이 흙은 아니었지만 고향냄새가 전해져 온다. 나는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검은색으로 청주라고 쓰였던 이정표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20여 년 전의 이정표를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해 한쪽에 남겨 두었으면 어땠을까, 그리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고 더 정감 어린 역이 되었을 텐데 무척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이정표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더듬으며 20여 년을 뛰어넘어 회포를 풀고 싶었다. 이정표도 날 반기어 내 손바닥에 일렁이며 닿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리는 승객은 불과 다섯 명 정도였고 그들은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바삐 역사를 향해 걸어간다. 이런 감상적인 생각은 나만의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驛舍) 앞에 있는 작은 화단도 옛날 그대로 이기를 바라고 있다. 앞엔 언제나 채송화가 심어져 있고, 그 뒤엔 분꽃, 봉숭아꽃, 과꽃과 맨드라미, 맨 뒤에 큰 키의 파초와 글라디오라스가 서 있던 화단을 그려본다. 내 기억을 아무리 덧붙이려 애를 쓰는 것과 상관없이 화단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너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정이 가지 않았다. 예전의 화초대신 팬지, 베고니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청주를 떠나며 보았던 그 화초를 보고 싶다.

12시까지 무심천에 걸어서 가려면 발길을 옮길 시간이다.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화단 모습을 덧씌울 만큼 한가하지 않다. 발걸음을 떼어 총총 역사 밖으로 나오니 역 안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역 밖의 텅 비었던 땅엔 높은 건물과 차들로 가득하다. 역이 하나의 시간을 넘는 타임터널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달라진 거리로 어느 길을 따라가야 무심천이 나오는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옛날 그 길이라면 본능적으로 내 발길이 무심천으로 향할 것이었다. 옛날의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었는데 그도 뜻대로 안 되었다. 낯선 거리에서 쉽게 가려면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다. 역 광장에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다. 맨 앞에 있는 택시에 올랐다.

기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천이요 하고 답했다.

“무심천이라고요?”

“네 무심천 요.”

기사는 고개를 한번 좌우로 갸우뚱하더니 백미러를 통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택시기사 일을 하면서 무심천에 가자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북문로 3가 쪽이라든지 아님 도청 옆이나 중앙병원, 무슨 아파트 등으로 해야 올바른 목적지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난데없이 무심천 근처도 아닌 무심천이라니. 그는 한동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다시 백미러를 통해 나를 쳐다본다. 그의 표정에서 그가 어떤 생각에 이르렀음을 눈치챘다. 내 나이로 미루어 아마도 첫사랑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며 거닐었던 둑을 회상하려고 온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구와 약속이라도 하셨습니까?”

“네, 오래전 친구와요.”

나는 친구라고 답했지만 그의 표정은 아, 애인하고 듣는 것 같았다. 눈망울이 큰 기사의 눈을 보는 순간 그의 휘둥그레진 눈이 떠올랐으니 기사의 짐작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5

그가 도도히 흘러가는 무심천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내뱉은 첫말은 ‘와 황하네.’ 이었다. 내 작전이 대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거대하게 흐르는 누런 물결을 보면서 황하라는 생각을 미처 못 했었는데 그의 입을 통해 들으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황하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와 둑에 나란히 서서 흐르는 물살을 보며 나는 무심천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메어져 왔다. 그는 붉은 물살이 장쾌하게 흘러가는 절경에 감탄한 듯 아아 소리만 연발했다.

“흙내를 풍기며 거대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보노라면 잡념이 모두 쓸려 떠내려가곤 해.”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여 있을 때 같이 와달라고 하면 와줄 거지?”

나는 응하고 대답은 했지만 이 절경이 여름 장마 때 한시적이라는 말은 그때엔 하지 못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나는 우산을 함께 쓰고 비를 덜 맞게 한다는 핑계로 밀착해서 걸었다. 늘 등교하던 다리를 건넜다. 그는 물살을 더 보고 싶어서인지 다리 난간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의지해서 잠깐 서있지도 못했던 난간을 걸었다. 다리 중간에 이르렀을 때 그가 걸음을 멈추고 흘러가는 무심천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춘 채 그의 손을 잡고 용기를 내러 무심천을 같이 쳐다보았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다리 전체가 앞으로 움직인다. 물론 착시현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지러워 고개를 돌렸다.

“이 물이 다 홍차라면 좋겠네.”

그가 홍차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심천을 보면서 홍차를 떠올리다니. 생각이 기발하다고 해야 할지 엉뚱하다 할지 고개를 돌려 무심천을 다시 보았다.

“나는 다 커피라면 좋겠네.”

“홍차든 커피든 콜라라면 청주 시민들은 모두 잘 살게 될 걸.”

다시 어지럼증이 되살아나서 그의 팔을 끌어당겨 다리 중앙으로 갔다. 그와 다리를 건너며 영화 애수에 나오는 워털루 다리가 떠올랐을까.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이건 아니야, 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뭘 중처럼 중얼거려했었다. 다리를 다 건너자, 나도 모르게 내 발길이 재윤이와 함께 함을 묻었던 수양버드나무로 향했다. 우산을 같이 쓰고 있는 그도 나에게 이끌려 왔다.

“이 나무가 바로…. 한 번 살짝 보고 다시 묻으면 안 될까?”

그는 장난 투로 말을 던졌다. 나는 못 들은 척 대답을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준비한 함은 어디에 묻을까?”

“하나 걸러 세 번째 나무 아래에 묻자.”

재윤이와 묻을 때는 호미도 준비했지만 우린 아무 준비도 없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왔다. 땅은 당연히 내가 파야겠지, 라고 말하고 그는 나뭇가지를 호미 삼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비 온 뒤라 땅이 부드러운 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재윤이와 내가 호미로 땅을 판 날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날이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우리는 치마를 두 무릎사이에 끼운 다음 엉거주춤 앉아서 호미로 구덩이를 팠다. 손으로 굵은 돌을 골라내고 보석함을 나무 밑에 묻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과 손을 씻기 위해 둑 아래로 내려갔다. 손을 씻은 후 더위를 식히게 발만 담그자고 했다. 양말을 벗어 운동화 속에 넣은 다음 냇가의 바위 위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장마가 끝나고 20여 일이 지났지만 꽤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물수제비를 떴다. 재윤이가 치마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서 무릎 위로 올리더니 무심천 가운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재윤이의 하얀 허벅지 살은 반사된 물결의 잔광으로 반짝였다. 재윤이가 너도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나도 재윤이를 따라 한발 또 한발 냇물 가운데로 들어갔다. 미끌미끌한 조약돌은 발바닥을 간질이고 균형 감각이 둔한 나는 넘어질까 봐 물을 보며 조심조심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때 내 얼굴에 물똥이 날아왔다. 얼굴에 튀긴 물을 닦고 고개를 드니 재윤이가 개구쟁이의 짓궂은 모습으로 날 보고 있다. 나는 왼손으로 치마를 잡고 오른손으로 물을 세게 튀겼다. 재윤이는 치마를 놓고 양손으로 물을 튀겼다. 나도 질세라 두 손으로 물을 더 세게 튀겼다. 내 치마도 젖었다. 치마가 젖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얇은 반소매의 블라우스가 젖어서 몸에 착 달라붙었다. 재윤이는 몸매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몸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재윤이를 보는 순간 하던 물장난을 멈추고 싶었다. 서둘러 냇가로 나오려다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재윤이는 노루를 만난 사자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살려고 버둥대는 작은 짐승이었고 그녀는 잡아먹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공격하는 야수였다. 물속에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내가 먼저 지쳐 누었다. 재윤이는 포획에 성공한 사자처럼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내 팔을 들어 나를 일으켰다. 그녀는 머리부터 모두 흠뻑 젖어있었다. 재윤이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내 모습도 그녀처럼 물에 빠진 생쥐의 모습이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웃다가 서로 힘껏 껴안고 나서 손을 잡고 냇가로 나왔다.

“말 같은 처녀들이 원!”

냇가에 있던 아주머니가 한심한 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린 그 말도 웃을 거리였다. 다시 웃었다. 냇가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블라우스와 치마를 손에 움켜쥘 수 있는 만큼 잡고 물기를 짜냈다. 등 쪽은 서로 짜주다 등을 한 번씩 치며 웃었다. 무슨 즐거운 일이라고 옷이 거의 마를 때까지 우린 그렇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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