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심천 어디에서 만나기로 하셨나요? 무심천이 워낙 길어서….”
“네 청주여중 근처예요. 11시 50분까진 도착할 수 있겠죠?”
“그럼요. 30분까지 도착할 겁니다.”
“30년 전에 약속했거든요. 오늘 12시에 만나기로.”
“그럼 그동안엔 만나지 못했나요?”
“네, 그렇게 됐어요.”
예전대로라면 청주역에서 차로 10여분이면 무심천에 닿을 것인데 30분 정도 걸린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게다가 낯선 거리를 택시는 달리고 있다.
“청주역이 예전에 있던 곳이 아닌가요?”
“예전 언제요?”
“한 이십여 년 전에요.
“청주역이 옛날 서청주로 간 것이 언젠데요? 청주에 오랜만에 오셨나 봅니다.”
“예 이십 년이 훌쩍 넘어 삼십 년 가까이 돼요.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택시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한 번 더 흘깃 본다. 나는 눈에 익을 어떤 것이라도 찾으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치듯 지나가는 도로 안내 표지를 보았다. 충북대학교와 화살표가 그려진 표지판이 보인다. 그때의 충북대학은 청주를 막 벗어나 청원군과의 경계에 있었다. 대학이 통째로 옮겨 앉았을 리는 없고 청주에 인접해 있던 이 지역이 청주에 편입된 모양이다. 이런 상태라면 한참을 더 가야 무심천에 닿을 것이다. 거리도 처음 보는 거리였고 군데군데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거리에는 서울 여느 곳과 같이 오가는 자동차로 꽈 차 있고 시내버스로 계속 운행되고 있다. 나는 시내버스의 번호들을 눈여겨보았다. 노선도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모양이다. 두 자리 숫자의 번호가 각기 다르다. 내가 이곳에 살 때에는 남북으로 다니는 노선과 동서로 다니는 노선 단 두 개의 시내버스가 있었다. 운행도 어찌나 느리게 하는지 부지런히 걸으면 정류소에서 만나고 버스가 조금 앞서가다 또 다음 정류장에서 만나곤 했었다. 게다가 운행간격이 뜸해서 기다리다 보면 차라리 걷는 것이 더 빨랐다. 오십 분쯤 걸어야 할 거리는 타야 할까 걸어야 할까 망설일 것도 없이 걸어 다녔다. 내 머릿속의 버스는 느린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인지 쌩쌩 달리는 버스를 보며 이곳이 청주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왼쪽으로 청주 고등학교를 알리는 표지판이 스친다. 바로 이어서 눈에 익은 청주 종합운동장이 보인다. 저곳에서 전국소년체전이 열렸었다. 소녀였던 나는 생의 한가운데를 벌써 지났는데 운동장은 우직하게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다. 학교와 종합 운동장 건물들이 청주임을 생각나게 해 주듯이 무심천도 내 마음을 옛날의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 줄 것이다.
30여분 낯선 거리를 지나고 차가 무심천 둑을 달리고 있다. 옛날의 흙으로 덮여 있던 길이 아니었다. 그때는 우마차 하나 정도 지나갈 수 있는 도로여서 산책하는 사람만 둑을 거닐었다. 이제는 잘 정돈된 2차선 도로로 포장되어 있다. 아마도 시내 외곽과 연결하는 도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둑을 달리던 차가 둑 아래로 연결된 갈림길로 들어섰다. 긴 하천을 따라 연결된 도로 위로 차가 달린다. 둑 너머에 낯선 건물들이 빼곡히 솟아 있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시내를 관통하는 긴 하천이어서 자칫 잘못 내렸다가는 한참을 걸어도 약속시간까지 그 장소에 가지 못할지 모른다. 무심천 근처에는 내가 다녔던 청주여자 중학교가 있다. 그곳이라면 약속 장소와 멀지 않아서 여자 중학교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세워달라고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기사는 다 왔다며 차를 멈추고 꼭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어떤 것이라도 찾으려고 주변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내가 늘 건너서 등․하교하던 다리가 보였다. 다리를 건너 학교로 이어지던 길을 따라 눈으로라도 가려했지만 길은 높은 건물에 막혀 끊어진 듯 보였다. 아마 저 건물 뒤편에 학교는 그대로 있을 것이었다. 그때엔 이곳에서 보이는 다리는 하나뿐이었다. 이제 내 발자국이 겹겹이 쌓였던 다리는 이미 다리의 기능을 상실한 것 같다.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건물들이 다리 위에 꽉 들어서 있다. 아마도 다리 위에 상가가 형성된 모양이다. 그 대신 멀리 또 가까이 새로 세워진 낯선 다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헌 다리 바로 옆에 새로 놓아진 다리는 한껏 멋을 내었다. 무엇보다도 다리 밑으로 흐르는 평소에 가늘게 흐르기 때문에 무심천을 냇물이라 하지만 장마나 홍수가 나면 웬만한 강줄기 못지않게 물이 둑 안을 가득 채우며 도도히 흐른다. 그래서 강폭을 줄일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냇가에는 한강 시민공원처럼 테니스 코트, 자전거 도로, 롤러스케이트 장, 농구대 등이 설치되어 있다. 군데군데 나무로 된 벤치도 놓여있다.
잡초들이 잔디대신 깔려있고 뒷산 언덕처럼 완만했던 그때의 강둑도 아니다. 재윤이와 그 강둑에 아니 언덕에 앉듯이 수 없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그때는 강둑 어디에서든지 언덕을 내려가듯 아래로 내려가면 냇물에 손을 씻고 발을 담그기도 했다. 이제 둑은 잘 다듬어진 네모난 돌로 축대를 쌓아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간간히 둑에서 내로 통하는 계단이 놓여 있다. 계단 외에 다른 곳은 마치 절벽과 같아서 아무 곳에서나 냇가로 내려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것 같다. 나는 재윤이와 함께 편지를 묻었던 수양버들나무를 찾았다. 그와 함께 묻었던 그 수양버들이라도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나무들은 모두 베어지고 그 자리인듯한 곳 근처에는 은행나무들이 쭉쭉 자라고 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옛날 나무들의 자취는 남아있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리에서 첫 번째 수양버들 나무가 있었던 자리를 눈짐작으로 찾으려 했다. 그러나 잘 포장된 도로가로 빨간 보도블록이 누워있다. 내 나름대로 가늠한 그 자리에 그때의 나무처럼 섰다.
7
시계의 바늘은 11시 30분을 조금 지나고 있다. 30분만 지나면 된다. 기다려야 할 30분이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기다리지도 보채지도 않았는데 졸업 후 어느 날 나보다 먼저 취직한 신우가 나를 찾아왔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첫 월급을 탄 턱을 내라는 것이었다. 신우와 경양식 레스토랑에 갔다. 신우는 비프 커틀릿을 나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다. 2차는 자신이 사겠다며 칵테일 바로 끌고 갔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에게 칵테일의 맛은 술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칵테일 맛을 보여주겠다며 다섯 잔을 시켰다. 나는 술은 물론 칵테일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서 그녀가 주문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웨이터가 가져온 다섯 잔은 색과 향, 잔의 모양이 달랐다. 신우는 다섯 개의 잔 중에서 갈색 칵테일 잔을 내 앞에 내밀었다. 이름이 카카오 피츠인데 순한 것이니 한 번 마셔보라고 했다. 좋아하는 커피의 색과 같다는 이유로 기꺼이 한 모금 마셨다. 독특한 향이 술 특유의 맛을 가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체리처럼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과 노란색 등 색깔도 투명하고 각기 독특한 개성이 있는 잔도 예뻤다. 안개처럼 흐르는 조명 아래에서 다른 칵테일의 향은 어떨지. 잔을 하나씩 코앞에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꽃 향기를 맡듯 향을 음미했다. 향에 취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술에 취하는 게 그런 것일까 눈까풀이 가늘게 떨리고 무거워지는 것 같다.
“야, 이게 취하는 거니? 눈까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아.”
“시원치 않기는, 카카오 한 잔에 취해!”
나는 슬그머니 향만 맡았던 잔을 신우 앞으로 밀었다. 내가 내민 네 개의 잔을 신우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홀짝홀짝 다 마셨다. 예쁜 색깔의 술 같지도 않은 것들이 신우를 취하게 했는지 신우는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영인아 넌 짝사랑해 본 적 없지?”
신우는 자신이 사랑하게 된 사람의 생김새를 그림을 그리듯이 말했다. 심지어는 흔한 성씨는 싫은데 그 남자가 강 씨 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매력이라고 말할 정도로 빨려 들어가 있는 듯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면 식은땀이 나고 머리카락이 꼿꼿이 설 정도의 전율이 느껴진다며 울먹였다.
“신우야, 그토록 좋아한다면 네 마음을 전해봐.”
“그러고는 싶어. 그런데 그게 안 된단 말이야. 도저히….”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니?”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그럼 뭐가 문제인 거니. 너무 답답하다.”
“그는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고….”
그 말을 들으며 그 남자를 만나서 신우의 간절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나라도 그를 만나 너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 하지만 내가 그 틈새에 끼어서 너무나도 우연히 그가 만약 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안 되잖아.”
신우도 재윤이를 떠올린 듯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재윤이와 너 사이에 내가 끼어서 둘을 갈라놓은 것처럼. 더군다나 너희들을 갈라놓기 위해 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너희 둘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고 싶어.”
말을 마친 신우는 엎드려 한동안 등이 들먹이도록 울었다. 알 수 없었던 재윤이와 나 사이의 우정이 무너지게 된 까닭이 신우에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행위가 어떻든 나는 비난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모든 것이 이미 다 지난 일이 아닌가. 다만 지금 내 앞에 엎드려 흐느끼는 한 친구가 있지 않는가.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하고 그의 등에 손을 가볍게 올려놓고 울음이 서서히 멎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울먹이던 신우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신우를 위해 강 씨 성을 가진 그 남자를 만나야 할지, 만난다면, 혹시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면, 그가 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등등의 생각을 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만나고 난 후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아무 문제 없이 신우의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그를 만나야겠다. 어떤 일이 일어난 대도 내가 자제하면 될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와 선을 분명히 그을 자신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어떤 약속도 없던 터라 곧바로 약속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퇴근 후 그와 로방, 이라는 찻집에서 6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로방은 사무실에서 1분여 거리에 있어서 정확하게 약속 시간 10분 전에 찻집으로 갔다. 로방은 점심 식사 후 거의 매일 들르는 단골 찻집이었다. 점심시간 대에는 근처 회사원들의 주요 휴식처였다. 가끔은 저녁때 약속장소로 삼기도 했다. 벽에는 선실 분위가 풍기게 닻이라든지 항해일지, 배의 키 같은 것들을 붙어 있었다. 자주 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즉석에서 내려주는 커피가 다른 찻집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었다. 커피를 내려주는 주방장은 하얀 캡을 머리에 쓰고 요리사 복장을 했는데 훤칠한 키와 우람한 체격을 갖추고 얼굴은 호남 형이었다. 마치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가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를 해 왔을 법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일종의 유학파라는 프리미엄 때문일까. 커피를 내리고 있는 주방장이 다른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처럼 멋있는 남자라는 생각을 너나없이 했다. 간간히 여자들이 쪽지를 보내는 것이 눈에 띄곤 했다. 커다란 손으로 뽑아낸 커피를 보통 찻잔을 반으로 축소해 놓은 듯한 앙증맞은 잔에 담아내었다. 맛이 진해서 큰 잔에 마신 것보다 더 오래도록 입안에 향이 고여 있곤 했다.
ㄱ자로 놓은 크림색 소파의 안락감도 자주 가는 이유 중 하나였다. 눈을 감고 앉으면 거실에 앉아있는 것처럼 안온했다. 피로가 말끔히 씻기었다. 저녁시간대에는 TV에 자주 나오는 남자 탤런트가 두 시간 정도 DJ를 했다. 탤런트에 관심이 없던 나와는 달리 탤런트도 고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을 것이었다. 탤런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음악을 들으려는 신청곡들은 두 시간에 다 틀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누가 신청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체인징 파트너’가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신우가 그림을 그리듯이 말한 그 강 씨 성을 가진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고 탤런트의 말이 흘러나왔다.
“미스 심의 친구 되시는 분은 테이블 위에 있는 꽃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온 것이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한 송이 장미를 이마 높이로 들었다. 한 남자가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온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걸음걸이가 리듬을 타고 걷는 것처럼 경쾌했다. 처음 뵙습니다, 라고 말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나도 처음 뵙겠습니다, 말하고 실례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연히 왜 내가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지 궁금할 터였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려다 그쪽에서 먼저 물어오길 기다리는 편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쉬울 것 같았다. 언제 물어올까, 긴장하며 기다렸지만 그는 로방에 자주 들르시나요, 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거의 매일 들른다고 말하자 로방이라는 낱말이 어느 나라 말 같으냐. 고 말을 이었다. 자주 드나들긴 했지만 로방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낱말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음악이 좋고 커피가 맛있어 들르는 곳이었다. 글쎄요, 로방 로방, 하고 조금은 당황하며 되뇌었다. 그는 알고 있었으니 물어왔을 것이었다. 그가 이 찻집에 자주 들르는 것인가. 아님 한 번을 갔더라도 모르는 낱말의 뜻을 흘려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인지 몰랐다. 그는 미소 지으며 메모지에 路房이라고 썼다. 길로에 방방자, 길에 있는 방, 아님 잠시 들리기도 하고 거쳐 가는 방, 사뭇 그 뜻이 마음에 와닿았다. 우린 모두 잠시 머물기도 하고 거쳐 가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의미를 떠올리며 그를 보았다. 뜻이 좋아 자주 온다고 했다. 그럼 어느 때 잠시 로방에서 함께 했었는지도 모른다. 모르고 지낼 때는 그렇게 같이 있어도 모르는 것이다. 인식한다는 것이 그런 것인가. 사물을 알고 느껴야 그 사물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는 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를 다시 보았다. 의식하지 않았을 때 알아보지도 못했던 그가 지금 눈부시게 빛나보였다. 이어서 하얀 피부에 파르스름한 구레나룻이 있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은 것처럼 흐트러져 있는데 예술가의 포스가 풍겨 나왔다.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첫눈에 사랑이 싹틀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었는데 이런 감정이 내게 일어나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마음의 요동을 고갯짓으로 지우려 했는지 모른다. 나를 돌려놓기 위해 그를 만나려고 한 이유를 지체하지 말고 말해야 했고 직선적으로 물었다.
“신우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그럼요.”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그가 모른다고 말하길 바랐다. 내가 모르는 것을 일깨우려고 왔다고 말을 꺼내기는 얼마나 쉬운가. 나는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럼 내가 왜 그를 만나려 했는지 그는 이미 간파했을 터이다. 알면서 왜 나왔을까.
“친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만 나온 건 아니지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 어쩌면 신우를 위해서라는 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신우가 그토록 마음을 준, 모든 걸 갖추었다는 남자는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그것을 감추고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 단정 지었는지 모른다.
“사실 저도 신우 씨의 친구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나왔지요.”
만나는 순간 자신이 그리던 이상형의 모습과 닮아서 기뻤다. 다음에는 먼저 만나자고 할 거다. 그는 자신감 있는 어투로 말했다. 만나자면 내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우의 친구로서 그럴 수 없다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미스, 아 성함이 무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하여튼 신우 씨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입니다. 개의치 않길 바랍니다. 신우 씨의 마음은 헤아리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할 동반자를 인정으로 엮을 수는 없지요.”
그의 어조는 단호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저 찻잔을 만지다 냉수를 마시다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물론 대답을 안 할 것이다. 그러면 신우 씨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지 않으냐. 그와 만났다는 것을 신우가 알면 안 되었다. 그는 메모지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다음날 오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인 씨, 접니다. 강기훈. 오늘 6시에 로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저기….”
망설이는 사이 그는 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놓은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가면 안 된다. 안되지. 오후 내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퇴근 후 내 발길은 로방을 향하고 있었다. 6시 10분이었다. 문을 들어서는데 가슴이 콩닥거렸다. 10분이 지나서 그가 없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문을 들어서는데 그가 불쑥 장미꽃 한 송이를 내민다. 그는 자연스럽게 조금 앞서 걸으며 자리로 안내했다. 소파를 당겨 안기 좋게 한 다음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문에서 10분밖에 서있지 않게 해서 고맙다. 그는 6시부터 장미꽃을 들고 내가 들어서기를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신우에 대한 생각은 티끌만큼도 안 했다. 그와 대부분 로방에서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다. 로방에서 식당으로, 로방에서 야외로, 6개월여 수없이 데이트를 했다. 신기하게도 신우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고 했다. 아무런 상의도 해오지 않고 휴직계를 내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관계하는 회사니 공부를 마저 하고 돌아오면 복직은 어렵지 않다. 박사 과정은 마쳤으나 박사 후 과정까지 이수해야겠다. 뜻한 바가 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공부를 마쳐야 한다. 어제, 오늘 결정한 일이 아니다. 나를 만나기 전부터 준비해 왔다. 같이 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동생의 학비를 대어주고 있어 동생이 졸업할 때까지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2년은 지나야 따라나설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의 학비는 걱정 말라, 자신이 대어 줄 테니 염려마라고 했다. 동생 일은 내 힘으로 하고 싶다. 2년 후에는 그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2년이면 박사 후 과정을 마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혼을 하자고 했다. 결혼을 하면 자신의 동생도 되는 것이니 도움을 주는 일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사실 그의 말에 솔깃해져서 며칠 밤 그와 결혼하고 또 유학길에 함께 가는 상상을 했다. 표면상으로 사양했지만 그가 강하게 추진하길 바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조르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잠잠해졌다.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결혼 허락을 받아 놓을 테니 주변을 돌아보지 말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부모가 우리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고, 그의 의지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표정에 드리워져 있었다. 신우가 얘기했던 바로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은 내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동생 일을 깨끗이 마무리 짓고 결혼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다. 결혼은 공부가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결국 내 입으로 말하였다. 그가 아무 대꾸 없이 내 말을 들었고, 떠날 때까지 그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떠나는 날 나는 다시 그와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9월 학기에 맞추어 떠나기 전 무심천에 갔던 것인데 그의 다짐을 묶어두고 싶었다. 재윤이와의 일을 끄집어내면서까지 유치한 퍼포먼스를 그에게 강요하다시피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바쁜 일정과 장마철을 맞추는 일로 머리가 복잡하였지만 기어이 우리는 나무 밑에 상자를 묻었다.
그가 유학을 떠나고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 전화 한 통 없던 신우가 해쓱해진 얼굴로 찾아왔다.
“너, 많이 아팠구나.”
“응,”
“너 혼자 가슴앓이를 하지 말고 한 번이라고 네 뜻을 전해보지 그러니.”
가증스럽게도 내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너와 만난 후 용기를 내서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라도 접근하려고 해 보았단다.”
“그래서?”
신우에게서 어떤 말이 나올지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라는 말을 나는 연거푸 두 번이나 말했다.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그가 사무적인 말을 할 때도 눈길을 주지 않아.”
그래서 나는 또 다그치듯이 말했다.
“최근 몇 달간 그는 얼음보다 더 차고 냉정하더라. 교회에 다니는 내가 점까지 치게 만들었어. 점쟁이의 말이 그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대. 젊어서 죽은 영혼이 내 사랑을 방해한다더구나. 그 말을 들으며 왜 재윤이가 떠올랐는지 몰라.”
“어떤 경우라도 재윤이는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니야.”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어.”
“누구? 그 사람과는 아닐 테고?”
엉큼하게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아니, 그는 얼마 전에 유학 갔어. 그를 잊으려고….”
결혼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나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신우는 결혼을 했다. 그와 만날 때마다 신우에게 추호의 죄책감 같은 것도 없이 나는 자유로웠다. 그러면서도 신우가 결혼을 한다면 거칠 것이 없다고 나는 되뇌고 있었다. 나와 그의 관계를 알아챈 것처럼, 나와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듯이 신우는 그 후 연락을 끊었다.
8
막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 고등학교 졸업한 지 30년이 된 올해 들어 불현듯 재윤이와 약속했던 해라는 생각과 함께 신우가 보고 싶었다. 시간을 거슬러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어렵게 신우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가냘프고 맑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우는 외출 중이었다. 나는 신우의 딸 되느냐고 물었다. 내 추측이 맞았다. 대학 2학년이라고 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라나는 것을 지켜본 것처럼 친밀감이 느껴졌고 전화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이 갔다. 신우에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신우를 만나게 될 기쁨을 억누르며 전화벨이 울리면 반달음질로 달려가 전화를 받았으나 엉뚱한 전화만 걸려왔다. 다음날 오전이 돼도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어 빚쟁이가 빚 독촉하듯이 3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전화를 했으나 신우는 집에 없었다. 혹시 직장 생활을 하는지도 몰라. 하지만 메모까지 남겼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나. 갖가지 경우를 떠올렸으나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저녁 늦게 전화를 했다. 신우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신우야, 나 영인이야.”
“그래, 네 목소리도 늙었구나.”
그럼 나이가 몇인데 라며 응대를 했지만 20여 년 만에 처음 하는 말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나, 같은 호들갑스러운 표현은 아니라도 얼마만 이라든가 반갑다 보고 싶다 당장 만나자 등, 정이 가는 말은 수없이 많다. 이미 내 메모를 받고 전화가 없었던 까닭을 알 수가 있었다. 곧바로 전화를 끊고 싶었다.
보고 싶으니 만나자고 두 번째 말을 했다. 신우는 너 어디에 사니, 라고 물었다.
“강남구 개포동.”
“그렇구나. 역시 잘 사는구나.”
역시, 라는 말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나는 무슨 말로 대꾸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나, 네 결혼식장에 갔었다.”
“연락을 못했는데 어떻게….”
“내 주파수가 강인훈 씨를 향해 있다는 거, 너 몰랐니?”
“….”
“입장하는 신부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다가 신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신우가 어느 구석에서 우리의 결혼식을 지켜보았던 것일까.
“미안하다. 신우야.”
“인훈 씨도 잘 계시고?”
“우리 한 번 만나자. 그간의 얘기도 나누고.”
신우는 요즈음 많이 힘들다. 남편의 부도로 뒤늦게 직장생활을 해서 시간 내기가 어렵다. 나에 대한 마음 정리가 안 된다고도 했다. 20여 년이 흘렀어도 신우는 나를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거였다. 신우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만나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를 신우에게 꺼내보여야 한다.
“나, 인훈 씨 보낸 지 몇 년 되었어.”
“뭐? 인훈 씨가? 암이라도 걸렸던 거니?”
“아니,…,
“그럼 이혼했다는 말이야
“미국에서 살았던 여자에게 갔어.”
미국에 있었던 여자. 맞다. 그 여자는 미국에서 살았던 여자지 미국여자는 아니다. 미국에서 살았던 여자, 라고 중얼거리는 신우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신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만날 때까지 잘 지내라며 전화를 끊었다. 신우에게 또 솔직하지 못했다. 남편을 미국에 살았던 여자에게로 영원히 보낸 것이 아니니까. 시한부 여자가 생을 마치면 그는 분명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건 그녀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 잠시 맡겨 둔 게 맞다. 신우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마 내 속마음을 알고 더 가증스러워할지 몰랐다.
미국에 살고 있는 여자, 그림자처럼 살았던 여자가 그늘에서 홀연히 나와 청년이 된 아들을 그와 나에게 보냈었다. 그 청년이 아기였을 때 찍었을 법한 사진 한 장을 달랑 들고 나타났다. 그를 꼭 닮은 청년은 가방을 뒤지더니 편지 한 통을 내게 내밀었다. 청년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도록 그의 서재에서 빠져나와 침실에서 편지를 펼쳤다. 여자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영인 씨 보세요 라는 말로 편지글을 시작했다.
영인 씨 보세요
안녕하셨나요, 라는 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아들과 편지를 받고 놀랄 영인 씨를 생각해 봅니다. 이 상황에서 이해해 달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이해하여 주셔야겠습니다.
저는 박혜련이라고 합니다. 우선 저란 사람이 누구고 언제 인훈 씨와 관계를 맺었었는지부터 말씀드려야 하겠지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인훈 씨가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부터입니다. 저도 유학을 갔던 것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재미 교포 2세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같은 대학에 다녀서 인훈 씨와 친구가 되었어요. 저는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그는 석사과정이었어요. 대학 내 한인 젊은이들의 모임에서 맞나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저는 그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인훈 씨는 친구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석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도 그는 저를 친구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박사 과정을 하는 동안 그는 연구에 몰두하기 때문인지 아님 저에게 관심이 없어서인지 제게 만나는 시간을 내주지 않더군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인훈 씨에 대한 내 마음은 사그라지지 않았어요. 술을 미치도록 마셔보고 고속도로를 달려보아도 인훈 씨를 마음에서 몰아내지 못했답니다. 인훈 씨가 박사 학위를 받을 날은 다가오고 그는 학위를 받으면 귀국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가 귀국하기 전에 인훈 씨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그가 학위 받기 며칠 전날 친했던 몇몇 친구들이 그를 위해 파티를 열기로 했지요. 물론 그 파티는 제가 의도적으로 기획했던 것이고요. 파티 전날부터 저는 일주일간 직장에 휴가까지 내놓았답니다. 파티가 끝나고 술이 적당이 들어간 그에게 제가 그동안 그에게 품었던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아무 조건 없이 며칠만 같이 지내달라고 했습니다. 학위 받으면 귀국할 것이고 그가 귀국하는 대로 제가 마음을 접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그는 저와 3일 밤을 같이 보냈습니다. 그때 아들을 갖게 된 것이지요. 임신을 할 때부터 저는 아들을 키우며 혼자 살 작정을 했습니다. 물론 그에게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저 혼자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할 때 모았던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박사 후 과정을 하러 가까이 와 있다고요. 그를 만났지요. 그는 저와 인사를 하자마자 공부를 마치고 나면 결혼할 것이라며 영인 씨 이야기를 하더군요. 말하는 내내 그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아들을 빌미로 그를 뺏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인훈 씨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을 미끼로 결혼할 뜻은 없다. 아들을 키우며 사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가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든 깊이 고민할 것이고 결국 저에게 마음을 돌릴 것이니 짐짓 결혼에는 뜻이 없는 것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제 예상과는 달리 영인 씨에 대한 그의 사랑은 확고했습니다. 그는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고 양육비는 넉넉히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저 혼자 그를 좋아한 것이었고 조건 없이 그와 관계를 맺었으니 그쯤 해서 그에게 제안 하나만 했습니다. 아들과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요. 아들이 가져간 사진이 그때 찍은 것입니다. 박사 후 과정을 하는 동안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었지만 그는 과정을 마치고 담담히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결혼 청첩장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며 보내왔습니다. 짧은 편지와 함께요. 아들을 잘 키워 달라. 미국은 한국과 정서가 다르니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쓰여 있더군요. 한 가지 미안한 일이 있다며 적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영인 씨와의 결혼을 그의 부모님이 반대를 해 왔었다. 그때 제 이야기를 꺼냈다더군요. 미국에서 사귄 여자가 있다. 영인 씨와의 결혼을 반대하면 아예 미국으로 날아가 저와 결혼을 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미안하다더군요. 저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언급해서 더더욱 미안하다고. 안 밝혀도 되지만 말한다고요. 보기에 많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저는 어떻든 혼혈아이거든요. 다행히 아들은 그를 꼭 빼어 닮았지요. 이 편지를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습니다. 20여 년을 저는 그를 품고 살았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요. 저를 이해해 주시겠지요. 그냥 아버지가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청년보다 그녀의 편지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일생 한 남자를 가슴에 품고 산 여자 때문에 가슴이 아려왔다. 손바닥으로 여러 번 가슴을 쓸어내려도 통증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슴이 아파서 그녀의 편지는 두 번 다시 읽을 수 없었지만 기실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아픔이 내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날 밤늦게 침대로 돌아온 남편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여자에 대한, 또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줄 알았다. 놀라움과 뒤엉킨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잠이 달아난 지 오래다. 나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어나 앉았다.
“저 아이 엄마가 위암이라는 군, 그것도 말기.”
내가 입은 충격은 남편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을 미국에 있는 여자에게 보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동안만이라도 여자의 몸이 아닌 마음의 병을 조금이라도 치유해주어야 한다. 그때 왜 신우가 떠올랐을까. 신우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러 번 남편에게 권했다. 짐짓 남편도 못 이기는 척하며 내 말에 따를 건 뻔했다.
9
편지가 담긴 보석함도 사라지고 없다. 재윤이와 묻었던 것뿐 아니라 남편과 하나 건너 나무 아래 묻었던 것도 역시 사라지고 없다. 둘 중 하나라도 남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연은 우리의 편지를 그대로 품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1차선 정도의 둑길은 2차선 도로로 포장되었고 도로 가장자리는 한 두 명이 걸을 수 있는 좁은 보도가 나있다. 길을 넓히기 위해 가로수를 들어낼 때 파 해쳐진 땅 속에서 보석함이 나왔을까. 흙더미 속에 감춰진 채 트럭에 실려 어딘가에 다시 묻혔을까. 나오자마자 우리의 소중했던 보석함은 인부의 손에 의해 아무렇게나 흙더미에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무심천은 변함없이 흐르는데.
마음이 있는 듯 또, 없는 듯 흐르는 무심천을 보고 있다. 무심천의 맑은 물처럼 재윤이의 눈은 빛났었다. 무심천을 내려다보며 조랑조랑 시를 읊을 때엔 어느 것이 물소리인지, 나뭇잎이 찰랑거리는 소리인지 재윤이가 읊는 목소리인지 구별이 안 갔다. 재윤이가 처음 내게 들려준 시는 물론 재윤이가 부연 설명을 하지 않으면 몰랐을 사포(Sappho)의 시였다.
내게는 그분이
내게는 그분이 마치 신처럼 여겨진다.
당신의 눈앞에 앉아서
얌전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 남자분은,
그리고 당신의 애정 어린 웃음소리에도
그것이 나였다면 심장이 고동치리라.
얼핏 당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미
목소리는 잠겨 말 나오지 않고.
혀는 가만히 정지된 채 즉시
살갗 밑으로 불길이 달려 퍼지고,
눈에 비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어
귀는 먹먹하고.
차디찬 땀이 흘러내릴 뿐,
온몸은 와들와들 떨리기만 할 뿐,
풀보다 창백해진 내 모습이란 마치
숨져 죽어 버린 사람 같으리니.
재윤이는 나와의 일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사포의 질투라는 시를 내게 들려주었던 것일까. 나는 교과서에 나왔던 시는 거의 외우고 있었지만 사포라는 인물이 시인이었는지 몰랐다. 더더욱 사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재윤이게서 사포라는 이름을 들은 후 나는 도서관에 가서 사포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사포는 고대 그리스의 여류시인인데 하프에 맞추어 시를 노래로 불렸다고 쓰여 있었다. 사랑과 비극적 감정을 심오하고 아름다운 시로 표현하는데 뛰어났다고 했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그 당시 내겐 회오리바람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포는 어린 귀족 소녀들에게 시와 예술을 가르치고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도왔다. 그 사이에 여자들끼리의 성적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의 보편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것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사포의 시에도 그러한 부분은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리하여 레스보스섬의 사람들이란 말, 레즈비언은 남성과 똑같이 조직을 만들어 공부하는 여성들이 있는 곳을 뜻하는 말이 되었고 이후 여성동성애자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사포를 중심으로 하여 여성들만이 모여 그들의 예술과 학문 세계를 만들어 갔다는 것은 대단한 파격을 의미했다.
재윤이는 사포로부터 프로스트에 이르기까지 다른 정서의 시들을 주렁주렁 외웠다. 워즈워즈의 무지개를 외울 때는 어린 소년처럼 보였다. 마지막 행인 ‘내 생애가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지길’ 대목은 몇 번을 반복해서 외우고는 자신도 평생을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지게 살고 싶다고 했다.
재윤이가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를 외울 때, 내 심장박동도 함께 뛰었다. 재윤이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되었고 그녀 따라 나도 시가 좋아졌다. 그래서 그녀에게 질 새라 공부를 제쳐둔 채로 시를 외우곤 했다. 가을이 되면 가을에 관한 시를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해가 저녁 하늘을 황홀하게 물들이며 서산에 걸려있는 것도 모르는 채 읊었다. 재윤이는 지금도 여전히 이 계절 봄을 노래하고 있을까.
‘재윤이는 지금 오고 있는가. 어디쯤 있을까.’
몸은 기다려도 마음은 이야기를 만들며 날아다닌다. 그래서 기다림으로 끝날지라도 기다림을 즐기는 편이다. 한 번만이라도 라며 재윤이의 편지를 기다린 적이 있다. 그러나 서울로 진학한 이후부터 보름에 한 번씩 편지대신 전화를 받았다.
“영인아, 너도 어제 재윤이 편지 받았지?”
“응.”
나는 늘 거짓 대답을 했다. 재윤이와 나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어서였다. 한 달에 두 번 재윤이는 나에게 확인 전화를 하는 그 친구에게 어김없이 편지를 보냈고 그는 내 대답이 거짓인 것을 모르는 것처럼 전화를 했다. 처음 얼마간은 의도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는 재윤이가 유치해 보였다. 그러나 미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 정기적인 편지는 나에 대한 우정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서툰 감정은 사라지고 정이 쌓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우리 사이의 오해는 꼭 내가 먼저 풀겠다고 마음을 더욱 굳히었으나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던 해 3월 14일이었다.
“영인아, 네 마음을 생각해서 전화를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 재윤이 편지를 받았어. 너도 받았지. 연탄가스 사고로 죽던 전날 부친 건가 봐. 재윤이는 죽고 없는데 말이야. 제일 친했던 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니?”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재윤이가 죽었다고. 편지는커녕 나와 가장 가까웠던 벗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 대꾸도 못하고 수화기를 놓쳤다, 늘어진 전화기에서 그 친구의 미안해라는 말만 수없이 들려왔다. 그 후 재윤이에 대한 모든 것들은 나에게 오지 않고 차단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재윤이는 올 수가 없는데. 아니, 한 번도 재윤이의 죽음을 믿은 적이 없어. 하지만 무심천 물줄기가 거꾸로 흐를 수 없듯이 사실은 사실일 뿐이다. 하지만 영혼이라도 올 거야. 무심천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다. 나에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간 얼굴들이 보인다. 재윤이의 얼굴이 다가온다. 재윤아, 정말 보고 싶다. 어느 스님이 말했었지. 꽃을 보면 꽃이 되고 물을 보면 물이 되어야 무심에 이른다고. 내가 자연의 사물과 하나가 된다면 재윤이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물이 되어 흘러가고 싶다. 재윤이와 영혼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또 다른 30년 후, 이 모습으로 지켜볼 수 있을까. 또 그 후 30년 후에도 무심천은 흐르겠지. 재윤아 너는 봄바람이 좋다고 했으니 동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되었느냐. 훗날 나는 서풍이 되련다. 그때가 오면 우리, 흐르는 무심천 위에서 그렇게 만나자꾸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큰바늘과 작은 바늘은 서로 만나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바람이 나를 한 번 더 흔들며 지나갔다. 어쩌면 저 봄바람이 재윤이 인지도 몰라 그는 봄바람이 좋다고 했잖아. 그 풋내가 좋다고. 영혼은 육체를 떠날 때의 나이로 존재할지 모르지 또 그때의 마음으로.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지게 살고 싶다던 그녀는 이 세상의 오욕에 물들지 않고 새벽이 밝아올 때 떠나갔으니까.
나는 바람을 두 팔로 맞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은 이미 나를 지나쳤다. 저 바람처럼 재윤이가 죽었다는 말은 날 한번 스치고 지나갔다. 잘못 들은 건지도 몰라. 다른 친구들은 재윤이의 재자도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전화했던 그 친구가 재윤이에게서 우리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날 시험한지도 모른다. 재윤이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체념하려고 해도 재윤이는 꼭 살아있는 것만 같다.
“혹시 영인?”
분명히 재윤이의 목소리다. 역시 재윤이는 살아있었어. 가슴이 뻐근하고 울렁거려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어지럽다. 숨을 크게 내쉬고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재윤이가 거기 서있다.
“재윤아!”
나는 와락 치솟는 울음을 삼키며 재윤이를 껴안았다. 재윤이에게서 나오는 체취는 30년이 흘러갔어도 느낄 수가 있다. 재윤이의 몸은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내 품에 있는 뻣뻣한 몸은 재윤이가 아냐. 반사적으로 껴안았던 팔을 놓고 내 앞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매우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곧게 서서 나를 보고 있다.
“누구신지요?”
“영인 씨가 틀림없군요. 자.”
여자는 나에게 우리의 소중한 보석함을 내밀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보석함을 받았다. 보석함을 가슴에 품었다.
“아버지가 나무를 들어낼 때 이 보석함을 발견하셨대요. 보석이 들어있는 줄 알고 남이 볼세라 품에 넣었다가 집에 와서 열어보니 편지가 들어있다고 저에게 건네주셨어요. 편지를 읽어보니 두 분의 모습을 보는 듯했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우정을 꼭 전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여자는 보석처럼 빛나는 우정을 간직하는 즐거움도 컸다고 말했다. 두 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함을 전하려고 나왔다며 재윤이를 찾는 듯했다. 아버지에게서 함을 받을 때 소녀였을 여자도 나처럼 중년을 훌쩍 넘겨 보였다. 여자가 오래전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친밀감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나는 여자에게 재윤이와 함께 함을 묻던 날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무심천에서 옷을 적셔가며 장난친 부분을 들으며 여자는 그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재윤이의 죽음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재윤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여자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흘러가는 무심천을 보고 있지만 무상함을 지우려는 표정이 옆모습에 역력히 드러나 있다. 나는 함에서 편지를 꺼내어 내가 쓴 편지를 여자에게 잠시 쥐어주고 재윤이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영인아, 영인아
아무리 불러도 또 불러보고 싶은 이름 영인아. 너를 보기만 해도 나는 마냥 행복했었지. 30년 후 무심천 둑에서 꼭 만나 편지를 서로 읽어야 해. 약속 반드시 지킬 거지. 한 가지 욕심을 낸다면 살아가는 과정을 서로 지켜볼 수 있었으면 해. 나는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이 편지를 쓰면서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에 대해 또 너의 인생에 대해 두 편의 드라마를 썼단다. 밤이 이슥하도록 시간 가는 줄 몰랐단다. 원래 내 꿈은 한 권이라도 좋으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소설을 쓰는 거였어. 너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더구나. 너의 이름 영인이 들어간 불후의 명작을 꼭 쓰고 싶단다. 물론 너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든 상관없이 이름만은 작품 속에 남기고 싶어. 내 작품에 네 이름이 쓰인다고 화내지 않을 거지. 너는 나의 꿈이 시인인 줄 아는 것 같더구나. 소설이야기는 꺼낸 적도 없고 늘 시를 입에 달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지. 너 기억나지. 무심천을 바라보며 이어달리기하듯이 시를 주고받으며 읊던 일을. 한 때는 시인을 꿈꾼 적도 있단다. 소설가로 방향을 바꾼 것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고 나서야. 다른 작가와 달리 동양에 뿌리를 둔 사람처럼 쓴 글들에 빠져들곤 했단다. 너는 공부도 잘하고 냉철하였지. 픽션은 싫다면서 수필집, 명상록 같은 책들만 읽었던 것 생각난다. 이 편지를 읽을 때엔 꼭 작가가 되어 너를 만나고 싶다. 너도 나와 같은 길을 갔으면 하고 수없이 바라기도 했지만 네가 늘 하던 말대로 그릇마다 그 쓰임이 다르다는 것을 곧 깨달았어.
너는 그랬었지. 양처는 말고 현모는 되고 싶다고. 딸이든 아들이든 잘 키워내고 싶다고. 우리가 만날 때면 넌 반드시 현모가 되어있을 거야. 한 사람을 잘 키워낸다면 하나의 놀라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나는 소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너는 너의 원하는 바로 세상을 만들어보자. 너의 집에 가서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면서 너의 꿈이 자연스레 너의 마음에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단다. 친구 같은 아버지, 언니 같은 어머니가 있는 가정에서 지내는 너를 얼마나 부러워했었는지 너는 모르지. 너의 어머니를 뵐 때마다 엄마가 무척 보고 싶었단다. 내가 왜 작은 어머니 집에서 살고 있는지 캐묻지 않는 네가 고마웠어. 너에게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이 편지에는 쓸 수 있어. 우리는 불혹의 나이가 지난 후 이 편지를 읽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중학교 일 학년 때 아버지와 엄마가 이혼했어. 어린 동생은 엄마가 양육하기로 하고 중학생이던 나는 아버지와 지내게 되었어. 2년 동안 아버지는 꿋꿋하게 나에게 엄마 노릇도 잘해 주셨지. 대학 입학할 때까지 재혼을 안 한다던 아버지는 결국 재혼을 하셨어. 새어머니는 내가 달갑지 않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더라. 알아서 물러나길 바란 것이지. 매일 마주치며 서로 미워하기 전에 나는 아버지에게 다를 도시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어. 마침 이곳에 작은 아버지가 살고 계셔서 기거하게 된 거야. 물론 아버지는 경제적인 것은 아낌없이 지원을 하셔. 작은 어머니도 짭짤한 하숙비를 벌 수 있기도 했고 고등학교 3년 간이란 것이 마음에 들었던지 기꺼이 맡아주셨어. 나에게는 대학 입학하는 날이 내가 완전히 독립하는 날이 되겠지. 짧게나마 이렇게 털어놓으니 가슴 한 편에 늘 웅크리고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기분이구나. 역시 친구는 좋은 거야. 내 응어리를 녹여줄 강이 되어주니 말이다. 너의 집에 사흘이 멀다 하고 가면서 내가 사는 곳에 한 번도 초대하지 못해 얼마나 미안했었는지. 너의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강정과 식혜 맛을 잊을 수가 없어.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면 어머니의 요리 솜씨도 전수받아 있겠지. 우리가 만난 후 너의 집에서 네가 만든 음식으로 대접해 줄 거지. 나는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을 작정이야.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시험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네 방에서 함께 밤을 지낸 일 생각나니. 딱 하루였지. 공부 잘하는 너는 어떻게 시험에 대비하는지 알고 싶었어. 저녁을 먹자마자 너는 자더구나. 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나는 네 뺨에 얼굴을 살짝 대었어. 시험공부하다가 네 뺨에 얼굴을 대기를 반복했어. 무슨 공부가 되었겠니. 엉뚱한 생각만 했지.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자는 네 얼굴을 보다가 불현듯 뽀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말짱한 정신에 뽀뽀를 하자면 네가 펄쩍 뛸 터이고 기회는 늘 찾아오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네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었지. 그때 네가 잠에서 깨는 바람에 가슴이 얼마나 쿵덕거렸던지. 잠에서 깬 너는 꿈에 미소년과 키스를 했다고 말하며 얼굴이 붉어졌었지. 그때 내 한 짓이 떠올라 내 얼굴이 붉어졌던 것 너는 모른 채 지나쳤겠지. 너는 네 말을 들은 것만으로 내가 얼굴이 붉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더라. 네가 세수를 하고 들어와 공부를 하기 시작하자. 나는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옆에서 말없이 책을 보다가 잠이 들고 말았지. 새벽녘에 공부할 게 남아있지 않느냐며 네가 흔들어 깨울 때까지 단잠을 잤던 것 기억에 생생하다. 물론 그날 시험은 다 망쳤지. 영인아. 나는 너를 너무 좋아했어. 사랑했어. 너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 다 털어놓으니 빚을 갚은 기분이 들어 내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야. 그것 말고는 너에게 감춘 건 없어. 모든 것은 같이 나누었으니 만나서 우리 밤새워 이야기 나누자. 그렇다 하더라도 주저리주저리 더 쓰고 싶지만 너는 성격상 간결하게 꼭 할 말만 쓸 것 같아 아쉽지만 쓰는 것 이만 끝내련다. 30년 후 너와 만나는 것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2010년 4월 7일 편지와 함께 만나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벗 재윤이가
추신: 이 편지 다 읽으면 우리 편지를 무심천에 띄우자.
이심전심일까. 신기하게도 무심천에 편지를 띄우자 라는 말은 나와 똑같았다. 나는 편지지에 비밀 잉크로 변치 않을 것을 상징하는 대나무를 그렸었다. 과연 재윤이는 어떤 말을, 아니면 나처럼 어떤 그림을 남겼을까. 나는 고개를 들어 옆에서 편지를 다 읽을 동안 잠자코 기다려준 여자를 보았다.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여자는 내가 둑 아래로 내려가려는 의도를 알아채고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의 뒤를 바짝 쫓아 내려갔다. 냇가에 이르러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무심천 위에 편지지를 놓았다. 여자가 놓았던 편지지에는 대나무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재윤이의 편지에는 하트가 또렷이 나타난다. 여자는 두 편지지를 번갈아 보다가 나를 쳐다본다. 나도 편지지를 번갈아 보았다. 물이 스며들자. 대나무와 하트는 희미하게 사라지더니 서서히 떠내려간다. 우리는 편지를 품고 무심히 흘러가는 무심천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