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28일] 다른 방식의 여행
"굳이 남들과 똑같이 살지는 않아도 좋을 것 같아."
남편과 비 오는 어느 해안도로를 달리며 얘기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공부하고, 대학 가고, 직장 생활하고, 그러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또 그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고.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한 거라고 혹자는 얘기한다.
우리 가족이 한달살이를 하면서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단지 조금 다른 생활의 방식, 여행의 방식, 쉬고 다시 충전하는 방식을 알아 갈 뿐이다.
아이들의 생각이야 아이들이 더 크면 직접 들어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그냥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고 있음에 만족한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쌓이면 행복한 인생이 될 테니까.
아침에 빵이 먹고 싶다던 남편 말에 빵 굽고 계란프라이 하는데 갑자기 밥을 먹어야겠단다.
오일장에 가면 호떡이나 주전부리를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시장에 진심인 남편, 마지막 해장국에 밥 말아먹었다.
일찍 가서 장 시작하는 것부터 보고 싶다고 했는데 설거지하고 준비하고 오니 9시를 조금 넘겼다.
벌써 차도 많고 사람도 적당히 많았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장구경하기에 좋았다.
오늘은 호떡 말고 붕어빵을 먹자고 했다.
붕어빵 들고 해변 근처 바위에 앉아 먹으니 바람도 시원하고 시야가 트이니 매일 먹던 붕어빵이랑은 다른 느낌이다.
꼴랑 저녁에 먹을 갈치 한 바구니랑 브로콜리 세 개 사 왔지만 남편은 그저 좋단다.
오후에 게잡이 할 때 쓸 생선대가리를 얻어와서 기분이 더 좋은 모양이다.
한동스테이에는 25일까지 있을 예정이라 이후 숙소를 알아보러 성산으로 갔다.
집이 아파트형 신축빌라라 잠시 고민해 보기로 하고 광치기 해변에 갔다.
남편이 이곳을 너무 좋아한다.
굵은 검은 모래에 발 끝까지 물이 들어오도록 누워있었다.
나는 흰색 반바지라 계속 서 있었더니 상균이가 의자를 가져다준다. 츤데레 같으니라고.
앉아서 꽃게랑도 먹고, 수다 떨고, 사진도 찍었다.
한참을 있다가 내일 하루 종일 여기서 다시 놀기로 하고 점심 먹으러 나왔다.
점심시간은 늦었는데 배가 안 고파서 국숫집을 찾았다.
며칠 전에 호로록에 갔었어서 오늘은 '가시아방'으로 갔다.
대기가 많을까 봐 어플로 출발 전에 예약대기를 걸어 놓고 땡 하고 차에서 나와 바로 먹을 수 있었다.
호로록 보다 대체적으로 맛있다.
비빔국수는 호로록이 더 맛있다.
여기가 맛이 없는 건 아니고 호로록이 좀 더 맛있다.
가시아방은 돔베고기가 확실히 맛있다.
집 쪽으로 가다 보니 스타벅스가 있다.
사이렌오더 하고 라테 한 잔 마시며 집까지 왔다.
커피를 마셨어도 왜 이리 졸린지,
온 가족이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도 남편 옆에서 한 시간 넘게 잘 잤다.
게잡이에 열심인 남자들은 오늘도 게를 잡으러 가겠단다.
아침에 받아온 생선 조각들을 미끼로 게를 잡겠다는 야심 찬 포부.
게튀김 할 거라고 나더러 튀김가루나 사서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하나로마트에 들러 내일 먹을 것까지 장을 봐서 들어오는 길에 게 잡는 남자들 봤는데 영... 시원찮다.
튀김가루 괜히 샀나 싶었다.
밥을 하고 있는데 상균이가 혼자 먼저 돌아왔다.
넘어져서 여기저기 까져서 들어왔다.
심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며 팔꿈치에서 피가 좀 났다.
씻고 응급처치 해주고 다독다독.
혼날까 봐 걱정했다는 상균이.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매번 강조했었어서 혼날 거라고 생각했었단다.
다쳐서 안쓰럽고 걱정될 뿐이지, 이 정도면 괜찮다.
튀김가루는 갈치 구을 때 밀가루 대신 쓰는 걸로 했다.
게들이 생각보다 커서 튀겨도 못 먹을 것 같았다.
덕분에 갈치가 너무 맛있게 구워져서 만족스러운 저녁 한 끼가 됐다.
밥을 먹는데 자꾸 물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다 봐도 물 흐르는 곳도 없고, 비도 안 오는데...
범인은 스뎅 통 속 게들.
빗소리가 듣고 싶은 어느 밤이면 ASMR대신으로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