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다른 방식의 인생

다른 방식의 여행

by 여행하는 SUN

9.

남편은 아버님과 닮은 점이 참 많다. 고집도 있고 본인 생각이 우선이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감성적이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기꺼이 배우고 고쳐나가는 멋진 마인드도 가지고 있다.

시집오고 나서 아버님은 예전에 사 두셨다는 무겁지만 예쁜 대리석 화병을 하나 주셨다. 시골집 장롱 위에서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화병이지만 나는 그 화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끔 지인분 화훼농장에 다녀오실 때는 꽃도 사다 주셨다.

아버님은 가난한 시골집 셋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군대를 제대하고 낯선 지역에 자리를 잡고 당차게 일하셨다.

가난한 부모, 형제들을 챙겼고 장손이라며 큰 조카는 당신 집에서 고등학교까지 보내셨다.

투박하지만 정이 많으셨고 배움이 부족하지만 당신만의 기지와 운으로 현명하게 인생을 사셨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일하시던 아버님은 50이라는 나이에 일을 손에서 놓으셨다. 지금으로 치면 ‘번아웃’이 왔던 걸까? 고개 들어 하늘을 본적도 별로 없다시던 아버님은 베개 없이 누우면 머리가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뒷목이 굳어 있었다. 습관처럼 반주를 하시던 아버님은 아들자식들이 찾아오고 함께 나들이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다.

‘일하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버님은 병원에 가는 날도 많아지셨다.



10.

"굳이 남들과 똑같이 살지는 않아도 좋을 것 같아."

남편과 비 오는 어느 해안도로를 달리며 얘기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공부하고, 대학 가고, 직장 생활하고, 그러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또 그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고.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우리 가족이 제주살이를 하면서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단지 조금 다른 생활의 방식, 여행의 방식, 쉬고 다시 충전하는 방식을 실천해 갈 뿐이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쌓이면 행복한 인생이 될 테니까.

아이들의 생각이야 아이들이 더 크면 직접 들어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그냥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고 있음에 만족한다.


아침에 빵이 먹고 싶다던 남편말에 빵 굽고 계란프라이 하는데 갑자기 밥을 먹어야겠단다. 오일장에 가면 호떡이나 주전부리를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시장에 진심인 남편은 먹다 남은 마지막 해장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일찍 가서 장이 시작하는 것부터 보고 싶다고 했는데 설거지하고 준비하고 오니 9시를 조금 넘겼다. 벌써 차도 많고 사람도 제법 있었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장구경하 기는 좋았다.

오늘 남편은 호떡 말고 붕어빵을 먹자고 했다. 각자 붕어빵을 들고 해변 근처 바위에 앉았다. 바람이 시원하고 시야가 트이니 매일 먹던 붕어빵이랑은 다른 맛이 났다.

우리는 꼴랑 저녁에 먹을 갈치 한 바구니랑 브로콜리 세 개 사 왔지만 남편은 그저 좋아 보였다. 오후에 게잡이 할 때 쓸 생선대가리를 얻어와서 그런 걸까? 게잡이에 열심인 남자들은 오늘도 게를 잡으러 가겠단다. 아침에 받아온 생선조각들을 미끼로 게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게튀김 할 거니까 당신은 튀김가루나 사서 집에 가 있어.”

나는 하나로마트에 들러 내일 먹을 것까지 장을 봤다. 들어오는 길에 게 잡는 남자들을 봤는데 영 시원찮다. ‘튀김가루 괜히 샀나?’ 생각했다.

밥을 하고 있는데 상균이가 혼자 먼저 돌아왔다. 넘어졌다는데 심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며 팔꿈치에서 피가 좀 났다. 혼날까 봐 걱정했다는 상균이.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매번 강조했었어서 혼날 거라고 생각했었단다. 내가 누굴 막 혼내고 그러진 않는데 말이다. 다쳐서 안쓰럽고 걱정될 뿐이지, 이 정도면 괜찮다.

튀김가루는 갈치 구을 때 밀가루 대신 쓰는 걸로 했다. 게들이 생각보다 커서 튀겨도 못 먹을 것 같았다. 튀김가루 덕분에 갈치가 너무 맛있게 구워져서 만족스러운 저녁이 됐다.

밥을 먹는데 자꾸 물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다 봐도 물 흐르는 곳도 없고, 비도 오지 않는다. 범인은 스테인리스통 속 게들. 빗소리가 듣고 싶은 어느 밤이면 ASMR대신으로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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