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11.
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병실에는 12명의 환자가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었고 90이 넘은 분도 계셨다. 대부분 콧줄을 끼고 호흡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할머니는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는데 뇌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매일 거울을 보고 머리에 쓴 가발이 달린 두건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나긋한 목소리로 간호사를 부르고 환자복 위에는 스카프를 걸치셨다. 나중에 간병인에게 듣기로는 예쁜 치매에 걸리신 거라고 했다. 치매의 행동장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먹는 걸 탐하거나 도벽이 생기거나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거나 심하게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버님 옆자리에는 말기 암 환자분이 계셨다. 50대 중반의 다소 젊은 남자였지만 마를 대로 마르고 초췌한 겉모습으로는 나이를 분간할 수 없었다. 매일 마약성 진통제를 달고 있었고 하루에도 여러 번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면회시간 외에도 자꾸 응급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가족들은 일주일 넘게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면회시간 전에 도착해서 대기실에 잠깐 기다리며 보면 그 가족들이 곧 응급실에 실려 갈 것처럼 대기실 한편에 쓰러져 쉬고 있었다.
어느 날 힘겹게 앉아서 숨을 고르는 환자를 보니 입술이랑 코끝까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사람 쉽게 안 죽는다. 죽을 것 같아도 용하게 밥도 먹고 또 일어나지. 그러다가 코끝이 하얗게 변하면 그러면 진짜 가더라.”
예전에 친정 엄마가 말씀하셨었다. 할아버지 때도 할머니 때도 그러셨다고.
다음날 병원에 갔을 때 아버님 옆자리 침대는 비워져 있었다.
폐렴인 아버님은 밥 먹는 시간이 제일 힘든 시간이 되었다. 장염 증상도 있어서 식사 후에는 설사도 했고 뱃속은 요동 쳤다. 나는 면회시간이면 아들들 배 아플 때처럼 아버님 배를 쓸어드렸다.
“선미 손은 약손, 아빠 배는 똥배,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우리 아빠 아프지 마라!”
보호자용 의자도 없고 3시간 내내 배를 쓸고 돌아오면 허리가 다 뒤틀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배를 쓸다 멈추면 아버님은 감고 있던 눈을 뜨시고 나를 바라보셨다. 더 쓸어 달라는 눈빛으로.
아버님은 언젠가부터 식탐이 생기셨다. 먹을 걸 보면 행동이 달라지셨는데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자꾸 받아 드시고 더 빨리 달라는 눈빛을 보내셨다. 그러다가 사래가 걸리고 기침하고 토하고, 호흡은 힘들어졌다.
결국 입원 한 지 3일 만에 쇼크가 왔고 그때부터는 콧줄로 식사를 대신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12.
“내 인생에 처음이다."
방청소 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계시던 친정엄마가 말씀하셨다.
"정말 처음으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즐기기만 하네."
제주로 내려오시기 이틀 전에 엄마가 손을 다치셔서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열흘가까이 밥도 빨래도 청소도 안 하고 쉬신 적이 정말 없었다. 인생에 한 번쯤은 그래도 충분할 엄마인데. 나도 친정 가면 쉬고 싶고 어린냥 부리고 싶으니, 엄마가 해주는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좋아만 했었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실 거라고 나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었다. 시집오고 나서는 한 번도 살림의 굴례에서 벗어 난 적 없었던 우리 엄마.
“이제 쉬엄쉬엄 재미난 것만 하세요. 혹여 하기 싫은 건 하지도 마세요."
아침은 어제 산책하며 사 온 식빵으로 프렌치토스트를 했다. 토스트라면 양배추에 양파랑 계란을 넣어 만들어야 하는 줄 아시는 엄마.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니? 되게 부드럽다."
혹시 빵이 싫으시면 찌개랑 밥을 드린다고 했지만 내 몫의 반절을 더 드시는 엄마. 요 며칠 먹는 게 달라져서 인지 황금변을 본다시는 엄마다.
제주살이 초반에 시작하고 싶었는데 매번 바다에 서퍼들이 너무 많았다.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엔, 특히 오전 첫 타임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9시 넘어 바로 월정리로 갔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서프는 시설도 깨끗하고 사람도 없어 좋았다. 실내 교육 한 시간, 현장 교육 한 시간, 자유 서핑 한 시간이다. 만조라 그런지 파도가 점점 높아졌다. 제대로 라이딩은 안 됐지만 열심히 놀았다. 아이들이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어찌나 안타까운지. 나도 같이 들어가 있었어야 했는데, 사실 내가 제일 하고 싶기도 했었다. 밖에서 한참 보다가 아이들이 보이는 카페에 엄마 모셔다 드리고 또 나와서 한참을 아이들을 봤다. 오늘밤 몸살이나 안 날지 모르겠다.
점심 먹고 아이들은 평소 하지 않던 낮잠을 즐겼다.
나랑 엄마는 하나로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오이, 당근, 파프리카에 복숭아도 또 사고 우유랑 고기도 샀다.
저녁은 남은 김치찌개로 부대찌개. 남편이 사다 놓고 다 못 먹고 간 비엔나소시지만 넣었는데 콩나물이랑 팽이버섯, 라면 하나 넣으니 양도 많다. 오이 하나, 당근하나, 파프리카 하나 먹기. 연두부에 양념장 올려서 또 맛있게 먹기.
아이들 방은 낮잠을 잤는데도 9시 전에 불이 다 꺼졌다. 정말 피곤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