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음'을 기약하는 방법
19.
아버님, 지금은 어디실까요?
믿지도 않는 극락왕생을 기도하고
들어 줄지도 모르는 하나님께 기도도 드려본다.
어디여도 좋다. 거기가 어디라도 아프지 않고 춥지 않고, 숨쉬기 좋은 곳에서 편안하시길 기도한다.
남은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또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아버님 산소에서 삼우제를 일찍 끝내고 가족끼리 굴을 먹으러 갔다.
아버님 살아계실 때 마지막으로 왔었던 아버님의 고향.
천북 굴단지에서 굴을 못 먹는 내가 처음으로 굴구이를 먹었었다.
내 생에 제일 맛있게 먹었던 그날의 굴구이.
이곳은 내게 ‘맛있는 굴구이가 있는 곳’이었다.
형제들은 웃으며 아버님과의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제, 어머님과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20.
나는 예민한 여자.
밥도 안 해보고 시집와서 집 청소 하는데 매일 4시간씩 쓰던 나는 어느새 10년 차 프로 주부가 되어 있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이만큼 하면 충분히 프로다워졌다고 생각함.)
아들 둘 낳고 한동안 두 시간 넘게 깊은 잠을 못 자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모유수유를 해야 했으니 그런 것도 있지만, 제왕절개 할 때도 중간에 마취가 풀릴 만큼 나는 예민한 편이다.
조금이라도 깊이 자고 싶어 큰아이는 6개월 때부터 혼자 방에서 재웠다.
남편 코 고는 소리에 힘들어하니 자연스레 남편과도 각방을 쓰고 있다.
그런 내가 제주에서 아들 둘만 데리고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작고 예쁜 학교를 고르고 너무 좋으신 담임선생님들을 만나고 착하고 예쁜 친구들을 만났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제주 추억을 만들었다.
그 사이 나는 나 나름의 여행과 힐링과 아이들은 모르는 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간혹 ‘같이 느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여행은 나중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남겨둔다.
학교가 끝나면 본격적인 우리의 추억 만들기.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트레킹도 하고, 수영도 하고, 어느 날은 맛집을 찾고, 어느 날은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를 하고….
또 어느 날은 쉬어가기도 하며.
‘내 인생에 이렇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날들이 있었을까?’
제주를 정말 많이 다녔지만 다녔던 모든 곳들의 느낌이 다르고 달랐다.
제주살이 끝에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여행은 어떤 것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찍고 턴?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보고 끝나는 여행, 사진으로 남기는 여행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앞으로는 하나를 보더라도 마음에 남는, 능동적이지만 여유로운 여행을 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두 달간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느꼈다.
아빠의 빈자리가 가끔은 책임감처럼 느껴졌을 큰 아이.
마냥 징징거리며 자기주장을 하던 작은 아이는 형과 엄마와 여행과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집에 온 지 나흘째인데도 자다가 보이는 창밖이 제주인 것 같은 나이지만…
우리는 빨리 일상에 적응하려,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래야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일탈 같은, 꿈같은 여행은 일상이 있기에 가능한 거니까.
오늘도 식탁 위 마르지 않는 선인장을 바라보며 즐거운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