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살아보기 43일
일찍 일어난 균스형제가 구글에게 오늘의 별자리운세를 물어봤다.
우리 집 3명이 게자리인데 오늘 일찍 시작하면 운이 좋단다.
그러니 씻지도 않고 대충 아침 먹으러 가자고 했다.
올드시티 안에서 어디든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밥집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근처에 주차를 했다.
골목골목 학교 가는 아이들과 이른 원데이투어를 나서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오로지 밥집을 찾고 있는 우리.
우리가 선택한 곳은 락프레소이다.
아메리칸식 두 개랑 햄버거 오믈렛, 커피 3잔에 주스 2잔을 주문했다.
정말 잘 먹고 젠가도 한참을 즐겼다.
배가 부르니 골목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들도 멋스럽다.
같이 롱넥족이 되어보기도 하며 한참 웃으며 산책했다.
올드시티에 남겨둔 사원이 있다.
내가 제일 보고 싶었던 사원 왓체디루앙이다.
반짝반짝하는 황금 사원들도 좋지만 투박하지만 이런 느낌의 사원이 너무 좋다.
원래는 90m는 되는 사원이었다는데, 지진으로 일부 유실되고 지금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주차장도 있어서 맘 편히 들어갈 수 있었다.
석균이는 어제부터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있어서 기도드리는 곳만 보이면 진지하게 기도모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거, 그 에너지마저도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특히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는 소원은 한 가지였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두 가지 인가? ㅎㅎ)
가끔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면 좋겠다.
사원 입구에 코끼리동상은 누군가 손때가 묻은 건지 상아 부분만 황금색이다.
남편은 손으로 상아를 만지는 대신 머리로 비벼댔다. 난독증 없어지게 해 달라며.
요즘 생각이 많아서인지 책이 눈에 안 들어온다더니 장난처럼 난독증 같다고 말했었다.
짠하다.
우리 나이에 생각이 많은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치앙마이에 와서 정말 생각 없이 오늘 하루 행복하게 지낼 궁리만 했었다.
그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알 것 같다.
돌이켜보니 더 그렇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은 콘도에 있고 남편과 둘이 탄닌시장에 갔다.
아쉽게도 사진 한 장 못 찍었지만 지인들 줄 선물들도 사고 내가 입을 옷이랑 가족 커플티도 샀다.
시장에서 만수르가 됐다.
돌아오는 길에 디비앙콘도 앞 로컬식당서 볶음밥을 곱빼기로 포장해 왔다.
남편이 끓여주는 짜왕 2개에 계란 프라이 5개 더해서 점심도 거하게 먹었다.
석균이는 맛있다며 새 그릇을 만들어 놨다.
절에 가도 설거지걱정 없을 듯하다.
저녁에 도이수텝에 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남편은 마지막 마사지를 즐기고 나는 네일 아트를 받았다.
남편이 먼저 끝나서 내가 네일 하는 동안 아이들이랑 수영하고 있기로 했다.
균스형제도 디비앙콘도에서 마지막 수영시간이다.
우리는 내일 오전 11시에 체크아웃할 예정이다.
해가 지기 전에 도이수텝에 도착하도록 집을 나섰다.
낮에 비가 살짝 내린 덕분인지 구름이 가벼워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시원하다.
옥수수 하나씩 들고 사진도 찍어가며 계단을 올랐다.
남편은 주차장까지 한 번 와 봤었지만 우리는 벌써 세 번째다.
그런데...,
그래도 좋다.
해질 무렵 어슴푸레한 치앙마이 불빛도 좋고 한 번씩 휘익하고 부는 바람에 풍경들이 흔들리는 소리도 좋고 법회 중인 스님들 불경 외는 소리도 좋고,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 소곤거리지만 그 속에 장난기 가득한 우리 균스형제 쫑알거리는 소리도 좋다.
아마 그냥 그 자체로 다 좋은가보다.
안곡초등학교는 이미 개학을 했고 오늘은 학급임원을 선출하는 날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석균이가 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석균이 기분 좋다.
아빠가 축하 선물을 사주겠다고 하셔서 더 좋은가보다.
우리는 치앙마이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님만해민으로 왔다.
거리거리 야시장도 서고 차들도 많다.
우리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Guu로티로 갔다.
1인 2 메뉴를 공약한 남편.
진짜 많이 시키고 많이 먹었다.
다 못 먹고 남긴 로티는 포장해 왔다.
어지간해서 남기는 법이 없는 우리인데 진짜 많이 시켜 먹었다.
내일 오전에 짐 싸려면 정신없을 것 같아 빨래종류만 가방 한가득 챙겨 넣었다.
렌터카 반납일정을 확인하고 에어비엔비 호스트와도 연락을 해뒀다.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게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