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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SUN Feb 17. 2023

비바람 치는 도이인타논

치앙마이 살아보기 42일

아침은 근처를 걸어 커피와 빵을 먹어보기로 했다.

디비잉콘도 뒷문으로 걸으면 450m면 도착한다.

나나베이커리에 도착하니 두 테이블에서 맛있는 아침을 먼저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도 스크램블 세트에 우유를 추가하고 베이커리에서 빵들을 골라와 자리 잡았다.

태국 현지식을 많이 먹어 보라고 매일 말하던 남편은 현지식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베이커리에 커피 마시는 게 훨씬 편해 보였다.

사실 처음 치앙마이 도착해서 먹은 뭐라 설명할 수 없었던 오묘한 망고스티끼는 망고 따로 밥 따로로 결정을 내렸지만, 지금의 나도 "마이사이팍치"를 외치고 있는 터라 남편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균스형제에게 매일 밥은 먹이고 싶어서 솔선수범 먹을만한 음식들을 찾아 잘 먹고는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좀 덜 먹였어야 되었나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먼 치앙마이까지 여행온 남편인데 또 먼 도이인타논까지 가야 하나 망설여졌다.

게다가 지금이 우기 이기도 해서 도이인타논 날씨 사정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추천이 있기도 하는 마음에 그냥 일단 출발했다.

7eleven 과 친해진 우리는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게 종종 들러 아이스크림 찬스를 썼다.


한 시간 좀 지나니 첫 매표소 등장.

외국인은 입장료 300밧이다.

아이들 둘은 각 150밧.

비싸다.

그리고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정상까지 45분이나 걸린다. 

꼬불꼬불 올라가는데 연무가 몸으로 느껴진다.

아닌가? 비구름인가? 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도이인타논은 히말라야산맥 끝에 위치한 해발 2,565m의 산으로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다행히 차로 주차장서까지 가면 약 5분 정도만 걸으면 정상에 도착한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비바람에 완전 깜짝 놀랐다.

챙겨 온 바람막이에 비옷을 입고 안에는 스카프까지 두르고 걸었다.

나는 걷는 것도 괜찮았고 비바람에 한라산 같은 이 분위기도 재미있었는데..

2시간 가까이 운전하고 온 남편은 이런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바로 내려와서 차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작전회의를 했다.

다음 일정을 어찌해야 하는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왕과 왕비의 파고다 '나파메티니이돈'으로 가기로 했다.

정원도 구름 속이고 사원도 구름 속이다.

너무 재미있는 상황에 웃음이 나다가도 손이 시리고 발도 시리다.

여기 14도다.

비바람이 부니 아마 체감 온도는 더 낮았을 거다.

석균이는 개학한 친구들에게 보낼 동영상 촬영도 했다.

석균이는 다른 건 몰라도 이걸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폭포들 중에 예쁜 곳도 많다는데 우리의 비바람 일정은 여기서 접어야 했다.

더 오래  다니다가는 분명 감기에 걸릴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준비라도 하고 갔는데, 밴을 빌려 여행 온 것 같은 몇 팀의 여행자들은 반바지에 나시 차림들도 있어서 보고 있는 우리가 더 괴로운 지경이었다.

원래는 꽃도 많고 화려한 정원이라는데...

매표소를 지나 내려오니 거짓말처럼 비가 멈췄다.

자연의 신비란... 참...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남편 좋아하는 시장에 왔을 때는 비도 그치고 온도도 딱 적당해서 둘러보기에 좋았다.

고산족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현지인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느낌이었다.

휘이익 둘러보고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혼자 운전하고 다닐 때는 보지 못했던 외곽의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 덕분에 이런 드라이브를 즐기게 되니 또 기분 묘하다.

맑은 날 와이퍼가 너무 자주 작동해서 민망했지만(우핸들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서 자꾸 와이퍼를 작동시킨다) 오늘 하루 운전하느라 힘든 신랑 애썼어요.


명동 오픈시간 딱 맞춰서 돌아왔다.

아이들이 가자고, 가자고 해서 오긴 했는데 어쩐지 남편은 실망할 것 같다.

처음에 내가 이곳에 왔을 때도 그랬다.

내가 가진 상식의 청결과는 거리가 너무 먼 곳이라서.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자꾸 오다 보니 먹는 것도 조금씩 더 먹게 되고, 더 좋은 자리를 찾게 되고,

나...

현지적응 다 했는데 이제 돌아가야 하나? 

남편이 고기를 굽다가 말했다.

"당신이 고생 많이 했겠다."

치앙마이 생활이 내게 꿀 같고 인생의 단비 같은 시간이었던 것도 맞지만 안락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생활을 두고 벌인 모험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고민도 많이 하게 되고 긴장도 많이 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혼자도 아니고 아직은 나의 보호가 필요한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왔으니...

이 모든 걸 이해받는 듯한 내 남편의 한마디가 너무 고마웠다.

물론, 남편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을 거다.

고기 굽는 게 힘들었을 거다.^^;


밥 먹고 깟수언깨우에 들렀다.

남편은 처음 가보는 곳이다.

망고랑 야돔 가격도 보고(야돔 개당 18밧으로 제일 싸다) 주스랑 과자들 사서 돌아왔다.


세 남자가 밤수영 간 사이  비에 젖었던 옷들을 정리하고 잠자리 준비까지 끝냈는데 씻고 나온 남편이 밤마실 가잖다.

아까 들어오면서 커피 마시고 싶다고 말한걸 계속 맘에 담아둔 건지, 그냥 밤산책이 가고 싶었던 건지.


집 앞은 정말 갈만한 곳이 없어서 님만해민으로 나갔다.

아직은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커피를 마실만한 곳은 적당한 곳이 없었다.

결국 이 골목 저 골목 걸어 다니다가 대로변 GUU퓨전로티 가게로 들어갔다.

새벽 1시 반까지 영업을 한다는데 테이블 꽉 찼다.

나름 맛집인가 보다.

우리는 배부르지만 로티도 시켜서 커피랑 함께 잘 먹었다.

커피도 좋지만 함께 나온 차를 마시는 게 달달한 로티랑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밤마실이 늦어져서 일기도 늦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들 자는 이 밤에 나 혼자...


내일 아침은 또 어떤 맛있는 걸 먹어야 울 남편 기분 좋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지...

나는... 늦도록 자고 싶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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