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작은 섬마을의 우리집 /13일
오키나와에서의 첫 집 밥
"우리 인생에 이런 날이 며칠이나 있을까?"
밤 산책을 나서며 남편이 말했다.
가로등 불빛 만으로는 길이 채 보이지도 않는 낯선 타국의 시골길.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감각도 잃었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바다에서 오는 거라고 상상하며 걸었다.
오늘은 오키나와 나하시의 도시여행을 끝내고 북부로 올라간다.
11시 체크아웃을 준비하며 나는 짐을 싸고 남편은 아침거리를 마련하러 나갔다.
여객터미널 근처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이랑 주먹밥, 어묵을 사 왔다.
세븐일레븐에 들러서 내 커피도 사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5박 6일을 지낸 숙소는 짐이 군데군데 많기도 하다.
오키나와의 숙소들에는 다들 건조기가 있어서 매일아침밥 먹기 전에 빨래를 하고 나가면서 건조기를 돌리고 나갔었다.
빨래거리가 없으니 짐 싸는 게 좋기는 하다.
짐도 다 싸고 나갈 때는 들어올 때랑 다르지 않게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나간다.
남편의 나하여행은 어제오늘이 다이기 때문에 동네를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해수욕장도 가보고 신사도 들르고 라멘을 먹으러 단보로 갔다.
남편은 일본 여행이 처음이라 본토식 라멘도 먹어보고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 입에는 이츠란보다 단보가 좋았어서 단보라멘으로 갔다.
기본 라멘에 만두를 시키고 맥주는 한 잔만 시켜서 나눠 마셨다.
단보라멘 앞에 서점도 보고 싶다고 해서 한 바퀴 둘러봤다.
주말이라 위층까지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의 세 번째 숙소는 코우리대교 근처에 있는 야가지 섬에 있다.
본섬에서 다리로 연결된 섬이다.
나하시에서 해안 쪽으로 돌아서 올라가고 가다가 중간중간 쉬어 갈 예정이라 2시간은 훌쩍 넘길 거라 예상했다.
실제로 도착하니 4시가 넘었다.
오는 길에 아마추어 야구경기를 잠깐 관람했는데 그것도 너무 인상 깊었다.
우리 집이 또 너무 마음이 든다.
일본식 목조주택인데 조용한 마을에 고즈넉하고 집안 분위기는 또 얼마나 따뜻한지...
딱 이런 세컨드하우스를 가지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집 안으로 들어온 남편은 오늘은 꼭 집에서 밥을 해 먹고 싶다고 했다.
이런 집에서 요리해서 밥 먹는 게 너무 기대된다며 장 보러 가서도 흥분한 상태였다.
돼지고기랑 반찬들을 사고 쌀도 사고 대망의 김치도 샀다.
일본 와서 처음 먹는 김치다.
상추도 사고 계란도 사고 우유도 사고 신라면도 3 봉지 샀다.
저녁 준비는 전적으로 남편이 했다.
준비하는 내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는 남편은 이런 집에서 이렇게 요리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고 했다.
집이 너무 좋다며 몇 번씩 칭찬해 주는 남편 덕에 열심히 찾아본 보람이 느껴졌다.
일본에서 해 먹는 첫 번째 식사이기도 했다.
김치는 너무 달아서... 실망이었다.
밥 먹고 설거지는 석균이가 해줬다.
제주살이 이후로 처음 하는 설거지다.
앞으로는 집에서도 좀 시켜야겠다. 잘하네~
남편이랑 나는 커피 한잔씩 타서 동네 산책에 나섰다.
밝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어둠의 세상이다.
가로등은 가로등 코 밑만 비추고 우리 눈앞까지 비추지는 못했다.
바다까지 3분 거리라는데 당연히 바다라고 생각하고 걸어간 길은 바다가 아니었다.
밝은 날 나오면 얼마나 어이없을까 싶게 보이겠지만 이런 기분이 너무 좋다.
바람만 느껴지는 작은 섬 속 어두운 시골길에서의 따뜻한 손길과 이야기들이 나와 남편만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기를 기대한다.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는 동안 아이들이랑 남편은 젠가게임을 했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오늘밤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