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졌다, 좋은 싸움이었다."
꼬치는 조금만 먹고 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자 했었는데...
토리요시 앞에서 냄새를 맡은 석균이가 한 말이다.
우리는 냄새에 지고 말았다.
매일 배가 부르니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할 때가 있는 안타까운 여행의 현실이다.
나는 늦도록 자도 좋다며 남편은 집 앞 슈퍼로 산책을 나갔다.
그 사이 나는 다다미방에 누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로 잠을 깨웠다.
꼭 나미야잡화점처럼 생긴 집 앞 슈퍼에는 방금 수확해 온 동네 야채들 몇 가지와 지금 막 싼 것 같은 김밥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했다.
남편은 가지랑 양배추, 아주 실 것 같은 귤, 방울토마토들을 사 왔다.
밥도 미리 해 두고 가서는 나를 위해 누룽지도 만들어줬다.
아침에 사 온 가지 두 개에 양배추를 넣어 집에 있는 양념들로 볶아줬는데 너무 맛있다.
우리 남편, 여행 와서 칭찬만 듣기로 작정한 사람마냥 너무 잘한다.
이런 게 본인이 힐링하는 방법 이라는데 나도 힐링되고 있으니 우리 정말 천생연분인가 보다.
코우리대교까지 걸어서 20분, 차 타고 4분 거리다.
걸을까 하다가 다리를 건너려면 힘들 것 같아서 차를 타고 나갔다.
어쩜 바다색이 이리 이쁜지, 오늘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데도 이 정도면 맑은 날엔 눈도 못 뜨겠다 싶었다.
다리의 유연한 곡선을 따라 넘어가며 온 가족이 감탄했다.
코우리섬은 작아서 차로 한 바퀴 돌아도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 바퀴 돌고 동네 구석구석 또 돌아보다가 나왔다.
어젯밤에 했던 어처구니없었던 산책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진짜 어처구니없게도 그곳은 바다가 맞았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물은 좋았다.
오후에 남편은 혼자 나와서 이 1km 가까이 되는 해변을 걸었다고 했다.
남편은 또 장을 보러 갔다.
이번엔 새우를 사 오겠다던 남편은 고기랑 이 지역 야채들도 잔뜩 사 왔다.
우리 내일 또 이사 가는데 언제 다 먹을지 걱정도 되지만 이걸로 힐링한다는데 못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남편표 집밥이 맛있기도 하다.
버터까지 사 와서 재료를 아끼지 않는 완벽한 새우구이를 만들어 내어 놓았다.
새우구이 하고 남은 냅비에 라면까지 끓이고 나니 "스고이~~~!"가 절로 나온다.
각자 쉬는 시간을 가지다 나키진성터에 가려고 보니 시간이 애매했다.
6시에 문을 닫는다는데 5시 40분쯤 도착하니 매표소에 사람이 없다.
아쉽지만 성터 입구에서 성벽만 보다 나왔다.
안에 들어가면 또 얼마나 멋진 풍경이 기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밖에서 산책하며 우리끼리 사진 찍는 것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관광객모드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아직 피어있는 벚꽃들도 보며 발걸음 가벼운 산책시간이었다.
우리가 장 보는 마트 바로 앞쪽에 맛있는 꼬치집이 있다고 추천을 받았다.
집에 장 봐둔 게 많아 맛만 보고 나오자고 다 같이 약속하고 갔었는데...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알았다.
대충 먹을 수는 없겠구나.
꼬치에 임연수어구이에 공깃밥에 남편은 사케도 한 병 했다.
주인장 할아버지의 포스가 남달라서 보는 재미도 남달랐던 맛집이다.
나오니 날은 완전히 저물었다.
나는 바로 씻고 잘 줄 알았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너무 분주하다.
고기를 굽고 있다.
내가 어제 먹은 베이컨초밥이 너무 맛있었다는 말에 베이컨이랑 고기를 또 굽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우리 방금 밥 먹고 10분 차 타고 왔는데...
저녁을 두 번 먹었다.
그것도 두 번 다 정말 맛있게.
설거지는 또 석균이가 해줬다.
헤드폰 끼고 음악 크게 들으며 설거지하는 거 자기는 좋다고 했다.
그게 또 석균이의 힐링 방법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