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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SUN Mar 21. 2023

절박했던 외로움 그리고 자괴감

코로나시국, 미치도록 요동쳤던 내 감정선의 원인

"그래서 엄마는 지금까지 생각나는 영어단어가 있어요?"

매일매일 영어 단어를 복습하다 보면 제일 먼저 외웠던 단어는 어른이 되어도 잊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더니 큰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정말 아무 말도 아닌데...

이 아이가 한 말 뜻은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니가 엄마를 무너뜨리는구나..."라고 말했지만 목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튀어나왔다.


가뜩이나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없는 것 같아서 내 인생을 자꾸 뒤돌아 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고 치우고

남편 출근하고 나면 아이들 온라인 수업 봐주고

간식 주고 치우고

점심식사 준비하고 치우고

청소하고

가정학습 도와주고

빨래하고 정리하고

저녁식사 준비하고 치우고

다들 씻고 나면 나도 씻고 화장실청소하고

잠든 아이들 잠자리(선풍기, 이불 덮은 거, 창문 확인) 봐주고...

그리고 제일 늦게 침대에 눕는다.


코로나19 덕분에 벌써 몇 개월째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러려고 영어단어를 그리 열심히 외웠던 걸까.

치열하게 공부하고 과제하고 일하고...


나도 집안일 말고 영어 단어 외우고 싶다.

그냥 공부만 하라 그래도 그러고 싶다.


나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고

옷장 열면 속옷이며 양말이며 다 정돈되어 있으면 좋겠다.

다음끼니 메뉴 걱정 따위 하지 않고 화장실 머리카락도 내 건지 니 건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전에 물때는 원래 없는 건 줄 알고

욕조는 일일이 닦지 않아도 원래 하얀 색인줄 알았으면 좋겠다.

마룻바닥에 발자국은 찍혀도 다음날엔 저절로 없어지고

주방에 물을 뚝뚝 흘려도, 생선 튀기며 바닥에 기름이 다 튀어도 저절로 다 마르고 없어지는 건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나도 밥 차렸다고 부르면 식탁에 앉고

밥 다 먹고 나면 리모컨 들고 티브이 앞에 앉고 싶다.


그냥 지금 내 모습은

월급도 못 받는 가사도우미... 가정학습 지도사.





분명 내 가족 누구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자꾸 극으로 몰아가서 더 외롭고 불쌍하고 힘든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큰아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방으로 찾아왔다.

"이렇게 그냥 자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엄마랑 얘기하고 싶어요."


내가 이런 아이 앞에서 그런 감정을 드러냈다는 게 너무 미안했다.


요즘 너무 집안일만 하고 사람들도 못 만나고 나가지도 못하고...

그래서 더 울컥했던 것 같다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여름이면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몸을 움직여서 에너지를 쌓아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아들.

자기랑 동생 걱정은 마시고 외할머니댁에 가서 오래 있다 오셔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아들.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들말에 나는 또 눈물이 났다.




반전.


다음날 나에게 그분이 오셨다.


그.. 미치도록 요동쳤던 내 감정선...

절박했던 외로움과 자괴감은 '생리 전증후군'이었다.


꼭 하루 전날이면 극도로 예민해지고 별거 아닌 일에도 맘이 상하더니...

이번달에도 어김없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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