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밤만 자고 나면 나도 피아노학원 수강생이다
며칠째 아파트 상가 2층 피아노학원을 올려다본다. 얼마 전 우연히 상가 주변을 산책하다 피아노학원이 들어온 걸 알고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위치가 바로 초등학교 앞이라 어린 학생들이 많이 다니겠다고 짐작했다.
살면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의외로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악기에 대한 욕구들이 있다. 어릴 적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내가 다닐 땐 국민학교라고 한다. 그때 학교에서 배운 악기라곤 피리(리코더), 실로폰, 하모니카 정도다. 선생님은 발 아래 페달이 있는 풍금을 치시곤 했다. 늘 마음속에, 악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난다는 게 신기해서다.
딸은 재즈 피아노를 전공했다. 7살부터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 그 시간만 족히 20년은 되나보다. 내가 악기에 대한 동경이 큰 탓인지 딸아이가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게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지 않은 건 아니다. 물론 재즈 피아노를 전공했어도 지금 딸아이의 직장은 전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나는 좋다.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쯤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나, 매력적이지 않나….
지금도 딸은 간혹 집에서 피아노를 친다. 그 소리를 듣노라면 참 편안하다. 집에서 울리는 피아노소리…. 좋다.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딸을 바라보노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정작 나는 피아노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정규 학교 과정인 음악 시간에 뭘 배웠는지조차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내가 피아노학원 주변을 서성거린다. 퇴직하면서 그동안 하지 못하거나 해보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작성했다. 물론 피아노 배우기를 포함하긴 했지만, 우선순위는 제일 끝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신이 없어서다.
어디서 용기가 나온 걸까? 지난 1월 4일 오가기를 여러 번 한 상가 문을 열고 2층 학원 앞을 기웃기웃했다. 초등학교 여학생이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데 눈이 마주치니 쑥스럽다.
문을 열고 아주 조심스럽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혹시 상담할 수 있을까요?”
내 나이 정도의 선생님이 나오신다. “어떻게 오셨을까요?”
“상담받고 싶은데요. 어..어...어..대상은..어...어..음..제가요..제가 배워보고 싶어서요”
“아..네..들어오세요.” 자신을 부원장이라 소개한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아…. 제가..도레미파솔라시도…. 밖에 모르고, 전혀…. 전혀…. 피아노를 쳐본 적이 없어요”
여기까지 온 내가 나 스스로 대견할 정도이니 내 목소리에는 피아노를 쳐본 적이 없는 미안함까지 내포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상담하고 연신 쑥스러운 모양새로 상담을 마치고 첫 수업을 예약하고 학원 문을 나서는데 너무 기뻐 혼자 야호! 라고 했다.
정수리부터 5센티의 흰머리, 얼굴엔 며칠 전 비립종을 제거하고 붙인 습윤 밴드 11개, 막 동네 카페에서 빨간머리 앤을 보기 위해 챙긴 노트북을 둘러멘 예순이 얼마 남지 않은 아줌마의 야호! 가 여러 날의 고민 끝에 성공한 피아노학원 입성의 환호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도 좋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음 주 화요일 11시다. 나의 첫 피아노 수업이다. 기다리는 조바심에 오늘 아침 딸의 피아노 건반을 깨끗이 닦았다.
26.1.15.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1주일에 1번...피아노학원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복습은 철저히, 간혹 예습도..모범 학원생>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8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