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쁘게 잘 살께요’ 할머니..

by 선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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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지냈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주인공 강계열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먹먹했다. (관련기사: https://www.mt.co.kr/society/2026/04/10/2026041021592873281)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본 게 벌써 10년이나 흘렀다. 간간이 혼자 남은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나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었다. 76년 함께 살던 할아버지에게 건넨 할머니의 독백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 없으면 안 되는데...’


이 영화는 흥행을 담보한 대형 투자작도, 주인공이 유명 배우도 아닌, 화려한 수식어도 없는 강원도 산골에 사는 노부부의 일상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인간극장>에 출연한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직접 산골 마을로 찾아가, 1년이 넘게 노부부의 일상을 곁에서 관찰하며 가족처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76년 부부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76년을 사는 동안 두 분은 서로에게 반말하지 않고 감정 표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다는 점이었다. 할아버지가 꽃을 꺾어 할머니 머리에 꽂아주면 해맑은 미소로 웃어 화답하고 마당의 낙엽을 쓸다가도 낙엽을 던지며 장난치는 두 분의 일상이 마치 나이를 넘어 연애 시절을 보는 듯했다. 사실 부부가 긴 세월 살다 보면 서로에 대한 묵은 감정과 상처로 날 선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평생 농사로 깊어진 주름을 덮은 서로를 대하는 귀한 태도는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과연 부부란 무엇일까. 흔히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한다. 결혼을 통해 각각의 삶에서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는 ‘마음도 하나 몸도 하나’라는 뜻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네 마음’으로 강요되는 다툼의 일상이 반복되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 속 노부부가 보여준 일심동체는 강요되는 관계가 아닌 자발적 배려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밤에 화장실 갈 때 무서울까 봐 노래를 불러주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떠나신 뒤 행여 추울까 미리 내복을 챙겨 아궁이에 태웠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7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두 분은 나 자신을 넘어 일상에서 보여주었다.


나 자신을 넘은 배우자에 대한 배려, 말처럼 쉽지 않다. 문득 1995년 내가 결혼할 때 했던 서약 문장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괴로우나 즐거우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겠다’라고 엄숙하게 서약했었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장이 30여 년을 살고 뒤돌아보니 얼마나 무거운 약속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30여년을 같이 산 세월이 절대 짧지 않다고, 산전수전 같이 겪었고 이만하면 서로를 잘 안다고, 충분히 내가 잘 맞춰주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의 배우자에 대한 배려는 76년 함께하고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직접 보여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며칠 전 남편과 다투고 ‘30년을 함께 살아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거로 생각했는데 당신이 몰라줘서 서운해’ 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서운함이었는지,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강요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해를 바라기 전에 과연 내가 나를 넘어 상대를 배려하려 노력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이제 할머니는 102세의 일기로 그토록 그리워하던 할아버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셨다. 화면 속 해맑게 웃으시던 그 미소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나 외롭지 않은 영원한 만남이시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두 분의 귀한 사랑을 이어받아 나도 30년 전 그날의 서약 문장을 복기해 나 자신을 넘어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진정한 일심동체를 이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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