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이웃집 농사 대선배 할아버지의 칭찬 한마디 ‘너들, 참 용타’
‘너들, 참 용타, 바지런도 하다’ 한평생 농사만 지은 90세 이웃집 할아버지가 남편과 나를 보며 하신 말씀이다. 이제 귀농해 2년 차 밭농사를 짓는 우리가 할아버지 눈에 얼마나 애송이로 보일까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부지런 떨며 이것저것 손대고 실패하면서도 뭔가를 계속하는 우리를 이쁘게도 봐주신다.
사실 할아버지는 밭농사를 시작하면서 만난 첫 번째 이웃이다. 밭 바로 건너에 집과 땅, 큰 비닐하우스 두 동을 할아버지 부부가 농사를 짓고 계시는데, 오며 가며 우리 밭을 유심히 보고 계신다. 지난해 첫 성토를 하고 흙에 섞인 돌을 골라내느라 여러 날 밭에서 헤맬 때 농수로에 걸터앉아 ‘너무 많이 골라내지말으, 돌이 있어야 배수가 잘된다. 시간이 지나면 다 부서져’ 투박해도 관심과 따스함이 묻은 한마디를 툭 던지곤 가버리셨다.
실제 할아버지 말대로 한 계절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돌덩이는 부서지고 깨져 흙들과 제법 어우러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올해 두 번째 성토를 하고는 지난해만큼 돌들이 눈에 띄어도 조급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자연의 속도를 경험했기 때문에 밭에 깔린 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 너그럽고 부드러워졌다.
이틀 전(17일), 지난겨울 온 정성으로 키운 고추 모종을 드디어 온전하게 자리 잡는 정식(고추가 수확될 때까지 자랄 최종적인 장소에 완전히 심는 것) 작업을 마쳤다. 겨울이 지나갈 무렵 성토를 한 이후 농사짓기에 걸림돌이 되는 큰 돌은 골라내고 잔돌은 밭 가장자리에 배수 길을 메우도록 작업하고, 본격적인 밭농사를 시작하기 위한 두둑을 만들고, 물 공급을 위해 호수를 깔고 모종을 맞을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밭으로 옮겨 심는 정식 작업을 하기 며칠 전부터 고추 모종을 비닐하우스 밖으로 빼 채광하고 바깥 온도에 적응하도록 세심하게 신경 썼지만,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밭은 해풍(바닷바람)이 세서 혹여라도 이식스트레스를 받을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고추 농사를 하면서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들판의 바람이 얼마나 셌던지, 고추를 덮은 부직포가 바람에 날려 여러 번 애를 먹은 적이 있어 올해는 아주 단단히 작업을 하기로 작정을 한터였다.
고추는 추위에 약한 작물이라 밤 기온 10~12도가 유지될 때 심어야 냉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려면 5월이 훌쩍 지나 땅에 심어야 하지만, 일찍 심어 뿌리를 빨리 내리면 그만큼 수확량이 늘고 장마 전에 수확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일찍 심는 대신 밤 기온이 떨어지더라도 따뜻한 공기를 가두어 추위를 막아주는 부직포 터널을 만들기로 했다.
오랜 직장 생활과 도시살이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늘 양손에 좋은 것만 들리지는 않는다’라는 사실이다. 한 손에 좋은 게 있으면 다른 한 손엔 그만큼의 짐이 들려 있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감수해야 하는 게 인생이라 생각하니 크게 억울하지 않고 삶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일찍 수확하는 기쁨을 얻기 위해 부직포를 씌우고 벗기는 고된 수고를 감내하는 것도 결국 이런 이치가 아닐지 생각했다.
부직포 터널을 하기 위한 수고는 제법 고되다. 모종을 심고 일정한 간격으로 활대를 꽂고 활대들을 끈으로 연결해 고정해야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다. 그다음, 활대 위로 부직포를 덮고, 활대와 부직포가 만나는 지점을 고정핀으로 고정하고 마지막으로 양옆 가장자리와 부직포 끝부분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 밀봉하는 작업이다. 5월이 훌쩍 지나 심으면 이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인생은 역시 선택이다. 일찍 심기로 선택했으니 고되더라도 감내해야 할 몫인 셈이다.
그렇게 부직포를 다 씌우고 나니, 바닷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부직포 터널 안에서 평온하게 서 있는 모종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포기씩 심으면서 ‘조금만 기다려. 얼른 다 심고 부직포 덮어줄게.’ 몇 번을 읊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거실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면 지금은 그냥 밭에 던져진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너희가 그냥 방치된 게 아니라는 걸 부직포로 덮어줘야만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593포기의 고추 모종심기는 해가 넘어갈 무렵 끝이 났다. 부직포 터널 안, 불어오는 해풍에도 바람 한 점 없어 보이는 평온한 공간에서 자리 잡은 모종들을 보며 그제야 허리 한번 크게 펴고 웃었다. 긴 겨울 돌본 이 여린 아이들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에 온종일 앉았다 서기를 반복했던 무릎의 뻐근함도 폴더처럼 굽은 등의 통증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남편과 나는 한 손에는 하루 종일 흙바닥을 누빈 노동의 무게를, 다른 한 손에는 지난겨울 정성으로 돌본 모종들을 결국 밭에 잘 안착해 주었다는 자부심을 들었다. 내가 선택한 퇴직 후의 삶, 비록 몸은 고단하고 손끝은 예전보다 거칠어졌지만 내가 쏟은 정성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주는 생명들의 보답 그것으로 충분하다. 양손에 늘 좋은 것을 들 수는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 좋은 고단함과 불어오는 해풍에 온전히 지켜낸 모종은 직장을 다니면서 거둔 그 어떤 성과보다도 값지기 때문이다.
고추 모종이 자리 잡고 앉은 부직포 터널 11동, 그 옆을 모종으로 키워 밭에 심은 브로콜리, 토마토, 싹이 나 푸른 잎이 나오기 시작한 감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무화과, 새싹이 돋은 블루베리까지, 귀농 2년 차 초보 농사꾼 부부의 밭은 이렇게 하나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선택한 인생 2막의 행복이다. 앞으로 이 밭에서 어떤 생명들과 마주하며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될지 혼자만의 설렘을 기대해 본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가뭄이나 장마가 걱정되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때는 또 그 나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겨낼 수 있을 거다.
다음에 할아버지를 만나면 칭찬하실 것 같다. ‘야, 너들 참 용타, 고추 잘 심었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26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