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매일 손잡고 나와줄게요’ 나를 지켰던 갸날팠던 작은 손
‘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 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 최근 악뮤(AKMU)가 발표한 4집 앨범 타이틀 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의 가사 일부다. 악뮤 남매를 TV에서 처음 본 게 벌써 오래전이다. K팝 스타를 배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몽골에서 왔다는 독특한 이력과 10대 남매, 특별히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가지고 나온 자작곡 ‘다리 꼬지 마!’는 당시(2012년) 심사 위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17세 소년이 일상에서 누구나 하는 행동을 재치 있게 리듬감을 붙여 선보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20대가 된 이들은 그때 방송을 통해 본 10대 소년소녀가 아니다. 그동안 오빠인 찬혁 군은 군대를 다녀오고 동생인 수현 양은 버스킹 프로그램을 통해 간혹 TV에서 모습을 보이다 한동안 보지 못했다. 언젠가 방송에서 수현 양을 봤는데 살이 많이 찌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있다. 재능 있는 남매 뮤지션 정도의 관심이 있던 내가 의아해만 하던 이면으로 수현 양이 늘 곁을 지키던 오빠가 군대를 간 이후 홀로 감내해야 했던 마음의 성장통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4월 1일방송)에 두 남매가 출연한 걸 보았다. 오랜만에 함께 출연한 남매의 속얘기를 들으며 갸웃했던 기억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0대부터 함께 음악 작업을 하며 뮤지션으로 주목받다 오빠가 군대에 간 이후 심한 슬럼프와 벗아웃을 겪으며 은둔생활과 폭식을 반복했다는 수현 양의 고백이었다. 동생이 홀로 감당하고 있던 고통을 뒤늦게 알게 된 오빠 찬혁 군은 동생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합가를 제안하고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수현 양의 변화된 외모를 보고 의아했던 이유가 슬럼프와 번아웃이라는 험난한 파도와 마주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찬혁 군은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수현이를 잡지 않으면 다음에 수현이가’오빠 왜 그때 나를 안 잡아줬어?’라고 원망할 것 같았다’라고, 누구보다 재주가 많은 동생이 힘들게 아파했던 시간을 꽃피워주고 싶었다는 오빠 찬혁은 동생의 아프고 시린 계절을 담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퍼즐 판을 완성해 노래에 담았다.
누군가 내 곁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삶의 벼랑 끝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밧줄이 있는 것과 같다. 단순히 옆에 있어 주는 게 아닌, 내가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을 때조차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는 시선이 있다는 믿음, 그것만큼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고마운 동력이 또 있을까….4집 타이틀 곡인 ‘기쁨,슬픔,아름다운 마음’ 첫 라이브 공연 때였다. 동생 수현 양이 눈을 조용히 감고 한 음 한 음 조심스레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오빠 찬혁군이 잔잔한 미소를 띠고 동생을 바라보는 컷이 화면에 잡혔다. 그건 단순히 노래 잘하는 동생을 쳐다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대중 앞에 선 동생의 용기를 품어주는 따뜻한 미소였다.
화면 속 찬혁군의 미소를 보는데, 문득 오래전 내가 겪은 시린 계절이 떠올랐다. 우울증이라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늪에 빠져있을 때 억지로라도 밤공기를 쐬며 산책할 때다. 옆에서 내 손을 잡고 걸어주던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이 ‘엄마, 이렇게 산책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안 아파요?’ 말없이 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더니 ‘엄마, 내가 매일 손잡고 나와줄게요. 아프지 마. 엄마가 아프니 눈물이 나요.’
내게도 시린 계절 곁을 지켜준 아들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아들의 작은 손이 벼랑 끝에선 나를 잡고 있었다. 그때가 내 퍼즐의 가장 아프고도 빛나던 한 조각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아들의 가냘픈 손을 잡고 걸었던 한동안의 산책길이 없었다면 결코 그 늪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린 날, 시린 계절은 있다. 하지만 그 슬픔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내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아름다운 마음의 꽃이 피어난다. 악뮤의 가사가 단순한 노랫말을 넘어 우리 마음 깊숙이 머무르며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들의 가냘프고 작은 손이 나를 붙들어 주었듯, 긴 슬럼프로 힘든 동생을 세상 밖으로 꺼내 준 오빠 찬혁군처럼, 누군가에서 그 한사람이 내가 될 수 있기를 혼자만의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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