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향 울진을 다녀오는 길, 버스 차창 밖으로 낯선 광경과 마주했다. 수없이 오가던 곳인데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걸까, 방파제에 있어야 할 삼각형 구조물(정식명칭은 테트라포드(Tetrapod))이 해안가를 따라 빼곡히 쌓여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버스 좌석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돌아봐도 내가 본 광경은 틀림없는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80년대 중반,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그곳에서 해양 훈련을 받곤 했다. 친구들과 함께 수영을 배우고 뛰어놀던 곳이라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뒹굴던 해양 훈련을 떠올리며 지날 때마다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곤 했는데 성벽처럼 쌓인 구조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왜 방파제에 있어야 할 구조물이 해안가에…?’
어느 방파제에 가도 이 구조물은 빠짐없이 놓여있다. 이 구조물은 바다 밑에서부터 쌓여 파도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완충 역할로 방파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준다. 방파제를 보호하는 방패인 셈이다. 그런데 왜 해안가 모래 위에 쌓여있는 걸까?
그 의문은 금방 씁쓸한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방파제를 지켜야 할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해안가 모래위에 쌓인 이유는 거꾸로 생각하면 바닷가 모래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안 바닷가의 침식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시간에도 조금씩 조금씩 사라졌던 모래 해안가를 어느날 갑자기 내가 보게 된 것뿐이다.
갑자기 마주함이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뜨거웠던 그 옛날 여름 해양 훈련을 받던 모래사장을 떠올렸다. 여중생 150여 명이 달리기하고 수영을 배우던 드넓은 모래사장이었다.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밀려오는 파도에 발자국을 남기고 걷다, 햇볕에 마른 발가락 사이 모래를 털어내던 해안가 모래사장은 온데간데없고 콘크리트 구조물 성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도시로 떠난 후 명절 때 고향을 찾아 간혹 바닷가를 거닐 때면 모래사장이 점점 줄어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그 오래전부터 바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지나가며 내 고향 바다에 안부만 전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잘 있다고 생각했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은 바로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로 뜨거워진 바다의 해수면이 높아지고, 특히 동해안 너울성 파도는 모래를 무참하게 뺏어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여기저기 인공 구조물들을 바닷가에 세우며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바닷물의 흐름을 바꾸어 침식의 속도를 부채질하고 있다.
콘크리트 성벽으로 바닷물을 막아서는 모래사장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당장의 무너짐을 늦추는 임시방편일 뿐 우리가 뛰어놀던 바닷가 모래사장을 되찾아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남은 해안가 모래사장은 지켜야 한다. 그 뜨거웠던 여름 친구들과 뛰어놀던 모래사장에서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던 모래를 털어내던 기억을 내 자녀들이, 혹은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내내 성벽처럼 쌓인 구조물이 잊히지 않았다. 비록 내가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바다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바닷물이 뜨거워져 해수면이 올라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오늘도 그 작은 실천으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며 손을 닦을 때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훗날 콘크리트 성벽이 허물어지고 모래사장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