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제미니를 쓰면서도 팩스 찾아 편의점 가려고 한 나...’
어이없는 고백이 필요한 일이 발생했다. 실손보험을 청구할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으레 보험회사 콜센터로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실손보험 청구를 하려고 하는데요….“
통화 이후, 카톡으로 청구한 사람마다 다르게 고유 팩스 번호와 유효기간, 팩스 접수 시 필요 서류를 자세하게 안내해 준다. 유효기간 내 신청서와 병원 서류들을 팩스로 보내면 다시 친절하게 알림톡이 온다.
‘00 고객님의 사고 보험금 서류 00장이 FAX를 통해 정상 수신되었습니다’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알림톡이 온다
‘00 님의 보험금 청구 건이 접수되었습니다. 빠른 처리 후 결과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00 님의 보험금 청구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 빠른 처리 후 결과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00 님, 접수하신 보험금 청구 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2008년에 가입한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다. 실손보험 청구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1년에 2~3번은 실손보험을 청구할 일이 생긴다. 내 기억으로 오랫동안 이렇게 팩스로 실손보험 청구는 계속되었다.
그동안은 직장을 다니고 있어 사무실에 팩스가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더군다나 팩스로 서류를 보내기만 하면 친절히 알림톡이 바로바로 오니 ‘참 요즘 시스템 잘돼 있어....’하고 감탄하곤 했다.
불편함이 발생한 건 퇴직 이후다. 퇴직하고 나니 늘 편하게 사용하던 팩스가 없는 거다.
마침, 실손보험을 청구할 일이 생겼다.
‘그래, 뭐 어쩌겠어! 편의점이나 문방구 가면 쓸 수 있을 거야. 그동안 편하게 사무실에서 잘 썼지 뭐.’
퇴직하기 전에 보험금 청구서를 여러 장 출력해 둔 걸 내심 속으로 잘했어…. 흐뭇해하기까지 했다.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요즘 팩스 쓸려면 편의점 같은 데 가면 되?“
”글쎄, 요즘 팩스를 쓰나? 근데 팩스는 왜?“
”어…. 저번에 병원 다녀온 거 실손보험 청구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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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나를 쳐다본다. 요즘도 팩스로 보험을 청구하냐고 타박한다. 본인은 앱으로 신청한다면서, 사진만 찍어서 보내면 금방 처리가 된다는 거다.
”아니야.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는 팩스로만 가능해…. 난 계속 그렇게 했어“
집으로 돌아와 바로 핸드폰에 있는 보험 앱을 열었다. 보험계약이나 보험료 납부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늘 사용하던 앱이다. 그런데 병원을 상징하는 적십자 모양의 빨간 표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사실 좀 떨렸다. ‘설마 이건가? 진짜 실손보험 청구가 앱에서 됐던 건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이없는 상황에 너무 당황했다. 이게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사실 나는 챗GPT, 재미니로 정보 찾기도 수월하게 잘한다
실손보험 청구를 시작해 봤다. 필요한 서류들을 사진으로 찍어 넣기만 하면 되는 거다. 너무 간단하고 편리하다. 앱을 뚫어져라 보며 생각해 봤다. 왜 이걸 지금 알게 된 거지?
내가 내린 결론은 ‘각인된 습관’이다. ‘실손보험은 팩스로만 가능해’ 내 머릿속에 각인된 거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그냥 보험금 청구일 뿐인데, 팩스로 하든 앱으로 하든 보험금이 내 통장에 들어오는 결과만 있으면 되는 건데…. 새롭게 알게 된 방식은 내가 편한 거로 바꾸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나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행동 습관이 마음에서 작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습관’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적용한다면 ‘고정관념’으로 대신할 수 있을 거다. 고정관념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편견이라는 결정된 결과로 상대를 대하기 때문에 자칫 오해와 실수를 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너무 비약해서 생각하나 싶기도 하지만, 아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만났을 때는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나의 편견으로 상대방 의견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갈등과 오해로 불편하게 되는 걸 쉰이 훌쩍 넘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보험 청구 방식으로 잠시 당황했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방식에 나의 편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해 보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다. 다른 이들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