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여러 짐승들
특히
뿔난 소
사나운 개
발정 난 숫사슴
예민한 원숭이
나는 아직 이들과도
다 친하지 못합니다
여차하면 날뛰는
거친 짐승들
세월 덕분에
좀 순해졌나 했는데
낮에 보니 웬걸요
갈 길 아득히 멀었습니다
느닺없이 내린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서리 맞고 돌아보니 내 안에 살았던 고집세고 성질 사나운 짐승들이 거의 다 사라졌어요. 모두 어디로 갔는지 풀 마른 텅 빈 들판에 성긴털의 늙은 소 한 마리만 남아 야윈 볼을 우물거리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닌 것이 그때는 왜 그리도 큰일이었는지, 성내고, 다투고, 토라지고...
막상 닥치면 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서리 덕분에 좀 철이 든 듯도 해서 다행입니다.
서리 맞은 다음에야 제 맛을 내는 홍시처럼 맛있게 익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