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흙의 시간>
겨울 끝의 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운동장에는 졸업을 앞둔 6학년 아이들 소리가 가볍게 흩어졌다. 정원은 내년에 저학년을 맡게 되었다. 또 한 해가 가면 텃밭을 함께 한 아이들은 중학교로 떠나고, 정원도 다른 학교로 전근 가게 된다.
아이들도, 교사도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정원의 마음 한가운데 비워진 자리가 조용히 허전해졌다. 그러나 다시 예전처럼 외로움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겪어낸 시간은 이미 글이 되었고, 정원은 필요할 때마다 일기장을 넘기듯 아이들과 함께 한 텃밭의 계절을 불러낼 수 있었다.
땅 위 잎은 쉽게 시들지만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깊어진다. 무우 뿌리가 그랬다. 흙을 만나 자리를 잡고, 결국 싹을 틔우고 줄기를 낸다. 보이지 않는 힘을 믿는 일, 그것이 흙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새 학교에서 만날 교장, 교감은 낯선 얼굴일 것이다. 정원은 더 이상 갑질을 일삼던 관리자와 변화를 두려워하던 시스템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 역시 자리를 옮겨 다니며 버티는 뿌리였으므로, 시간 속에서 이름은 흙과 섞여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지나온 자리뿐이었다.
정원은 일기를 꺼냈다. 늦겨울 햇빛이 종이 위에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천천히 글자를 썼다.
나는 또 다른 학교로 간다.
아이들은 떠나고, 동료도 흩어지며 계절은 조용히 저물고 있다.
흙의 시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를 마음 속에 그려본다.
교사는 자라서 떠나고, 떠난 자리에서 다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또 자란다.
정원은 마지막 일기를 덮었다. 흙은 넉넉한 숨을 쉬고 있었다. 정원도 그 박자에 맞춰 깊은 숨을 들이켰다. 겨울의 끝 바람이 지나갔다. 2월의 끝에서 하얀 꽃들이 별처럼 피어났다.
그 작은 빛들 사이로 정원의 봄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는 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서 자기만의 텃밭을 가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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