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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티 Mar 31. 2024

프롤로그. 멈춰서 나에게 묻는다

이제 더는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기

 나는 코로나 학번이다. 2020년에 스무살이 된 나는 2년 동안 학교를 거의 가지 못했다. 3학년에 학교를 가서도 내내 마스크를 썼고, 4학년 때 한학기를 다니다가 휴학을 했다. 가끔은 다시 20학번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도 옅어졌다. 코로나가 없었어도 나는 방황을 했을 것 같다. 입시 때도 많은 혼란을 겪었었으니까. 어차피 겪어야 할 방황이 그저 코로나와 맞물려 떨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모든 상황은 예측 불가하며, 어찌할 수 없는 일 또한 일어난다는 것. 나는 이제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고, 통제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나 자신과 의미없는 싸움을 끝내고 싶고 스스로에게 장난질을 하고 싶지도 않고 무의미한 실험을 하고 싶지도 않다. 지난 날들의 후회와 미련을 손에 꼭 쥐고 있느라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우울감과 불안감은 점점 커졌고 번아웃이 찾아와 온 몸의 신경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1년 넘게 지속됐다. 20대 초반을 지나 20대 중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 제대로 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현재를 살고 싶었다. 어젯밤 나에게 물었다. ‘이제 그만해. 할 만큼 했잖아. 계속해서 불안과 강박에 나를 몰아세우는 이유가 뭐야. 밑빠진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채우려 하고 갈구하려는 이유가 뭐야. 내가 지금 지친 이유는 다 나 자신이 만든 결과라는 것을 난 알고 있어.‘


난 알고 있다.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염없이 무언가를 채우려 했다는 것을.


그것은 내 마음에 구멍이 뚫려서였다. 공허하고, 허무해서. 하지만 공허한 나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대학교에 집착을 하고, 남들이 만든 답으로 나 자신을 메꾸려 하고, 좁은 우물 안에 나 자신을 가둬버린 것이다. 내 인생에 내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길을 잃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녔다. 남들의 모습으로 연기하지 못하면 어디에도 가지 못할 것 같았다. 하염없이 달렸지만 그 끝에는 끊임없는, 똑같은 길 뿐이었다.


일이라는게 뭘까. 왜 대학교에 갈까. 취업이라는 것이 뭘까. 알바는 왜 하는걸까. 왜 연애를 할까. 왜 결혼을 할까. 사랑이라는게 뭘까. 왜 술을 마시는 걸까. 왜 공부를 하는 걸까. 왜 휴학을 하는걸까. 대체 나는 뭘까. 삶의 끝은 죽음인데, 어떻게 살아야 의미있게 산다는 걸까?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마냥 어리지만 않았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처음으로 ‘죽음’ 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 사실을 알자 하루하루를 허투루 사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길이로든 나를 끝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스스로 소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세상의 본질을 알고, 나의 본질을 실현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는데 왜 나에게 다가가려고 할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았을까. 왜 스스로를 외면하고 포기하고 싶었을까.


휴학을 하고, 제대로 쉬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쉬는지도 잘 몰랐으니까. 천천히 호흡한다.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살아있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이고, 이제 나 자신으로부터 그만 도망가고 나를 바라봐주겠니. 우리 이제 얘기를 나눠볼까. 숨차게 달리느라 미처 내뱉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더는 나를 속이고 싶지 않다.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지 않고 진솔하게 대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디부터 잘못된건지, 왜 대학생활도 인생도 이상하게 꼬여버렸다고 생각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줘. ‘이상하다‘ 라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밑빠진 독을 한번 제대로 보고싶다. 나와의 진실게임을 하고 싶다. 시간 없다는 핑계는 그만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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