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뭐 입으세요?
"너 마구간에서 일했었어?"
캐네디언 친구네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은 날이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빨간색 이민 가방에서 아끼던 폴로 옷을 꺼냈다. 캐나다에서 혹시 입을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이고 지고 온 폴로 옷이었다.
남색 폴로티를 입고 소시지 분홍색 폴로모자를 쓴 나에게 세상 무해한 눈동자로 캐네디언 그녀가 묻는다.
"너 마구간에서 일했었어?"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이 폴로 후드티는 내가 3개월 무이자 할부로 산 거야. 25만 원이었나? 27만 원이었나. 아무튼 내가 이거 살려고 알바까지 했었는데...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 마구간... 하하하하"
그랬다. 우리 동네 캐나다 사람들은 자기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유니폼을 평상복처럼 입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지 않는 휴일에도 그들은 그들이 일하는 곳의 이름이나 로고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다녔다. 내가 폴로 로고가 박힌 후드티에 모자까지 쓰고 왔으니 캐네디언 그녀가 내가 한국 마구간에서 일했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 마구간은 아닌데..." 나는 말을 하다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캐네디언들 중 누구도 나처럼 로고가 가슴팍에 떡 하고 박혀있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만난 캐나다 사람들은 비싼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순히 돈을 아끼려는 것보다 실용적이고 편리한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들이 다 입는 알만한 비싼 옷의 브랜드를 남의 시선에 따라 사는 대신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브랜드나 오래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캐네디언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살 때 영구임대 주택에 살았었다. 그걸 숨기고 싶었고 지우고 싶었다. 일부러 무리해서, 3개월 할부 , 6개월 할부를 하면서 까지 나도 폴로를 입고 싶었다. 나도 내 친구들처럼 폴로를 입고 서현역을 돌아다니고 싶었으니까. 무리와 다르다는 것. 무리에 끼지 못한다는 것. 나는 그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웠다. 무리에 끼지 못한다는 것이. 무리와 다른 옷을 입는다는 것이.
잊은 줄 알았던 아픈 마음들이 떠올랐다. 불어오는 바람 앞의 흔들리는 촛불처럼 나의 자존감은 늘 흔들렸다. 위태로웠고 꺼질 듯 깜빡거렸다.
내가 만난 캐나다 사람들은 옷을 구매할 때 단순히 돈보다, 실용성과 기능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브랜드의 과시보다는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윤리적 소비나, 오래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의류를 좋아했다. 캐나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이나 가치를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것에서 찾았으니까.
그 저녁모임 이후로 나는 폴로를 아껴입지 않았다. 3개월인가 6개월인가 할부로 산 그 폴로 후드티를 말이다.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비싼 옷으로 더 이상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폴로 후드티 없이도 나는 내 자체 만으로 빛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