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것도 힘들다.
몇 번이나 칼을 들어 올리고 내리친다.
'시발, 죽는 것도 어렵네. 가난하면 죽는 것도 노동이야.'
눈물이 난다.
‘여기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사는 내가 나를 죽이고 있어요. 그게 슬퍼요.’
눈에 눈물이 든다. 옷에 핏물이 든다.
술기운이 우다다닥 달리기를 하며 몰려온다. ‘죽는 건가요. 나는 이제?’ 스르륵 잠이 든다. 칼을 쥔 손목에 힘이 빠진다. 얼마나 잤을까? 시큰거리는 통증에 아프다. 잠이 깼다.
이불이며 베개며 핏자국으로 지저분하다. “아 시발. 왜 안 죽냐고 시발아.” 내가 나에게 화를 낸다.
“그만 좀 죽어줘. 아니 누구라도 신이 있으면 나를 죽이고 아픈 사람 하날 살려줘요. 나는 정말 죽고 싶단 말이에요.”
그 와중에 손목이 아프다. 빨갛게 벌어진 살 틈 사이로 피 딱지가 더럽게 엉겨 붙어 있었다. 벌건 상처 위에 칼을 다시 내려칠 용기는 없었다. 내가 그렇지 뭐. 죽는 것도 제대로 못해. 미련한 년.
바닥에 널려있는 이불이며 옷을 한쪽으로 밀어 넣는다. 옷장을 뒤진다. 아무 잠바나 걸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출근하는 길에 서울 가는 버스를 본 적이 있었다. 주황색 버스였던가? 그걸 타고 한강이나 뭐 그런데 가서 뛰어내리자. 꼭 죽어야 돼.
오늘을 넘기면 안 돼. 그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꼭 죽어야 돼.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힌다. 버스 타고 맨 뒷좌석에 몸을 구겨 앉았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창밖을 내다본다.
횡단보도를 걷는 사람.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저 무리에 끼지 못하는 사람. 죽으러 가는 사람. 시발 인생 x 같네. 웃음이 쓰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웃음이라고 하기 뭣한 것이 삐져나온다. 한참을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덜컹거리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물 같은 게 보인다. 바다일까? 강일까? 벨을 눌렀다. 처음 와 본 곳이다. 죽을 마당에 뭐 그런 걸 생각하니. 그냥 내린다. 한참을 걸어 다리 위 난간을 잡고 섰다.
발밑 시꺼먼 물들이 넘실거린다. ‘얼마나 깊을까? 물속에 떨어지면 머리부터 바닥에 박는 건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흘러갈까?’ 분명 죽으려고 나온 건데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작아 든다. 쪼그라들어. 비겁한 년.
몇 시일까? 죽는 마당에 시간이 궁금했을까? 아니. 사실 용기가 없다. 무섭다. 나 무서워요.
꺼져있는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켰다.
'틱틱' 문자가 하나와 있다. 경찰이 보낸 문자였다. 그걸 끝까지 읽어볼 용기는 없다.
부모님이 걱정한다. 집으로 가라 뭐 그런 내용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쥐었다.
한동안 다리 위에서 다리 밑으로 흐르는 시커먼 물을 바라보았다.
주변이 어둑해져서 하늘에는 달도 뜨고 별도 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꽤 오랜 시간을 거기 서 있었다.
경찰이 보낸 문자가 마음에 걸렸다. 문자하나가 다리 위에서 나를 어쩌지도 못하게 했다. 한참을 다리 위에 서서 마음을 정리했다.
생각을 해보면 정말 죽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외롭고 슬펐거든요. 누구라도 나를 위로해 주었으면 했다. 사실. 나는 마음이 아픈 애었다. 사랑이 필요한 애였거든요. 속마음이 어지러운 마음을 비집고 나온다.
비록 딱딱한 어투의 경찰이 보낸 문자였지만, 아빠가 나를 찾으려고 연락을 했거니 싶었다. 경찰에게 말이다.
아빠는 나를 사랑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빠는. 우리 아빠는 나를 많이 때렸어도 어쩌면, 만에 하나는요. 우리 아빠는 나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중학교 때 처음 생리를 했거든요. 그때 생리대를 검정비닐봉지에 넣어서 사준 것도 우리 아빠였어요. 그게 나는 사랑이라 믿거든요.’
혼자 말한다. 말하는데 눈물이 나.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어둑어둑한 데서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아니, 나는 확인을 하고 싶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고. 누구라도 나를 사랑해 달라고.
다리 위엔 나랑. 마음 아픈 나랑. 그리고 외로운 나. 그것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왼쪽 옷소매를 잡아당겨 붉게 물든 손목을 가린다. 옷깃에 스친 손목이 쓰라렸다. 그래서 살기로 했다.
죽으려고 발버둥 쳤던 용기로 살아 보자고, 시커먼 강물이 나를 잡아먹어 삼킬 것 같은 그곳에서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살자. 살아보자. 누구 말대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니까. 죽으려는 마음으로, 내가 나를 아프게 했던 그 맘으로. 살아보자.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고 ’
다짐을 다짐했다.
눈물을 삼키려 고개를 들었다.
막차일까 싶던 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가 서울을 빠져나갈 때쯤. 흔들리는 불빛 속에 돈가스 간판이 보였다.
나는 다음에 서울 올 때는 이런 거 말고 왕 돈가스나 먹으러 오자고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