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편이 되어줄게.
그날 나는 죽었다. 내가 나를 칼로 찌른 그날. 나는 죽었다 생각했다.
벨을 누른다. 버스에서 내렸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밤거리에 가로등이 하나고 둘이고 불이 탁탁 들어왔다.
터벅터벅
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운동화 발끝만 보고 걸었다.
버스정류장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내가 살고 있는 영구 임대 아파트가 나왔다. 차가운 철문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아직 차가운 겨울도 아닌데 손끝이 시려.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 신발장에 있는 노란불빛이 자동으로 켜졌다.
내가 어질러 놓았던 피 묻은 이불이며 옷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나를 찌르던 칼도, 다 마시지도 못하고 남겨둔 소주팩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치웠나.’
화장실로 걸어간다.
칼로 헤집어놓은 왼쪽 손목에 뭐라도 닿지 않게 조심하며 옷을 벗었다. 웃기다. 죽는 건 죽는 거고 아픈 건 아픈 거다. 아프긴 싫었다. 다시.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실 할머니가 잠에서 깨지 않게 발끝을 세워 걷는다.
욕실 안에 있는 분홍색 세숫대야에 반 정도 물을 받았다. 쪼그려 앉아 두세 번 몸에 뿌린다. 샤워기로 하면 할머니가 잠에서 깰 것 같아. 나는 샤워를 자주 이렇게 했다.
내가 나를 그어버린 손목에 물이 몇 방울이 튀어서야 나는 피에 짓이겨진 그 징그러운 것을 한참이나 보았다.
미안. 내가 나를 너무 많이 아프게 했다.
미안해
오랫동안.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어쩌지도 못하고 내 방으로 들어섰다. 창문 너머 파란 새벽이 보였다. 파랗게 멍든 마음을 오른손으로 부여잡는다. 살자. 살아보자. 마음먹는다.
잘 될 거다. 잘 될 거야.
내가 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