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2007년. 5월.
나는 분당에서 유치원 선생을 했다. 출근은 아침 7시, 퇴근은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
밤 10시에도 끝났고 11시에도 끝났다. 어떤 날은 새벽 1시가 넘어서도 끝났다.
언제 끝날지 모를 유치원을 그만두고 영어나 배우면서 일을 하자고 영어 유치원으로 옮겼다.
영어 유치원은 월급은 작아도 출퇴근 시간은 정해 있었다. 퇴근 시간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유치원 일이 끝나면 일 하나를 더 하기로 했다.
영어 유치원 선생이라 해봤자 영어 못하는 한국인인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없었다.
미국,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들이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그들의 수업을 준비하거나 교실이나 화장실 청소 같은 걸 했다.
원어민 선생님들이 퇴근할 때 나는 유치원에 남아 청소를 했다. 그래도 월급은 그들이 세배는 더 많이 받았다. 억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한국사람이고 영어도 못했으니 그런 대우가 당연했다.
“Hey” 캐나다에서 왔다는 백인 여자 선생이 나를 불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쭈삣거리는데 그녀가 서툰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이리 와봐요.”
“네? 저요?”
처음이었다. 영어 유치원에서 일하는 백인 선생들과 한국 선생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것이 있었다.
서로 인사만 하고 일만 하는 사이였다. 어떤 날은 서로 인사도 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갈래요?” 그녀가 물었다.
“오? 좋죠. 그래요.”
금발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날.
“너는 왜 여기서 일해? 나는 한국에서 일하고 비자가 끝나면 바로 일본으로 갈 거야.”
파란 눈 그녀가 빨간 떡볶이를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아, 나 영어 배우고 싶어서.” 내가 대답했다.
“캐나다 같은 데는 가본 적 있어?” 그녀가 또 물었다.
“아니 나는 외국은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
“아니 왜?” 그녀가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듯 의자를 내 쪽으로 확 끌더니 물었다.
“사실, 우리 집 가난하거든 외국 가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 되잖아.” 떡이 질겼다. 밀가루로 만든 떡이었나?
그녀가 외국사람이라 그랬을까, 떡볶이를 먹으면서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이야기를 그냥 해 버렸다.
“오 마이 갓. 너 진짜 웃기다.” 그녀가 한국사람처럼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나도 가난했어, 우리 엄마는 싱글맘이었거든. 마약쟁이 아빠랑 이혼하고 나를 혼자 키웠어. 가난한 거랑 네가 외국에 나가는 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알았지? 안 되는 건 없어 불가능한 거는 없는 거야.”
“너 스스로 너한테 한계를 두면 안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너를 응원해야지.”
처음이었다. 나에게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파란 눈의 그녀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