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발 때리지 마세요. 아파요.
사람 참 좋아. 사람들은 아빠를 그렇게 불렀다. 아빠는 밖에서 좋은 사람이었다. 밖에서는 말이다.
1996년. 가을.
아빠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서울에 있는 큰 회사. 누구라도 다 아는 회사.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우리가 살던 서울 아파트는 14층이었다. 엘리베이터 타고 숫자 세면서 올라가는 게 좋았다.
용인으로 이사를 갔다. 길에는 자갈이나 큰 돌이 한두 개씩 박혀 있었다. 이삿짐 차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했다. 엄마는 흙먼지가 들어온다고 창문을 열지 말라고 했고,
엄마가 화투를 친 건 그때부터였다. 용인집으로 이사를 가고부터, 근처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우리가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였다.
간판도 없는 공장이 많았다. 엄마는 운전을 배우더니 황금색 마티즈를 샀다. 시골이라 다니는 버스도 잘 없었다. 엄마는 황금색 마티즈를 타고 계란 공장도 다니고 청소일도 했다. 500m 밖에서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엄마 차가 온다는 걸.
토요일 저녁, 일요일 저녁에만 바쁘던 엄마였다. 엄마는 수요일 저녁, 화요일 저녁에도 밤 12시가 넘어서도 집에 오지 않았다. 나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늘 부엌에서 엄마가 미리 해 놓은 소고기 뭇국이나 곱창전골을 먹었다. 엄마는 음식을 잘했다.
비닐하우스에서는 토마토나 딸기 같은 것만 자란다고 생각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사람들이 시발 새발 거리면서 화투를 친다는 게 어색했다. 불편했고.
엄마는 예뻤다. 입술에 루즈를 바르며 말했다. 여자는 화장을 해야 돼. 나갈 때는 잘 꾸미고 나가야 되는 거야. 그래야 대우받을 수 있어.
내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 아빠가 보낸 동영상엔 화투 판이 벌어진 비닐하우스에서 깔깔거리는 여자가 보였다. 엄마였다. 아빠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 노인들과 엄마는 화투를 쳤다. 화투만 쳤어? 엄마?
지랄이다. 풍년이.
엄마가 악다구니를 지른다. 아빠는 때렸고 엄마는 맞았겠지. 익숙해진다. 모든 것들에.
감각이 없다. 무감각해져. 모든 것에도. 맞는 것에도 무감각해진다.
뭔가 찢어지는 소리도 들려. 커튼이 찢어진 걸까. 다시 달았는데 다시 사야겠다.
나는 방에 있는데 거실에서 엄마 아빠가 뭘 하는지 알 수 있다.
소리도 보여.
아빠의 발길질로 날아간 방문 손잡이에 틈이 있었다. 그 틈으로 길길이 날뛰는 아빠가 보여.
눈을 감았다. 뜬다. 꿈이기를. 제발. 그러기를.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이 없다.
소란이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귀를 막는다.
아빠한테 대들기 시작했다. 내 키가 160cm가 넘었을 때.
악에 받친 사람이 죽어라고 소리를 지른다. 욕을 해댄다. 아빠. 우리 아빠.
아빠는 때리고 나는 맞는다. 이유가 있었던가? 맞는 이유가?
감각이 없다. 무감각해져. 모든 것에도. 맞는 것에도 무감각해진다.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던 것 같다.
매를 맞다 문지방에 머리를 찧는다.
동생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 집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걸.
나는 온몸으로 매를 막다 알았다.
아빠가 때리던 것을 집어던진다. "시팔 것."
아빠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시팔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내가 내 얼굴을 본다.
눈물에 콧물에 젖어 있는 얼굴. 다닥다닥 굳어버린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떼낸다.
몸을 옮긴다. 내 몸인데. 이삿짐처럼 무겁다.
침대로 들어가 몸을 웅크린다. 아파서 제대로 눕지도 못해.
언제까지 나는 맞고 언제까지 아빠는 때릴 건데요.
나는 그때 단발머리 열두 살짜리 중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