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예요. 그런데 그게 좋아요.
우리 엄마 나이 마흔이었다.
엄마는 어렵게 임신을 했다. 모두의 바람대로 고추 달린 애였다. 나이차이가 열 살 넘는 어린 동생이었다.
걔는 서울이었던가 경기도였던가 그곳 병원에서 태어났다. 걔가 태어나는 날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아빠가 말했다. “남동생 태어났어, 보러 가야지.”
좋아하던 겨울코트를 입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비누로 손을 세 번이나 씻었다. 걔를 만지고 싶어서.
어쩐지 부끄러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빠 등뒤에서 나는 쭈뼛거렸다. 하얀 포대기에 싸인 걔가 있었다.
나와 둘째는 이루지 못한 엄마 꿈을 걔는 엄마뱃속에서부터 이루어줬다.
목욕탕에 한 시간 넘게 물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손가락 끝이 쭈글쭈글했거든, 걔 얼굴이 꼭 그랬다.
엄마랑 걔가 집에 왔다. 아빠는 일 때문에 바빴다. 걔는 밤에 자주 울었다. 나는 아가방에서 샀던 하늘색 곰 얼굴이 그려진 포대기로 걔를 업었다.
쪼그만 게 몸은 어찌나 따뜻한지 걔를 등뒤에 업었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걔를 둘러업었다.
피곤한 엄마는 잠이 들었다. 거실에 나와 자장가를 흥얼거리면 걔는 중학생 내 등에서 잠들었다.
쌔액쌔액 걔 숨소리가 강약중강약에서 강이 되면 곤하게 잠들었다는 뜻이다. 그제야 나는 소파에 앉았다.
한 손을 걔 엉덩이를 잡고 한 손으로 포대기의 끈을 풀었다. 엄마처럼 한쪽 무릎을 굽히고 걔를 토닥토닥했다.
그러면 걔가 더 곤히 잠들었으니까. 애기냄새. 엄마 젖냄새. 그러다가 배시시 걔가 베넷 짓을 할 때 다짐했다.
“누나가 널 지켜줄게.”
아빠는 직장을 관두었다. 시골집으로 이사를 왔다. 시골집에서 엄마 아빠는 하루에 두세 번도 싸웠다. 시골에는 놀거리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나는 그것들과 놀기 바빴다.
걔는 그 집에 혼자 있었을 거다. 그 생각도 지금 생각났다. 글을 쓰면서, 그 조그만 애가 혼자 거기 있었네.
누나가 지켜준다는 말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은 원래 어기라고 하는 거다.
캐나다 와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걔가 고소를 했다.
내가 이로 물어뜯는 팔목에 생채기가 깊었나 보다. 그걸 볼 때마다 악이 끓었을 거다.
아빠는 그걸 다 봤다. 자신이 낳은 자식들이 수채구멍 머리카락처럼 엉켜 붙어 싸우는 모습을 아빠는 그 자리에서 다 봤다.
카톡 하나가 왔다.
“카톡.”
아빠였다.
심장이 쿵떡쿵떡 널을 뛴다. 나중에 확인하자. 무서웠다.
“영진이가 고소 안 한데. 변호사 전화가 갈 거야 거기에 네가 대답만 하면 끝난데.”
아빠가 한숨을 길게 몰아냈다.
“응"
카톡으로 전화가 왔다. 요즘은 메신저로 전화도 되네. 신기했다.
누구누구 변호사라고 했다. 여자 목소리. 변호사는 이후에 다른 법적 책임을 물지 않겠다고 했다. 어려운 말을 썼다. 나는 아빠가 말한 대로 대답만 네. 네네. 세 번을 했다.
나는 동생이 둘이 있었었다. 나는 첫째였고. 엄마 아빠도 있었었다.
캐나다 와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어디선가 별똥별처럼 뚝하고 떨어졌다. 그게 나다.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관의 말대로 나는 캐나다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고 내가 없어야 가족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기로 했다.
미움 같은 거 원망 같은 거를 품고 살면 결국엔 독이 퍼져 망가진다. 내가. 그리고 모두가.
복수니 뭐니, 나는 땅에 떨어진 낙엽처럼 살기로 했다.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세상에 무해한 것들. 그런 것들처럼 살기로 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들이 잘 살았으면 한다. 정말 잘 살아서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 있다면,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잘 살면, 우린 서로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 것 같다.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고단한 삶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나는 누구보다 우리 가족이 행복했으면 해.
엄마 아빠 이건 내 진심이야. 늘. 변하지 않을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