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원이면 새로운 삶이 가능한거죠?

돈에 자석처럼 들러붙어 모은 돈. 천만 원.

by 캐나다 부자엄마

2009년 내 나이 29살. 서른 되기 전 가을. 천만 원을 모았다.


돈에 자석처럼 들러붙어 악착같이 모았다. 일 년 동안. 그게 천만 원이다.


G마켓에서 최저가 9.900원으로 빨강, 파랑 이민가방 두 개를 샀다. 튀지 않는 검은색을 사고 싶었지만 그건 세일을 안 했다.


“어차피 공항에서만 쓸 거니까 제일 싼 거 사도 괜찮아.”


죽으려고 했다. 파혼도 당했고. 맞았고 무시를 당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아서라고 했던가? 아니 이유가 있나. 싫어하는 데. 더럽고 구차했다. 사는 게 살아남는 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롭게 해 보자. 잘 살아보는 거야. 한국에서 캐나다로 가는 11시간 비행기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꼭 성공하자. 나도 한번 잘 살아 보자. 제발, 제발 좀.


한국 인천 공항에서 출발해 캘거리의 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캐나다 공항에는 사람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양손에 이민가방을 돌돌 끌고 그들을 피했다. 한쪽 구석에서 이민가방을 세워놓고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첫차가 새벽 5시였다. “지금은 새벽 한 시 반이니까 네 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되네.” 어딜 가든 택시는 비싸. 택시를 타는 대신, 공항에서 첫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타지 않는 택시를 캐나다에서 탈 배짱은 없었다. 캐나다 유학원에서 계약한 홈스테이는 아침 8시 전까지 가면 되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홈스테이 가족이 나를 데리러 공항에 오는 건 비용이 들었다. $100불을 더 줘야 했다. $100불이면 큰돈이다. 캐나다 공항에서 이민가방 두 개를 끌어안았다. 나에겐 이민가방 두 개가 가족이고 전부였다.


잘 살아 된다고. 꼭 나는 여기서 살아남겠다고 텅 빈 캐나다 공항에서 내가 나에게 응원을 건넸다.


버스를 탔다.


눈치가 보였다. 내 이민가방은 하나당 20kg가 넘었다. 덜덜 팔꿈치를 떨며 무거운 이민가방을 하나씩 버스에 올렸다. 양다리를 벌려 이민가방이 버스에서 굴러다니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았다. 다음정거장 안내방송은 나에게만 들리지 않았다. “어떡하지. 못 내리면 어떻게 해.”


다행이었던 건 새벽이라 버스 안이 붐비지 않았다는 것. 버스에 탄지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9월, 캐나다도 가을이었다.


빨갛고 노란 단풍잎들이 고왔다. 그걸 보며 잘 살자 다짐했다. 누군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나무향이 훅 끼쳤다.


“좋다. 캐나다.”


그때였다. 버스 기사가 뭐라고 말을 한다. 버스를 길가에 세웠다. “무슨 일이지? 버스가 고장 난 건가?” 걱정이 되었다. 버스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모두 별일 아니라는 듯. 그래서 나도 괜찮은 가 싶었다.


“버스 아저씨는 어디 갔지?”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13분 정도가 지났을까. 길건너에서 스타벅스 컵을 들고 웃으며 걸어오는 아저씨를 보았다.


'뭐지? 운전하다 말고 스타벅스에 간 건가? 미친 거 아니야? 한국이었으면 난리 났을 텐데.'


그는 버스에 타지 않고 한동안 버스에 기대 서서 스타벅스 컵을 홀짝였다. 그가 버스에 올라탔다. 그의 여유에 나도 용기가 났다. 버스 기사도 버스를 멈추고 스타벅스를 가는데 나도 내가 가는 곳을 물어보고 싶었다.


'저기.'


홈스테이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그에게 물었다.


버스기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빠르다. 그의 말을 80% 이상 알아듣지 못했다. 고맙다고 하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얼마쯤 갔을까 버스 기사 아저씨가 뒤돌아보며 여기서 내리라고 손짓을 했다.


"땡큐 땡큐."


고개를 몇 번이나 흔들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이민가방을 내리기 좋게 버스를 내려 주었다. 우와 캐나다 버스는 이런 것도 있구나. 기대하지 않은 친절에 기분 좋았다. 한 개씩 이민가방을 버스에서 내리고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도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언가 가슴에서 울컥한 게 올라왔다. 나는 이민가방 옆에 서서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꼬깃꼬깃 접어놓은 종이를 폈다. 종이에 홈스테이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민가방 하나를 저만치 물어다 놓고 다른 이민가방 하나를 또 그만치 물어다 놓았다. 돌돌거리는 바퀴사이로 단풍잎 몇 개가 껴서 짓이겨 있었다.

유학원에서 알려준 홈스테이로 향했다. 제일 싼 홈스테이를 고르느라 다운타운에서 먼 곳을 골랐다. 한 달에 $750, 한국돈 팔십만 원을 냈다. 한 달만 먼저 살아보기로 했다. $100불을 점심 먹지 않는 조건으로 깎은 것이 위안이 되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정글 같은 숲 길을 한참을 걸었다. 여기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유학원이 보내준 사진과 비슷해 보이는 집 앞에 도착했다.


‘여기 맞겠지?’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심호흡을 한번 한다. 후아.


'똑똑'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주위를 살피는데 도어벨이 보였다.


띵동

소리가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들린다.


'오케이'


누군가 집안에 있다.

철퍽철퍽 슬리퍼 끄는 소리가 점점 강하게 들릴 때쯤 문이 열렸다.


"오, 하이."


문을 열자마자 알 수 없는 지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현관에는 신발들이 서로 엉켜 나뒹굴고 있었다.


"헬로"


60은 넘었을까? 아니 65? 백인들은 나이를 잘 모르겠다.


지금 일어났을까? 오른쪽 머리카락이 눌린 그녀는 잠옷차림에 숄을 어깨에 두르고 나를 맞이했다. 이민가방을 현관 한편에 놓고 그녀 뒤를 따라갔다. 그녀가 내가 쓸 방이라고 안내한 곳은 거실 한쪽을 칸막이로 얼기설기 막아 놓은 곳이었다. 어차피 오래 살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한 달만 살고 떠날 생각이었다. 매고 있던 가방도 풀지 않았다. 침대 시트가 누렇게 변해버린, 그 위에 잠바를 벗어 올려놓고 그 위에 앉았다.


'아이고, 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긴 뭐, 내 인생에서 쉬운 건 없었다. 한 번에 잘 풀리면 그게 더 이상하지.

혼잣말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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