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무조건 로케이션 로케이션 로케이션이죠. 직장을 다운타운에 구하실 거라면서요. 왜 멀리까지 가요. 다운타운에 사야죠."
사실 집을 사려던 게 아니었다. 밴쿠버 렌트시장이 마른 장작에 불붙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던 때. 그게 십 년 전이었나. 암튼 그때 렌트를 구하는 곳마다 까였다. "저희가 지금 밴쿠버에 살지 않고 캘거리에 있거든요. 저희 아이도 없고 반려동물도 없고 일하느라 바빠서 잠만 잘 거예요." 진심을 담아 이메일을 보냈다. 살 집이 필요했으니까. 간절했으니까.
답장도 없는 게 반이었고 나머지는 이미 나갔거나 집을 팔았다고도 했다. 아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살게 해 달라니까요. 약이 올랐다. 집주인들한테 메일을 스무 통 정도 보냈을 때였다.
"오빠, 우리 돈 모아놓은 거 있지. 그걸로 그냥 집 사자. 우리가 밴쿠버도 안 살고 외국인이라 집 렌트 안 해주나 봐 그냥 사자. 스트레스받아."
그게 시작이었다. 무언가에 절박할 때 사람은 생각보다 큰 결정을 툭 던지곤 하니까.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거지근성 소리를 들어가며 돈을 모은 보람이 있었다. 인터넷 광고를 보고 밴쿠버 리얼터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저희가 밴쿠버에 작은 집을 사려고 합니다. 버나비도 괜찮고 뭐 어디든 괜찮아요."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리얼터 한분이 참 친절하셨다.
"제가 주말에 몇 군데 매물을 보내줄게요. 그런데 빨리 결정하셔야 할 거예요. 괜찮은 집들은 금방 나가니까."
"저희가 돈이 많이 없어서요. 꼭 밴쿠버가 아니어도 돼요. 외곽도 괜찮아요." 저희 둘이 살 거라서요."
"아니요. 집은 로케이션이 중요하죠. 이 돈이면 밴쿠버 다운타운에 작은 콘도 하나는 살 수 있어요. 다운타운이 젊은 부부가 살긴 편하니까요."
진심이셨다. 그분 덕에 캘거리에 사는 우린 밴쿠버에 직접가지 않고 그분이 보낸 집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매물을 고를 수 있었다. 느낌이 좋았던 집을 계약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 덕이었다.
밴쿠버 다운타운에 작은 점 같던 콘도를 샀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캘거리로 돌아가는 날 리얼터님이 밴쿠버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셨다. "밴쿠버 좋죠. 오시면 더 잘될 거예요. 여기 참 살기 좋은 동네예요."
2년을 그 집에서 살았다. 작고 아담한, 우리의 첫 집. 좋은 리얼터님을 만나 운이 좋았다. 거기서 2년을 살고 집을 팔았다. 우리가 안 먹고 안 쓰고 몇 년을 아끼고 벌어야만 모을 수 있었던 돈을, 첫 집 덕분에 조금 더 빨리 모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난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