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 그랬다. 모든 게 서툴렀다.
큰 꿈이 있었다. 신대륙을 발견하겠다는 콜럼버스만큼 큰 꿈. 꿈을 안고 캐나다에 도착했다. 그게 벌써 17년 전 일이다. 바들바들 앙상한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 꼭 내가 그랬다. 입국 심사에서 거절당할까 난 바들거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배웠던 윤선생님 영어 교실과는 완전 다른 영어였다. 윤선생님은 친절했고 내가 못 알아들으면 한국말로 알려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캐나다 입국심사장에는 윤선생님이 안 계셨다. 말은 어찌나 빠른지 나는 눈알을 동그랗게 뜨고 그 사람들이 하는 영어를 되물었다. 마치 가족오락관의 멤버가 되어 게임을 하는 기분. 챗쥐피티가 조금만 빨리 나왔더라면 내 인생도 조금은 편해졌으리라.
서울에 상경한 시골쥐처럼 모든 게 신기했고 모든 게 낯설었다.
난 이민국오피스에서 나온 사람을 졸졸졸 따라갔다. 서류가 충분하지 않다고 내 딴에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따라오라고 해서 피리 부는 사나이가 꼬마를 홀리듯 그렇게 따라갔다. 그리고 회색의자에 나처럼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기다리던 기억.
유영리.
내 이름이 불렸다. 정확하게는 유영리가 아니라 우연리 이은 지 유양리인지 아무튼 그 중간의 어중간한 이름을 불렀고 손만 뻗으면 닿을 그 거리를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었던 기억.
표정 없는 차가운 여자 둘이 나한테 이것저것 물었던 기억. 유학원과 가까이 연결이 되어 9개월간의 비자를 받았던 기억. 그중에서 가장 치졸했던 기억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린 나를 보고 여기서 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던 그녀의 말. 그래 그 말이 맞지. 여기서 날 구해줄 사람도 날 망치게 할 사람도 결국은 나뿐이니까.
그날의 기억.
캐나다 이민은 처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