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호텔에서 양수가 터졌다.

by 캐나다 부자엄마

나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


2주만 버티면 육아휴직을 갈 수 있다. 최대한 시간을 끌 수 있는 데까지 끌다 육아휴직을 갈 생각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밭을 갈다 애를 낳았다고 했다. 애를 낳고 다시 마저 밭을 갈았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았다.


한국인은 강하다. 한국 아줌마는 더 강하다. 출산 예정일 까지는 3주가 남았다. 록키 산맥처럼 부풀어 온 배를 쓰윽 한번 쓰다듬는다. "튼튼아 오늘 하루도 고생해 줘. 조금만 돈 같이 벌자." 튼튼하게 자라달라는 소망을 담아 태명을 튼튼이로 지었다.


사실 어제부터 배가 아팠다. 약해 빠진 매니저 놈이 사랑 때문에 창고에서 울었다. 파란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더니 한쪽 구석에 앉아 바닷물에 말린 오징어처럼 굴길래 내가 시럽 박스니 컵 박스를 혼자 등에 이고 지고 다날랐다. 삼십 분 넘게 돌덩이 같던 박스들을 옮기고 시원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했다.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배가 땅기더니 쿡쿡 아팠다. 일을 나가지 말고 쉬라는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미련곰퉁이처럼 혼자 일을 다 했다고 발바닥에 개똥 뭍은 것처럼 펄쩍펄쩍 뛸 것이 분명했다.


새벽까지 당기는 배를 부여잡고 다시 옆으로 돌아누워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나는 잘 안 아픈데 왜 이럴까 하고.


호텔 출근은 새벽 4시 반까지였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주섬거리며 출근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일 쉰다고 해. 그러다 진짜 큰일 나."

"아니야. 괜찮아. 유튜브 보니까 많이 움직여야 애 쉽게 낳는데."


몸이 불어 꽉 끼는 유니폼을 입고 뒤뚱거리며 호텔 커피숍 오픈 준비를 서두른다. 오픈 조에는 슈퍼바이저 한 명 그리고 바리스타 한 명이 일한다. 더군다나 새벽 오픈조는 나 대신 일할 사람도 구하기 어렵다. 슈퍼바이저 혼자 오픈준비를 할 수는 없다.


배가 이상했다. 밑도 쿰쿰하다. 누가 젓가락으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 평소와 다르다. 이상해.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걸어간다. 혹시나 싶어 집에서 생리대를 차고 왔었다. 고개 숙여 생리대를 보니 빨간 피가 묻어 있다. 핸드혼 시계를 눌러 시간을 확인하니 7시 반이다. 8시가 되면 2명의 바리스타가 더 올 것이다. 그럼 그때 병원에 간다고 해야겠다. 삼십 분 동안은 괜찮겠지.


어기적 어기적 다시 매장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중국인 슈퍼바이저랑 일을 해서 다행이다. 임신해서 힘들다고 쉬운 일만 골라서 나에게 주는 슈퍼바이저는 쟤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혼자 일하게 둘 수는 없는데 밑이 빠질 것 같이 아프다.


설마 캐나다 호텔에서 애를 낳는 건 아니겠지.


혹시? 너 애 받아본 적 있어? 중국인 슈퍼바이저 리웨이에게 농담을 건넨다.

"뭐? 왜 너 지금 나올 것 같아? 나 당연히 애기 못 받지. 너 빨리 병원 가." 짜식 얼굴이 빨개져서 손을 헬리콥터 날개처럼 내두른다.


"아직은 괜찮아. 내가 8시까지 버텨볼게."

"아니야. 괜찮아. 나 혼자 하면 돼. 너 병원 가."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나 양수가 터진 것 같아. 그런데 괜찮아."

"뭐? 미친 거 아냐?"

남편이 내 귀에서 미친거 아니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캔디처럼 맴돈다.


8시가 되고 두 명의 바리스타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하이 마마유영. 배는 어때?"

"나 양수가 터진 것 같아." 난 앞니 네개를 보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너 미친 거 아니야? 병원 가야지." 메이가 말한다. 메이는 스물다섯이다. 메이에게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생명탄생의 신비를 호텔 바닥에서 보여주고 싶진 않다.


"리웨이. 유영 양수 터졌데. 어떻게 해."


멀리서 리웨이가 뛰어 온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유영. 빨리 병원 가. 택시 잡아줄게. 매장 걱정은 하지 마 진짜 괜찮아."


호텔 기둥 앞에 얼굴이 낯익은 한국 남자가 서 있다. 이를 앙 다물고 서는.

자세히 보니 남편이다. 꽃무늬 장바구니에 미처 다 넣지 못한 수건 꽁다리가 빼꼼 나와 있다.

수건은 왜 챙겨가는 거야? 수영장 가는 것도 아닌데. 남편한테 물어보고 싶었지만 욕먹을게 분명하다.

택시를 타고 남편이 말했다.


"BC 우먼즈 병원으로 가주세요."


터번을 두른 인도 기사님이 날 한번 보더니 빠르고 신속하게 병원으로 우릴 데려다줬다. 짠돌이 남편이 고맙다고 인도 택시 기사님에게 팁을 얹어 택시비를 계산한다.


택시 영수증을 슬쩍 보니 $20불 정도 나왔다. 20불이면 한국 마트에서 돼지고기 한 근은 살 수 있다. 그 얘기를 했다간 남편한테 평생 잊지 못할 쌍욕을 들을 것 같다. 땀이 흥건한 남편의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병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빠가 좋아하는 사극 드라마의 한 장면 밧줄을 움켜주고 죽어라 소리를 지르던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아아아악."


나와 남편은 소리에 놀라 서로를 부둥켜 앉았다.




작가의 이전글다 그렇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