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겡끼데스요?
"한국인 데스까?"
새로운 직장에 처음 들어간 날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메이 같은 사람이 묻는다.
"당신은 코리안입니까?"
영어발음에 진한 일본억양이 묻어 나온다. 내 뼛속 깊은 곳에서 곧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예쓰. 아임 코리안." 대답을 하고도 기분이 묘하다. 왜 물어보는 거지? 캐나다에서?
"내 이름은 미치코야. 나는 한국사람들이 좋아. 같이 일하게 돼서 너무 좋아."
"네. 네." 나는 경계를 놓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키도 내 가슴팍에 올 정도로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그녀였다.
새로 들어간 직장은 일이 많았다. 예상대로라면 일주일을 받아야 할 트레이닝을 하루만 받고 실전에 투입되었다. 경력이 있고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엄마를 따라 '또각'소리를 내며 전선 이어 붙이기 알바를 하던 나였다. 눈치 백 단에 시키는 일, 시키지 않는 일까지 모두 알아서 하는, 일터에서 손흥민 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일 잘한다는 말은 고문이다. 일 잘하니까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아니 캐네디안은 나이스하다면서요.?" 욱할 뻔했다. 아직은 욱할 때가 아니다 2개월의 수습기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참자." 며칠 전에 질러놓은 노트북이 생각났다.
그때였다. "괜찮아? 다이죠브?" 미치코가 물어온다. "아니 나 안 괜찮아." 투정을 부릴 데가 없으니 미치코 언니에게 부린다.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아. 일이 너무 많아. 미치코."
쑤욱. 무언가 내 주머니로 들어온다. 꺼내보니 일본 과자다. "이거 먹고 힘내. 모르는 거 있으면 내가 도와줄게." 미치코가 나를 다독인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미치코가 007 요원처럼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를 부른다. 그녀가 초콜릿 조각케이크를 내민다. "생일 축하해. 나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 울면 안 되는데 대한민국 여장부는 눈물을 아무 데서 흘리지 않는다. 괜히 하늘을 보고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찍는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남자애 이름이 민석이었나? 걔한테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인 걸 생각해 낸다. 휴~다행이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나도 많이 많이 아리가또 미치코 상."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일본인 동료와의 아름다운 전우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귓속말을 한다.
"그래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해."